사랑하는 어머니는 햇수로 18년을 누워 계십니다. 아니, 견뎌오고 계신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세 차례 결핵균에 감염돼 격리실에서 모진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작은 욕창이 생겼다가 낫기도 했지만 맑은 피부로 잘 견디고 계십니다. 제가 신경 써서 잘 돌봐드려서도 아니고 원래 건강한 분이어서도 아닙니다. 저는 이 현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이 낫는 기적은 없었습니다. 깊은 병중에 계시지만, 기계호흡장치 없이 하루하루 숨 쉬며 아들인 저와 눈빛으로 대화하며 손을 맞잡고 살아오신 지난 18년과, 앞으로 언제가 끝인지 모를 세월에 대해 ‘견뎌 내겠다는 의지’가 주어진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현재 겪는 고통에서 자유해지는 회복을 기적이라고 여기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감당해 가는 것이 저에게는 더 어려운 기적입니다. 진짜 기적은 삶의 고통스런 환경이 변하는 것이기보다 상황은 점점 안 좋아져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관점이 변하는 것이기에 우리 모자는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 글을 시작하며 ‘낫지 않아도 기적의 주인공입니다’에서
어제 아침에는 부산하게 어머니를 치료하고 목욕을 시켜드린 후 낮 시간에 종일 어머니 베개를 사러 돌아다녔다. 여름이 되면서부터 어머니는 고열에 자주 시달리고 계신다. 열이 오르면 어머니도 나도 모두 힘들다. 밤새도록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담가 몸을 닦아드려야 하고 얼음찜질팩을 등과 머리에 계속 대어 드려야 한다. 고열에 대한 대책을 궁리하다가 베개를 바꿔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을 고려한 특수 베개에 삼베나 모시를 씌워서 베어드리면 하루 종일 누워 계시는 어머니께 아주 편안할 것 같았다. 예산을 세운 후 시장조사를 하러 나가기 전에 둘러보니 집에 쌀이 떨어져 있었다. 쌀이냐? 베개냐? 물론 베개지. 내가 아파 누워 있다면 어머니도 같은 결정을 내리셨을 거다. 채움의 주체가 바뀌었다. 내 필요를 항상 생각하고 제때 채워 주신 어머니.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는 채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다. (중략)
통장 잔고가 마침내 바닥났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서 별 느낌이 없다. 작년에는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늘 마지막 순간에 해결되었다. 좀더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슴 졸이다 마음만 다쳤을 뿐, 결국은 모두 채워졌다. 바뀌지 않는 채움의 주체, 철따라 꼴을 먹이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 덕분이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도와주실까 기대된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에는 피곤한 일들이 아주 많다. 이번에는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으면 고발될 것이다. 도우미 아주머니 휴가도 보내드려야 하고, 어머니 체온 점검과 방안 공기 상태에 좀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미리 걱정하면 마음만 쑥대밭 된다. 그냥 해결되리라는 기대감만 남겨 두고 살아야지.
- ‘쌀이냐, 베개냐?’에서
새해가 되면서 대학원 휴학 기간 만료로 제적될 상황을 맞게 되었다. 다시 복학할 수 없는 형편이라 제적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미 납부된 등록금을 그냥 날리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그 등록금을 대 주시느라 어머니가 몸까지 상해 가며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입학금의 반만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 뒤,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대학원 교학과는 방학 중에 보통 오전 근무만 하는데 나는 오전 시간은 어머니 목욕과 치료로 바빠서 오후 늦게야 모교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교학과 직원이 다 퇴근하지 않고 문이 열려 있었다. 다행히도 늦게 남아 일하는 직원 분을 만나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등록금 환불은 불가능할 거라 예상하고 간단한 답만 확인하고 나오려 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가 찾아오기 바로 전 주에 교육부에서 공문이 내려왔는데 등록금 문제는 학생 위주로 처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그러면서 전례 없이 내가 처음으로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이미 입학을 한 상황이니 입학금 안의 부수적인 금액은 제하고 수업료만 해당됐는데, 그게 신기하게도 입학금의 절반이었다.
이럴 수가! ‘이럴 줄 알았으면 다 돌려달라고 기도하는 건데……, 내가 왜 절반만이라도 돌려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던가!’
웃음이 났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을 가능한 현실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때 돌려받은 수업료로 내 통장은 다시 배가 불렀다. 그해 1월부터 6개월간 그 수업료를 쪼개어 쓰면서 잘 버틸 수 있었다.
- ‘만나는 있다 2’에서
어느 날, 나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교회 후배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의 집에 찾아가 뇌종양 수술을 받으신 후배 어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침상을 깨끗하게 정리해 드렸다. 방문하기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인 그 어머니 얼굴로 인해 지쳐 있던 후배의 가족은 복음을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내가 날마다 어머니께 해드리는 것의 아주 작은 부분을 후배 가정에 해드렸을 뿐인데도 하나님은 그 아픈 마음의 가정을 크게 위로해 주셨다. 나는 그러한 경험 이후 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확인했고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보살피는 사람은 복이 있다. 또한 보살핌을 받아본 사람만이 참사랑으로 보살펴드릴 수 있다. 어려운 중환자를 둔 가정들이 인간다운 존엄한 모습을 유지하고 캄캄한 터널에서 빛을 발견하는 데 하나님께서 나를 일꾼으로 사용해 주실 것을 믿고 소망한다. 어머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꿈을 꾸도록 해주신 분이다. 큰 사랑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곁에 있는 게 행복하다. 사랑하니까.
- ‘사랑하니까’에서
중년 가장이 된 지금, 청년기의 기록인 《엄마는 소풍 중》을 편집하며, 저는 답이 없었지만 그 시절만의 행복했던 빛을 바라봅니다. 앞으로 펴낼 《엄마는 지금도 소풍 중》에 그 빛의 스펙트럼을 담으려 합니다.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지키고 간호해드리는 삶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단하고 힘든 고통의 연속입니다. 답 없는 삶의 답을 알기에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사랑은 어떤 환난 속에서도 책임지고 견디게 하는 힘이기에…….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다면 저는 답이 없는 삶에서 쓰러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간호하며 틈틈이 써온 글로 책을 냈고, 직업을 얻었으며, 불가능하리라 여긴 결혼을 하여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편찮으신 어머니는 제 삶을 윤택하게 해주신 기도의 어머니입니다. 답이 없어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으로 곁에서 함께할 것입니다.
이전의 삶이 많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삶에 소망이 생깁니다. 긴 소풍 중이신 엄마, 제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신 엄마에게 사랑하는 아들로서 가치 있게 살아가는 믿음의 연주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답 없는 삶의 답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