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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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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5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83쪽 | 420g | 128*188*30mm
ISBN13 9788994054544
ISBN10 899405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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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노먼 매클린(Norman Maclean, 1902~1990)
1902년 아이오와 주 클라린다에서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밑으로는 세 살 터울의 남동생 폴이 있었으며, 여섯 살 때 가족이 몬태나 주 미줄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열한 살이 될 때까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고 목사인 아버지에게서 성경과 글쓰기를 배웠으며, 공부가 끝난 뒤 자유 시간에는 미줄라의 야생 숲과 강을 돌아다니며 자연과 함께 성장했다. 열다섯 살 되던 해인 1917년부터 1920년까지 미국 산림청의 임시 관리원으로 여름 아르바이트 일을 했는데, 이 네 해 동안의 독특한 체험이 소설의 큰 줄기가 되었다.
1921~1924년 다트머스 대학 영문학과에서 공부했고,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에게서 시 창작과 글쓰기를 배웠다. 1924년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두 해 동안 같은 대학 조교로 근무했고, 1926~1928년에는 고향 미줄라로 돌아와 벌목꾼으로 일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1928년 시카고 대학 대학원 영문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대학에서 셰익스피어와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에 대해 강의했으며, 글쓰기를 지도하기도 했다.
1940년 시카고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희곡 ?리어 왕?의 비극적 세계관을 주제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에서 45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임 전 10년 동안은 윌리엄 레이니 하퍼 영문학 석좌교수로 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1976년 출간되었고, 1977년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으며, 1992년에는 로버트 레드포드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미국 동부의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하고 결국은 작가가 몸담았던 시카고 대학 출판부에서 펴내게 되었다. 출간 직후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때 이후 꾸준한 명성을 유지하면서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유작으로, 1949년 몬태나 주 맨 걸치 삼림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다룬 ??젊은이들과 화재??가 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비극을 전공한 영문학자답게 물과 불의 시련 그리고 인간의 비극적 패배 등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동생 폴의 비극적 죽음, 13명의 화재 예방 요원들이 사망한 맨 걸치 화재 사건, 인디언들에게 몰살당한 제7기병대의 커스터 장군 등에 대한 글을 썼다. 이 물, 불, 커스터 얘기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지나가듯이 언급되어 있는데, 후일 화재 사건은 한 권의 책으로 나왔고, 커스터 원고는 결국 미완으로 남아 『매클린 독본』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매클린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읽은 성경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고, 그 다음에 셰익스피어, 윌리엄 워즈워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는 이런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듯한 암시들이 여러 군데에서 드러나고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우리 집안에서는, 종교와 플라이 낚시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 우리는 몬태나 주 서부의 송어 낚시 강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살았고, 아버지는 장로교 목사이면서 스스로 플라이를 엮는 낚시꾼이면서 동시에 남들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낚시꾼이라고 우리 형제에게 말했고, 그래서 동생과 나는 갈릴리 바다 위의 일급 어부들은 모두 플라이 낚시꾼이고,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은 그중에서도 드라이 플라이 낚시꾼일 거라고 짐작했다. -39쪽

스코틀랜드계 목사인 아버지는 인간이 최초의 은총 상태에서 추락했기 때문에 그 본성이 혼잡스럽다고 믿었다. 어릴 적에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인간이 나무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은총에서 추락했나 보다 하고 막연히 추측했다. 나의 아버지가 하느님을 수학자라고 생각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느님이 숫자를 잘 헤아리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리듬을 잘 따를 때에만 힘과 아름다움이 생긴다고 믿었다. 다른 많은 장로교 신자들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다. -41쪽

