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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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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145*215*30mm
ISBN13 9791170611783
ISBN10 117061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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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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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자신을 떠올리는 일은 점차 사라졌다. 엄청난 부자니 뭐니 하는 말들도, 사주 카페에 갔던 시절도 모두 다 잊어버렸다. 그랬던 그녀가 아주 오랜만에 그 말-“개인 요트를 타거나 명품 쇼핑을 하러 다니게 될 거라니까?”-을 떠올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합당한 이유가. 바로 지금, 그녀가 요트 위에 있기 때문에.
--- p.13 손보미 「끝없는 밤」중에서

놀라웠다. 출렁이는 배 안에서, 커다랗게 일렁거리는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어떤 감정들이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해진다는 것. 아니다. (그녀는 결국 이 표현을 쓰기로 결정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명징하고 진실한 감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 pp.49~47 손보미 「끝없는 밤」중에서

저 여자들이 혹시 지금, 피를 흘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어떻게 그러고 살아? 세상의 모든 여성이 그런 일을 당할 리가 없었다. 세상에는 분명히 그런 일에서 제외되는 여성이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여성 중 한 명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 pp.102~103 손보미 「천생연분」중에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봐.”
물론 그는 할 말이 있었다. 그녀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네가 먼저 나를 유혹한 거 아니냐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냐고, 동네 망신, 미친 여자, 정말로 미쳐버린 거냐고 따져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 차 안에는 그의 자식이 있었다. 그녀의 자식이 아니라, 그의 자식이. 그러므로 무슨 수를 쓴다 한들, 그는 완전히 패배할 것이었다.
--- p.140 손보미 「천생연분」중에서

피터의 아내는 지난 식사 때 처음 만났다.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피터가 그녀와 함께 등장했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존재할 수 있구나. 그건 예쁘거나 매력적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놀라움이나 경외감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생명체를 조우하는 기분이었다.
--- pp.199~200 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중에서

엉뚱하게도 순간 나는 오래전 학교 운동장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고, 그제야 피터가 롤렉스를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잃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잃어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고, 그게 무엇이든 도무지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 pp.207~208 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중에서

오스틴은 신장이 164센티미터인 나보다 키가 작은 극소수의 남자 중 하나였고, 그런 점에서 나는 그에게 미약한 동지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 외모가 멋지지 못한 남자가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주목받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캐릭터를 그가 아주 잘 연기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건 내가 트랜스남성으로서 될 수 있는 한 익혀야 했던, 그러나 전혀 익히지 못했던 것 중 하나였다.
--- p.228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중에서

문워크 춤을 췄다는 트랜스맨을 두고 혜령이 한 말을 되새기는 데 이르렀다. 혜령은 그가 아주 멋졌다고 말했지만, 그렇지만, 그에게 매혹되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내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p.247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중에서

장수 할멈이 점지해줬어. 네놈 앞집에 들어가라고. (……)
뭐라고…… 하셨습니까? 신애기가 조소하며 대꾸했다.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 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그 애는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똑바로 주시했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 p.256 성해나 「혼모노」중에서

30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 p.283 성해나 「혼모노」중에서

저는 바이예요.
왜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설명하기가 힘들다. 분명한 것은 초면인 그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무례하게 굴고 싶은 마음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은석이 좋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마흔을 갓 넘긴 이 진솔한 남자가 황금 같은 주말에 시간을 허비하며 더 가여워질 상황이 못내 미안스러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 p.294 안윤 「담담」중에서

은석은 수윤이 아닌 모든 것, 내가 사귀었던 모든 연인 중 수윤을 닮지 않은, 그 애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 p.298 안윤 「담담」중에서

나도 태수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태수 씨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러냐, 했다. 그러더니 내가 어떤 사람인데, 되물었다.“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
--- p.340 예소연 「그 개와 혁명」중에서

유자는 태수 씨의 바람대로 길길이 날뛰었다. 화환과 국화꽃을 물어뜯고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향해 짖어댔다. (……) 성식이 형은 끌려 나가면서도 유자의 만행을 끝까지 지켜보려고 했다. 나는 비록 눈물이 차올랐지만, 활짝 웃고 있는 태수 씨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같이 웃어 보였다. 수진도 그랬다. 그것이 태수 씨의 마지막 지령이었기에.
--- p.350 예소연 「그 개와 혁명」중에서

-하이고, 어쩌다가.
-네?
의사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들이 발병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한다. 햇볕을 충분히 쬐질 못하니 비타민 합성이 잘 안 되잖아요? 비타민D 결핍증이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쳐 발병률을 높이거든요. 이거 모르셨어요?
--- p.369 안보윤 「그날의 정모」중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 또 있다.
나는 ‘괴물출현방’의 존재를 가족에게 끝끝내 숨긴다.

시작은 호의였을 것이다. 정모가 자주 사라졌으니까, 우리 가족이 애타게 찾아다니는 걸 목격한 사람이 여럿이니까, 겨우 찾아낸 정모는 누군가에게 얻어맞거나 욕을 먹고 있었으니까. 정모가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거나 어떤 소란에 휘말렸다면 꼭 나한테 알려줘.
--- p.376 안보윤 「그날의 정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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