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례를 낳을 무렵 석 서방댁은 변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드나들다 똥례를 변소 바닥에 낳아놓았다. 그러나 그곳에 한 무더기의 똥이 쌓여 있었고 갓난애는 그 위에서 울고 있었다. 방정도 맞다. 똥독에 빠질 뻔한 것을 픽 쓰러지며 낳아놓은 곳이 바로 똥 위였으니.
“암, 정성을 들여야지. 난 너를 똥 위다 놓았지만 말여, 똥독에 빠치지 않은 것만두 큰 다행이여. 그러기만 됐어봐라. 어떻게 됐것나. 다 삼신님의 덕분이여, 덕분이구 말구…
--- p.20
내년 가을에 혼인하게 된 분실은 길쌈한 것이 수북이 쌓여가는 걸 보면 재미가 깨처럼 쏟아져 밤을 새워도 졸음이 안 온다고 바늘을 쥔 예쁜 손으로 버선을 뒤집으며 종알대는 것이다. 박속처럼 하얀 손등은 포동포동 살이 쪄서 탐스러웠다. 옥양목버선도 하얗고 분실의 손도 하얗고…… 하얀 속에서 분실은 곱게곱게 혼수를 만들고 있었다. 하얗게 쌓여 있는 버선은 백 켤레였다. 이러니 이불, 요, 치마, 저고리, 속옷 등 다른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이것보다 놀라운 사실은 청혼이 여기저기서 들어온 것이다. 그중에서 분실은 ‘이쁘고 돈 잘 버는 신랑’을 찍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부러운 사실인가.
--- p.25
“왜 고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안했유.”
똥례는 용팔 쪽에 소리치고 얼굴을 땅에 박으며 격렬하게 통곡한다. 그러나 용팔은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지 구김없는 표정이다. 나뭇짐을 새끼로 묶으며 저쪽에서 소리친다.
“어둬지기 전에 싸게 가자구.”
똥례는 솔가리더미를 걷어버리고 바지를 추켜올리며 일어나 앉는다. 그렇다.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러나 머리는 몽롱하고 몸은 천근처럼 무겁다.
--- p.31
‘임마, 나한티만 잘 뵈란 말여. 그럼 내가 사위 삼는다. 똥렐 너헌티 준단 말여. 이놈이, 허허 참……’ 철봉은 이 말에 녹아떨어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똥례가 마음에 잔뜩 있었다. 장날마다 똥례에게 먹을 것을 사다 주곤 ‘나 똥례한티 장가간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위인이다. 그러던 차에 장인한테서 그런 말을 직접 듣다니. ‘잔치는 언제 할 거유, 잉……’ 철봉은 석서방한테 이런 말까지 물어가며 신이 나서 올라온 것이다.
“철봉이 수고했다, 잉…….”
석서방은 철봉을 돌아보면 방문을 연다. 그러나 철봉은 주춤거리며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방문을 연 사이 안을 기웃이 들여다본다. 똥례가 무얼 하고 있나 궁금하다. 석서방은 그러는 철봉을 보고 껄껄 거린다.
--- p.39
봉순이 목을 매고 죽었단 말에 석서방댁이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목을 매고 죽다니, 똥례는 어깨가 축 늘어지며 양다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봉순이 죽었단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깻묵을 먹다 재채기를 했는지 주근깨가 잔뜩 흩어진 얼굴이 뿌옇게 떠오른다.
“아이구 하느리 무섭지,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을까. 꽃 같은 아이한테…….”