네 박자 리듬은 아주 훌륭한 기능을 발휘한다. 하나에 낚싯줄, 리더, 플라이가 물에서 나온다. 둘에 이 셋을 공중으로 곧바로 들어올린다. 셋은 우리 아버지의 설명대로라면 이렇게 된다. 낚싯줄이 머리 위에 왔을 때 리더와 플라이에 약간 지체하는 시간을 주어서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낚싯줄을 뒤따르게 한다. 넷에 손에 힘을 넣으며 줄을 앞으로 던져 10시 방향이 되게 한다. 이어 플라이와 리더가 줄보다 앞에 서게 하여 물속으로 가볍게 떨어지는지 확인한다. 힘은 아무 데서나 발휘하라고 있는 게 아니고, 진정한 힘이란 그것을 어디다 쓸 것인지 아는 데서 나온다. 아버지는 거듭하여 말하곤 했다. “기억해라. 낚시란 말이야, 10시 방향과 오후 2시 방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네 박자 리듬이야.”
아버지는 이 세상과 관련된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주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볼 때, 모든 좋은 것들―송어낚시나 영혼의 구제나―은 은총에서 나오며 그 은총은 기술이 가져다주고 마지막으로 그 기술의 습득은 쉽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44쪽

나는 이 협곡에 대하여 개인적으로는 아주 따뜻한 감정을 품고 있으나, 내가 낚시하기에 이상적인 곳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낚싯줄을 멀리 던질 줄 알아야 유리하다. 게다가 낚시꾼의 바로 뒤에는 절벽이나 숲이 있어서 낚싯줄을 반동 없이 앞으로만 던져야 했다. 그것은 투수가 와인드업 동작 없이 공을 던져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플라이 낚시꾼은 소위 ‘말아던지기(롤 캐스트, roll cast)’를 해야 하는데, 일종의 고난도 기술로서 나는 그것을 완벽하게 습득하지 못했다. 낚시꾼은 반동 없이 낚싯줄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것을 말아 쥐고 있다가 던져야 한다. 짧은 거리에서 아치 모양을 그리며 낚싯줄을 강물 위에 펼쳐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힘이 있어야 한다. 낚시꾼은 길게 던지기 위하여 방금 던진 것을 회수함으로써 가외의 낚싯줄을 모아야 한다. 그가 천천히 줄을 잡아당기자 상당히 많은 양의 줄이 물속에 잠겨 있었고, 마침내 물에서 다 빠져나오자 느슨한 절반쯤의 고리를 이루었다. 줄을 던지는 팔을 곧추세우고 손목에 힘을 주어 들어 올리자 그 고리는 점점 커졌고. 마침내 1시 30분 방향을 가리켰다. 이제 그의 앞에 상당한 줄이 올라가 있었으나 그걸 높이 들어 올려 강물 위로 내던져 플라이와 리더가 줄 앞에 서게 하려면 낚시꾼은 혼신의 힘을 다 짜내야 되었다. 그의 팔뚝은 피스톤이고, 손목은 빨리 돌아가는 리볼버였으며, 강한 펀치를 먹이기 위해서는 그 줄에 온몸의 체중을 실어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물속에 있는 가외의 줄이 마지막 순간까지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던지기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격에 나선 방울뱀의 자세와 비슷하다. 꼬리의 상당 부분을 똬리 틀어서 땅에다 두고서 그걸 바탕으로 상대방을 타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아던지기 기술은 내게는 언제나 어렵기만 했다. -61쪽

낚싯줄은 내 머리 위로 높고 부드럽게 날아갔다. 바람 속에 흔들리는 낚싯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나는 흥분이 되었으나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며 팔을 잘 통제했다. 낚싯줄이 앞으로 나아갈 때 그 줄에 힘을 넣지 않고 계속 떠나가도록 놔두었다. 내 눈, 두뇌, 혹은 팔 어디엔가 있는 수직 잠망경이 저 플라이가 가장 가까운 버드나무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고 알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어 낚싯줄에 확인 던지기를 하면서 그 줄이 급전직하하게 만들었다. 플라이가 수면에 떨어지기 10 내지 15피트 전에 낚시꾼은 그 던지기가 완벽한지 혹은 약간의 오차 수정을 해야 하는지 직감적으로 안다. 던지기는 너무 부드럽고 완만하여 마치 벽난로 굴뚝 속의 재가 사뿐히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조용한 감동 중의 하나는, 영혼이 잠시 당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당신이 우아하게도 뭔가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 물건이 물 위에 떠다니는 재(플라이의 비유?옮긴이)일지라도 말이다. -102쪽

