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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 호리 다쓰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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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10*183*20mm
    ISBN13 9791186561904
    ISBN10 118656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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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갑자기 마음이 움직여서 가루이자와(?井?)에서 지내는 산속 집을 잠시 떠나 노지리(野尻)호수에 왔다. 실은 어제 오랜만에 마을에 내려간 김에 과자라도 사서 돌아갈까 싶었는데 가게들이 대부분 장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마을 외곽까지 가서야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아메리칸 베이커리를 발견하고 뛰어 들어갔지만 사고 싶은 것이 거의 없었다. 바움쿠헨 밑동 부분이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절반밖에 없어서 좋아하는 빵이지만 차마 손이 나가지 않았다.
    ---「늦여름」 중에서

    처음에는 가루이자와도 조금 물리기 시작했으니 시가(志賀)고원, 도가쿠시(??)산, 노지리호수 등을 돌 수 있는 만큼 돌아보고 내년 여름을 보낼 곳을 지금부터 물색하려고 했다. 하지만 쉽게 지치는 내 체력을 고려해 일단은 가장 편한 코스인 노지리호수로 왔다. 어쩐지 외국인들이 가는 곳만 쫓아다니는 것 같아 석연치 않은 마음도 들지만, 그들이 찾아내는 곳에는 놓치기 아까운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이 잘 모를 법한 산속에서 신기하게도 이국적인 풍경을 찾아내는데, 고국을 떠난 이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향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산속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겠지만, 불편을 참고 그들의 방식으로 길들인 것이다. 그런 곳이 내 마음을 끄는 것 같다.
    ---「늦여름」 중에서

    어쩐지 오늘은 굉장히 좋은 날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아래층에서 세수하고 올라와서 어제 보던 작은 책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하지만 막상 좋은 날을 대놓고 기다린다는 기분이 들자, 딱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우선 오늘 아침은 안개가 짙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날이 흐려서 하늘도 호수도 온통 옅은 먹색이었다. 묘코산도 구로히메산도 구름 없이 윤곽만 뿌옇고 희미하게 보였다. 이대로 온종일 흐릴 것 같은 불안한 흐린 날씨였다. 날이 흐리면 어딜 나가도 소용이 없을 테니 날이 갤 때까지 조용히 책이나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게 가장 나다운 방법이다. 이 책을 읽으러 일부러 이 호수에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늦여름」 중에서

    나로 말하자면, 이제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등을 밀어주던 공기의 흐름도 멈춰버렸다. 나는 새로운 종류의 피로감을 느꼈다. 너무나도 졸렸다. 난 그 자리에 서서 잠깐씩 잠들었다. 꿈을 꿨다. 꿈이 내 짤막한 잠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이 현실과 부딪친다. 그것이 얼마나 짧은 꿈이든 나에게는 길게만 느껴진다. 나는 하루의 모든 시간에 꿈을 꾼다.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 그러다가 꿈과 현실이 중첩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다. 가끔 어디선가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그리고 내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듣는다.
    ---「잠든 사람」 중에서

    어느새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전보다 조금 더 세게. 바람은 마치 연기처럼 나뭇가지에 걸리고 어디선가 종잇조각을 날라 왔다. 음울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그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나의 슬픔이 만족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죽은 친구를 위해 이렇게 하룻밤을 지새운 것일까? 피로와 졸음이 밀려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골목 너머의 불길한 암흑 속을 응시했다. 마치 처음으로 밤이라는 것을 목도한 사람처럼.
    ---「잠든 사람」 중에서

    어느 밤, 루이는 그 창백하고 마른 소년과 함께 아무도 없는 운동장으로 도망쳤다. 두 사람 모두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 소년은 언제부터인지 루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소년은 가냘프게 계속 기침했다. 루이는 핏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친구의 뺨이 그때만큼은 살짝 달아오르는 것을 어둠 속에서 가만히 지켜봤다. 루이는 소년의 새하얀 얼굴이 부러웠다. 루이는 그 친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루이는 그저 그 소년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교실에서 친구의 가느다란 목과 부드러운 머리카락 주변에 자신의 꿈을 엮었다.
    ---「얼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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