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문화에 의해 질서가 형성된다. 다양한 사회에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의 의미의 도식에 따라. 물론 역도 성립한다. 문화의 도식은 역사적 질서에 의해 형성된다. 왜냐하면 의미는, 많건 적건 실천적 행동을 통해 재평가되기 때문이다. 이 모순의 합명제는 관련된 인간, 즉 역사 주체의 창조적 행동 속에서 펼쳐진다. (…) 이것이 이 책의 대략의 논지이다. 그것은, 인류학자들이 흔히 ‘구조’라고 부르는 것, 즉 문화질서의 상징적 관계는 결국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어떤 것이라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명백히, 대부분의 인문학 분야에서 발견되는, ‘구조’와 ‘역사’를 이항대립으로서 포착하는 개념을 거부한다.(7~8쪽)
-사건은 그것이 해석되는 만큼 사건이 되는 것이다. 사건은 문화의 도식 내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 자리를 잡을 때에야 비로소 역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한편으로 쿡을 다시 하와이로 돌아오게 한, 레졸루션호의 앞돛대가 부러지는 사고와, 다른 한편으로 이 모든 것에 대한 섬 주민들의 불길한 시선, 이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하와이 문화의 어법이다. 사건이란 발생한 우연적 사건과 구조(혹은 구조들)를 묶는 관계―그것은 의미 있는 가치로서의 현상의 본질을 아우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특유의 역사적 효력이 발생한다―인 것이다(마지막 장의 일반적 논의에서 다시 이 지점으로 돌아올 것이다). 두 번째 시도는 아마도 첫 번째보다 독창적일 텐데, 나는 구조와 사건 사이에 제3의 용어, 즉 둘의 상황적 합명제로서 ‘국면의 구조’를 끼워넣고자 한다.(17쪽)
-어쩔 수 없이 요약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구조’라는 인류학 개념이 만약 소쉬르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상징적 대립과 조응이라는 정적인 조합으로서 제시된다면 그렇게 유용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체적이고 가장 강력한 형태로 제시될 때의 구조는 과정적이다. 즉, 구조란 생성 및 재생성의 세계체제에 이르는 문화적 범주와 그 관계의 역동적 발전을 의미한다. 문화적 삶의 과정의 프로그램으로서 시스템은 내적인 (구조적인) 통시성을 가지고, 본성상 한시적이고 가변적이다. 구조는 문화적 삶의 기본형태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통시성이 구조적이고 반복적이기 때문에, 우연적 사건을 포괄하는 우주론적 기획으로서 역사적 시간과의 대화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138쪽)
-인도유럽어족 사람의 것이든 폴리네시아인의 것이든, 이 모든 계보, 신화, 의례에서 우리는 인간을 통해 나타나는 문화적 범주, 추상적이지만 근본적인 개념을 다룬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 인간들에 의한 행위라는 것이 범주들 간의 올바른 관계, 범주들의 조합과 조직 과정을 표현한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구조’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용어를 대비와 조응의 공시적 도식―예를 들어 수장과 부족민, 이방인과 토착민, 바다와 내륙, 아내를 취하는 자와 아내를 내주는 자 등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시간과 순서가 신화의 전개나 의례의 거행에서 핵심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 역시 범주와 그 범주들의 관계의 생성적 발전인 것이다. 결국에는 새로운 합명제적 용어가 만들어질 것이고, 기초적인 범주들의 가치가 변화할 것이다.(156쪽)
-많은 핵심적인 문화적 범주가 ‘양의적’이거나 ‘상호모순적’이거나 ‘논리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결론이 흔히 도출된다. 이러한 결론은 한걸음 더 나아가, 범주를 다양한 맥락에 적용해본다면 범주의 애매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구조를 그렇게 파악하는 것, 즉 차례차례로 맥락에 맞추어 제시된 명제들의 세트로서 파악하는 것은 논리를 끝까지 끌고 나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특수한 것으로 발전시키지도 못한다. 맥락에 묶인 이 모든 정식은 단지 문화의 도식의 우연적 표상, 즉 (관찰자이건 참여자이건) 관심영역의 시점에서 본 일시적인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는 범주들의 생성적 발전 안에 존재하며, 바로 이러한 발전에 의해서만 구조의 모든 정태적이고 부분적인 표현형태들이 동기화되는 것이다. 오로지 구조의 내적인 통시성에 의해서만 논리적 형식의 ‘양의성’을 합명제로 파악하거나, 맥락에 따른 가치규정을 맥락에 대한 규정적 가치평가로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본형태들의 문화적 생명인 것이다.(176쪽)
-그렇다면 누가 쿡 선장을 죽였을까? 사건이 일어난 당일부터 50여 년 후에 이르기까지 나온 사료들을 종합해보면, ‘쿡 선장을 죽인 남자’―보통은 철제 단검으로 그를 처음 찌른 사람을 가리킨다―로 거명되는 사람은 8명에서 10명에 이른다. 이 습격자로 추정되는 이름은 파헤아, 누하, 피홀레, 포헤와 등이다. 이들을 지위, 가문, 그리고 다른 사회적 지표에 따라 구분해놓은 기록들은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나는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는 항상 기초적인 범주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그렇지, 친애하는 왓슨?) (182~3쪽)
-쿡의 죽음은 곧 로노의 죽음이다. 이 사건은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사건이었고, 또한 해마다 반복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 사건이 (그리고 어떤 사건이든) 두 가지 차원에서, 개인적인 행위로서 그리고 집단적인 표상으로서,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 특정한 개인적 삶의 역사와 그것을 넘어선, 그보다 위에 있는 사회의 존재인 역사 사이의 관계로서, 동시에 전개되기 때문이다.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을 빌리면, 사건이라는 것은 보편적 현상의 둘도 없는 구현이다. 그러므로 한편에는 역사의 우연성과 개별 행위의 특수성이, 다른 한편에는 우리가 거기서 어떤 문화적 질서를 인식하는 사건의 회귀적인 차원이 동시에 존재한다.(183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