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는 손님들에게 책가위를 씌울까요 하고 묻는 경우가 많은 모양인데, 그것은 거절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대를 표현하고 있는 표지 '얼굴'과 본문 서술은 둘 다 역사적 사실 내지는 정보라는 점에서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니까요.
책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닙니다. 아무리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시대가 되었다 해고, 그 정도 분량으로 그렇게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없습니다. 그리고 책은 문장만이 아니라 거기에 실려 있는 지도와 초상화도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는 종합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속주 출신으로서 최고로 출세한 사례지만, 보기 드문 예외가 아니라, 속주 출신이라도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재 앞에는 활쩍 열려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간디도 인도 독립에 정열을 쏟기보다는 대영제국을 존속시키는 데 정열을 쏟지 않았을까요. 에드워드 기번과 나란히, 아니 기번을 능가했다고 말하는 편이 적당한 로마사 연구의 권위인 독일의 몸젠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인은 다른 민족을 지배한 게 아니라, 다른 민족을 로마인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하지만 당신도 나도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대학교수는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확증이 있는 것만 '사료'로 취급하고 '만약'을 엄격히 금지하는 사고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엄금'의 원칙은 전문 연구자들에게야 적용할 가치가 있지만, 일반 역사 애호가한테도 그 원칙이 적용되고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품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역사를 대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역사는 재미없다고 믿고 역사에서 멀어져버렸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현재는 연구와 소설, 즉 역사 자체와 탈역사의 양극단으로 분리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 상상으로는 결국 로마인의 기력이 쇠퇴한 탓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패기를 잃었다고 바꿔 말해도 좋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로마인은 선과 악에 그렇게 큰 규모로 발휘되고 있었던 활력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이 자신감을 잃은 결과라면, 로마인은 어느 시기부터, 왜 자신감을 잃어버렸을까요.
--- p.79, p.106, p.208, p.241
목적은 하나라도 수단은 여럿이 존재할 수 있고,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가까이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고, 앞으로도 7년동안은 계속 간직하지 않으면 안되는 '목적'은 고대로마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시도하려는 방식은 현관이 아니라 마당을 통해들어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9
로마인은 다른 민족을 지배한 게 아니라 다른 민족을 로마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아테네인이 생각하는 시민이 '피'라면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 하는 자'이다. 패자까지도 동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국가 로마를 지키겠다는 뜻만 공유하면 패자도 당장 동지로 바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화는 곧 시민권을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 p.95 머리말중에서, ---p.119 머릿말,---p122, ---pp3-6
기초적인 발견이나 발명은 그리스인의 힘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문명'으로 그것을 발전시킨 사람은 로마인이다. 다른 신을 인정하면... 결과적으로는 자기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성전 사상도, 십자군 정신도, 종교전쟁도 모두 일신교 이기 때문에 배타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심성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 p.130
1. '빵과 서커스'는 누가 한 말인가
이 말의 진원지는 풍자시인 유베날리스입니다. 유베날리스는 서기 60년 경에 태어나 135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 살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와 동시대인이고 오로지 풍자시만 썼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마르티알리스가 번영을 구가하는 로마인을 조롱하면서도 사랑한 반면, 유베날리스는 비분강개형 풍자시인이었습니다.
그가 통렬한 비난을 퍼부은 대상은 황제나 유력자나 부자만이 아닙니다. 로마 제국 동부에 사는 그리스인과 아시아인도 풍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실질강건한 로마인을 타락시킨 것은 이들의 생활 관습이라는 게 그 이유였지요. 제정으로 바뀐 로마에서는 카이사르가 시작한 개국 노선이 국가 정책으로 확립되지만, 민족주의라 해도 좋은 브루투스 등의 쇄국 노선에 공감하는 자들도 소수이긴 했지만 존재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황제들의 개국 노선에 대해서도 항상 반대파가 있었다는 얘기지요.
유베날리스의 출신지는 본국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인 반면에, 마르티알리스의 출신지는 속주인 에스파냐였습니다. 조선 대대로 로마 시민권 소유자인 유베날리스와 달리, 수도 로마에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후원을 받을 만큼 인기 있는 작가가 된 마르티알리스는 황제가 시민권을 줄 때까지 속주민이었습니다.
풍자시란 그리스 시대에는 없었던 로마 특유의 문학 형식입니다.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 로마인의 기질에 맞았기 때문에 성공한 양식이지만,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를 역사상의 사실로 생각할 때는 앞서 말한 작가의 개인 사정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간과하면 사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결과가 됩니다.
--- p.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