강의 죽음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아니,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전반적인 패턴은 내가 현재 있는 언덕에서 저 반대편의 마지막 언덕에 이르는 계곡에다 전능한 화가가 스케치해 놓은 뱀 모양의 곡선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그 패턴은 날카로운 회전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한동안 직선으로 흐르는 듯하다가 갑자기 휘어져서 다시 흐르고, 이어 어떤 장애를 만나 다시 급격히 휘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부드럽게 흐른다. 화가는 실제로는 직선이 아닌 직선, 직각이 아닌 직각을 사용하여 가장 아름다운 곡선(커브)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그 선은 여기서 계곡을 가로질러 가다가 다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아간다.
나는 또한 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깨달음으로써 나 자신이 강이 된다. 빅 블랙풋 강은 빙하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강으로 빠르게 흐르며 급속히 물살이 세진다. 이 강은 일직선으로 곧게 흐르는 여울이나 곧 커다란 바위나 깊은 뿌리를 가진 거대한 나무들과 만난다. 이때 정확하게 직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각도로 회전한다. 이어 강물은 거대한 바위들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며 깊어지는데 그처럼 장애물을 안고 돌아가는 곳의 포말 속에 커다란 물고기가 산다. 물살이 느려지면서 위쪽의 여울에서 밀려 내려온 모래와 자갈들이 강바닥에 다져지기 시작하면서 강물은 얕고 잔잔해진다. 그렇게 다지는 일이 끝나면 강은 다시 세차게 흐르기 시작한다.-134쪽

강물 위의 아지랑이들이 내 앞에서 군무(群舞)를 추면서 서로 들락날락하는 동안, 내 인생의 패턴이 그 강의 패턴과 합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이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인생의 스토리가 종종 책보다는 강과 더 비슷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스토리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강물 소리에서 이 스토리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장차 앞날에 결코 침식되지 않는 어떤 단단한 것을 만나게 되리라고 느꼈다. 그러면 인생의 강물은 급격한 회전을 하고, 깊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이어 단단한 잔재물을 남기고서 정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낚시꾼에겐 강물의 패턴을 살펴보는 동작을 형용하는 독특한 표현이 있다. 그는 “강물을 읽는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의 스토리들을 말하기 위해서도 똑같은 일(읽기)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겪어야 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어디에서, 그리고 하루의 어떤 시간에 인생을 하나의 농담처럼 읽어야 하는지 짐작하는 것이다. 또 그 농담이 가벼운 것인지, 아니면 심각한 것인지 알맞게 읽어내는 것도 역시 어렵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강물을 읽어내는 것이 훨씬 더 쉽다. -137쪽

노년은 아버지에게 완벽한 평화의 순간들을 가져다주었다. 오리사냥을 나가서 이른 아침의 엽총 소리가 끝났을 때에도, 아버지는 낡은 군용 담요로 몸을 덮은 채 사냥용 잠복소에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엽총을 들고서 말이다. 야생 오리가 눈앞을 지나가면 아버지는 성경을 내려놓고 엽총을 들었고, 사격이 끝나면 다시 성경을 집어 들었다. 사냥개가 오리를 가져오면 고맙다는 표시를 하려고 잠시 읽기를 중단했다. 그늘 속이라 지하에 있는 것 같은 강물의 목소리는 저 앞쪽 햇빛 환한 강물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절벽과 맞닿은 그늘 속에서 강물은 깊어지고 또 심오해진다. 강물은 가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굽이치면서 자기 자신의 뜻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러나 저 앞쪽의 강은 수다쟁이처럼 햇빛 환한 세계로 나서면서 다정하고 곰살맞게 굴려고 최선을 다한다. 강은 먼저 이쪽 강가에 인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저쪽 강가에 인사하면서 그 어느 쪽도 무시하지 않는다. -186쪽

어머니는 몸을 돌려 자신의 침실로 갔다. 어머니는 남자들과 낚싯대와 엽총들로 가득한 집에 살면서 그 침실에서 홀로 자신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과 대면해 왔다. 어머니는 가장 사랑했으나 제일 아는 것이 없었던 막내아들에 대하여 내게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동생은 어머니를 품에 안고서 이어 몸을 뒤로 젖히고서 크게 웃던 이 세상 유일한 남자였다.
내가 보고를 마치자 아버지가 물었다. “내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있니?”
이윽고 내가 말했다. “동생의 손뼈가 거의 다 부러져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문앞까지 걸어가다가 몸을 돌려 확인해 왔다. “손뼈가 다 부러졌다는 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동생의 손뼈가 거의 다 부러졌습니다.” “어느 손 말이냐?” “오른손이었습니다.”
동생이 죽은 이후 아버지는 잘 걷지를 못했다. 일어서려면 아주 힘이 들었고, 억지로 일어섰을 때에도 다리의 균형이 잘맞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아버지에게 폴의 오른손을 되풀이하여 말해주어야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발을 끌면서도 일어서려 했다. 아버지는 억지로 일어선 다음에도 똑바로 걷지 못했다.
선배 스코틀랜드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아들이 싸우다가 죽었다는 데에서 위안을 얻어야 했다.
한동안 아버지는 좀 더 위안이 되는 정보를 얻어 내려고 애썼다. “그 애의 죽음에 대해서 정말로 내게 모든 걸 다 말한 거니?” “모두 다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적지 않니?” “예, 많지는 않지요.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 그게 내가 평생 설교해 온 것이지.”
한번은 아버지가 다른 질문을 해왔다. “넌 내가 그 애를 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고 한들 그 대답은 역시 같았을 것이다. “아버지, 제가 동생을 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며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평생 동안 물어온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한순간에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198쪽

젊은 시절 내가 사랑했으나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다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해하기 위해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 물론 이제 나는 너무 늙어서 낚시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큰물에서 혼자 낚시를 한다. 몇몇 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여름날이 북극처럼 긴 서부 몬태나에서 낚시하는 많은 플라이 낚시꾼들처럼, 나는 시원한 그늘이 내리는 저녁에 되어서야 낚시에 나선다. 그러면 협곡의 북극 같은 반광(半光) 속에서, 모든 사물은 단 하나의 존재로 환원된다. 그 속에는 내 영혼과 기억과 빅 블랙풋의 강물 소리와 네 박자 리듬과 고기가 입질하리라는 희망이 녹아 있다. 이윽고 모든 것은 하나로 융합되고 그 속으로 하나의 강이 흐른다. 강은 세상의 대홍수에 의해 조성되었고, 시간의 근원에서 흘러나와 돌들 위로 흘러간다. 어떤 돌들에는 태곳적의 빗방울이 새겨져 있다. 그 돌들 아래에는 말씀들이 있고, 그중 어떤 것은 돌들의 말씀이다.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 -200쪽

내가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여름 끝물이 되자, 나는 짐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사실 다음 여름이 오면 파트너가 되기로 약속을 했다. 그가 캠프에서 최고의 벌목꾼이라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톱질과 도끼질은 최고였으며, 일하는 솜씨는 빠른 속도와 맹렬한 기세가 뒤섞여서 경탄할 정도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시는 1927년이었고 물론 전기톱 같은 것은 없었다. 또 요즘과 마찬가지로 블랙풋 강 전역에 벌목 캠프나 합숙소는 없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 강가에서 여전히 많은 벌목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시대에 톱이라고 하면 빛처럼 빠른 고속 모터가 달린 혼자도 쓸 수 있는 전기톱을 사용한다. 또 톱질꾼들은 결혼해서 가족과 살며 하루에 100마일도 넘는 거리도 자동차 출퇴근이 가능하므로 그들 중 일부는 미줄라같이 먼 곳에 살기도 한다. 하지만 벌목 캠프가 있었던 때에는 얘기가 다르다. 인부들은 대부분 아주 아름다운 물건인 두 사람이 가로 켜는 톱으로 일했고, 캠프에서 제일 많은 돈을 받는 사람도 그 톱을 정교하게 설치하고 작업하여 나무를 많이 켜는 사람이었다. 톱을 켜는 2인 1조는 임금 노동자가 되거나, 아니면 ‘지포(gyppo, 精算制)’로 일을 했다. 지포라는 게, 썩 좋게 들리는 말은 아니지만 명사로든 동사로든 어떻게 사용되든 하루에 나무 수십 그루를 자르고 그 수량만큼 돈을 받는 것이었다. 정해진 임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지포를 선택하고, 아니면 임금을 받으면 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짐은 다음 여름에 내게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했고, 우리는 지포로 큰돈을 벌 계획이었다. 어느 정도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이제 대학원생이었고 경제적으로도 큰돈이 필요했으므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캠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톱질꾼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제안해 오니 마음이 우쭐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우쭐해질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또한 나는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곳은 숲과 노동자의 세계였고, 벌목 캠프는 특히나 도전적인 사항들이 많은 세계였다. 그런 도전을 피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숲에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내가 짐의 주변에 있는 것을 좋아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았고(그때는 그 차이가 상당한 것이었다) 장로교 목사의 아들인 나로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207쪽

짐은 주로 톱질과 대학에 관해서 대부분 이야기를 했다. 그와 나는 여름 동안 거의 아무것도 이야기를 한 것이 없었지만 대학 얘기는 특히 거의 꺼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내게 대학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했는데 질투나 후회에서 나온 질문은 아니었다. 그는 나를 자신과 같은 스코틀랜드 남자로 보지 않았다. 도끼질이나 톱질이 그리 훌륭하지 못하지만 운이 좋은 친구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반면에 짐은 그 자신을, 최소한 그날 밤 가죽 의자에 앉아 있는 그 자신을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 여겼다. 짐은 나를 그가 하려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라는 것이 그에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그가 자유방임주의자처럼 보였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는 굉장히 중요한 특징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국 알고보면 그런 특징이 없는 사람의 부류였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날카롭고 튀는 듯한 측면이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처럼 짐작하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그런 특징을 다소 가지고 있었는데, 관찰자의 개성이 개입하여 그것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와 나는 정치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물론 숲속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별로 얘기하지 않고 지냈다). 나는 그가 다른 벌목꾼들에게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주로 벌목꾼들이 톱질을 엉성하게 할 때 그랬는데, 말하기보다는 소리를 쳤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1920년대에 다코타 주 고향 집의 뒷문으로 쫓겨나오면서 그는 일체의 소유권을 빼앗기고 사회주의자가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짐이 내게 대학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주로 이런 가상적 질문과 관련되었다. 만약 그가 대학원에 들어간다면, 대학원 공부가 나무를 톱질하여 톱밥을 만드는 수준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그게 밥벌이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질문이었다. 다코타 주에서 받았던 교육은 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는 7학년(중 1)까지 학교를 다녔는데, 덩치가 크고 거친 선생들은 그에게 손을 자주 댔던 모양이었다. 그가 궁금해했던 것은 7학년과 대학원의 차이였다. 대학원에서도 선생들이 여전히 제자에게 손을 대는지 하는 것들이었다. “대학원에서 보낸 저번 겨울은 숲속에서 보낸 이번 여름만큼 힘들지는 않았죠.”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의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그는 우리에게 캐나디언 클럽을 다시 돌렸고, 술을 마시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 여름에 그가 내게 했던 행동은 아마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내게 대학원 수업을 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짐은 내게 수업 하나는 단단히 잘 시킨 것이었다.
거의 대부분 우리의 이야기는 벌목에 관한 것이었다. 벌목꾼들은 이야기를 할 때 벌목을 주로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벌목꾼들은 오만 가지를 다 벌목에 결부시켰다. 예를 들면,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는―당시에는 크리스마스를 제외하면 유일한,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의 휴일이었다―통나무 굴리기, 톱질하기, 도끼 휘두르기 등으로 경쟁하며 그날을 축하했다. 벌목 자체가 그들의 세계였지만 그의 집을 찾아간 날은 게임과 여자도 그 세계에 포함되었다. 여자들도 최소한 벌목꾼처럼 말해야만 했다. 특히나 욕을 할 때는 말이다. 애너벨은 때때로 “누가 그 개자식 머리 위로 붐이라도 떨어트려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붐이 뭔지 알고 있냐고 그녀에게 장난 식으로 알아내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순진무구하고 우아한 남부 여자로 되돌아갔다. 창녀는 만나는 노동자에 맞추어 욕도 잘해야 했지만 거기에 더해 말도 예쁘게 해야만 했다. -227쪽

1919년 당시, 셀웨이 숲의 엘크 서미트 주재소는 가장 가까운 길에서도 28마일 거리였고, 비터루트 분기점 꼭대기에선 14마일 거리였다. 몬태나 주의 해밀턴에서 몇 마일 떨어진 비터루트 계곡으로 가는 데도 블로젯 협곡을 따라 14마일을 내려가야 했다. 14마일을 내려가는 건 그만큼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고, 훨씬 더 위험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블로젯 협곡은 감염자 다섯 명 중 한 명만 살아남는다는 로키산 홍반열을 옮기는 진드기로 의학계에서 유명했기 때문이다. 엘크 서미트에서 블로젯 협곡의 입구까지의 28마일 산길은 산림청에서 지정한 루트로서, 나무 윗부분에 표시를 새긴 길이었다. 그 광대한 엘크 서미트 구역에서 그렇게 표시가 새겨진 길은 몇개 되지 않았다. 그 외에는 야생동물 사냥용 길이나 오래된 덫꾼들이 쓰는 길만 있었는데 그 길들은 탁 트인 산마루나 초지로 연결되었고, 그곳에서는 야생동물이나 덫꾼들이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이런 곳은 짐말들이 일렬로 걸어가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한 사람씩만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세계였다. 말발굽과 사람의 발로 걸어다녀야 하고, 그 나머지는 손으로 마무리하는 세계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아이다호 주 북부 비터루트 분기점을 가로지르던 1919년은 이렇다 할 문명의 도구가 아직 도입되기 전이었다. 가령 사륜 구동차, 불도저, 전기 톱, 공압식 드릴, 산불 진화용 화학적 물품이나 비행기 분사 등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요즘엔 제복을 입지 않거나 대학 졸업장 없는 산림 관리원이 드물지만, 1919년 당시엔 우리 주재소에 소속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주재소장까지도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산림청은 그 당시 마을에서 거칠기로 소문난 친구들을 데려와 임시관리원으로 채용했다. 우리 중의 빌 벨은 비터루트 계곡에서 가장 터프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를 최고의 산림 관리자라고 생각했고, 빌이 양치기를 죽였다는 소문은 우리의 그런 생각을 더욱 굳혀 놓았다. 빌이 그 건과 관련하여 무죄 처분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약간 실망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가지고 따지지 않았다. 몬태나 주에서 양치기 살해 건에서 방면 처분되었다는 것이 곧 무죄판결과는 같은 게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238쪽

일어나야 했던 모든 일들이 일어났고, 보여야만 했던 모든 일들은 사라졌다. 그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순간들 중의 하나지만, 그래도 하늘의 거대한 구멍과 이야기는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이야기에서 나오는 약간의 시적인 분위기도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이 이야기의 앞부분에는 이런 시 구절이 인용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이 시작된 언덕들을……. -383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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