“글쎄, 어떤 놈이 그랬는지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
똥례는 걸음을 멈춘다. 차마 동순이 목을 매고 죽은 곳에 가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 p.106
그러나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어제 석서방은 ‘이제 낭굴랑 그만 다녀라, 잉’ 했던 것이다. 그 사이 노랑녀가 석서방을 어떻게 구워삶았던지 영철에게 딸을 주기로 했다. 뭐 영철이라면 똥례의 서방감으론 그런대로 괜찮으니까 석서방 쪽에서 자진했는지도 모르는 것이고. 아무튼, 조서방네와 석서방네의 혼인은 가을볕의 능금처럼 한창 무르익고 있다
--- p.131
무섭던 상엿집이 이렇게 정다운 집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똥례는 세수도 안했고 머리도 빗지 않은데다 옷 먼저 갈아입은 것이 잘못이다. 밖으로 나간다. 똥례가 밖으로 나오자 추녀 끝에서 덜덜 떨고 있던 석서방이 옷 입은 딸을 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똥례는 양손으로 흰눈을 듬뿍 떠서 얼굴에 박박 문낸다. 흰눈에 검은 때가 배어나 온다. 똥례는 다시 눈을 갈아 얼굴을 씻고 메마른 머리에도 축여준다. 머리를 빗고 쪽을 찌고 크림과 분을 발라야 한다. 벌벌 떨고 있는 아버지가 가엾은 것이다.
--- p.171
장날이 되어 장보러 나가면 옥화가 자고 난 거적때기며 검불들이 산란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동평이 치워야 한다. 그러나 노랑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옥화의 부른 배를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웃음을 띄우고 있다.
“옥화야, 이게 누구 애여?”
“우리 서방님 애야.”
“우리 서방님이 누군디?”
“누구긴 누구야 서방님이지······”
옥화는 밥을 다 먹고 나서 채영감이 피던 담배를 뺏으려 한다.
--- p.190
영철은 핏기없는 얼굴을 들어 똥례를 힐끗 쳐다보고 비칠대며 방으로 들어온다. 성한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하얀 눈에도 핏발이 서 있다. 그는 비칠거리며 이불을 밟고 장롱 앞으로 걸어가서 새카맣게 화투때가 묻은 양손으로 서랍을 연다. 안호주머니에서 여러 뭉치의 돈 을 꺼내 그 속에 넣고 열쇠로 채운다.
“진질 가져올까유? 세숫물을 가져올까유?”
“아무것두 싫어······”
영철은 이불 속으로 기어들며 눈을 감는다. 똥례는 속에서 불이 나고 있다. 영철이 오기 전엔 그저 속이 답답하더니 이제는 답답하다 못해 불이 나는 것이다.
--- p.204
-응아아응응으끼르응아······.
옥화는 여전히 신음을 토해낼 뿐이다. 콩조지는 갓난애 배꼽에 달린 탯줄을 더듬어보고 그것을 이빨로 끊어낸다. 이빨로 끊으면 어린 애의 명이 길다는 것이다. 어린애는 옥화에게서 완전히 떨어져나왔다. 콩조지는 옥화의 치마를 벗겨버린다. 갓난애를 그 속에 싸서 끌어안고 가게 안을 휘둘러본 다음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버린다.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그쳐버리자 개울에서 용팔네를 쳐다본다.
--- p.220
“안사람이 오늘 새벽에 어린앨 낳았유. 그래서 오늘 나무두 못 갈거 같어유.”
석서방은 ‘뭐여?’ 하고 입을 벌리며 용팔을 쳐다본다. 고자가 어린애를 낳았다? 작대기에서 싹이 나고 부뚜막에서 꽃이 필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용팔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석서방은 벌렸던 입으로 ‘정말여?’ 하고 다시 입을 벌리며 용팔을 쳐다본다. 용팔은 실없는 말을 지껄일 놈이 아닌 것이다.
--- p.230
똥례는 영철의 시선을 피하며 돈더미를 쳐다보고 돈더미를 쳐다보다 다시 영철을 쳐다본다. 영철은 똥례를 한쪽 눈으로 찬찬히 쳐다본다. 마치 선을 볼 때처럼, 똥례는 전에 없이 그러는 서방이 우스워서 키들거린다. 저렇게 똑바로 쳐다볼 줄 알았다면 화장이라도 할 걸 싶다. 영철은- 한 참 뜯어본 결과는 여편네가 귀엽다는 듯- 빙긋이 웃으며 가을바람에 낙엽이 구르듯 얘기한다.
“내가 뭐라고 했니 잉…… 네가 나헌티 첨 올 때 말여, 한판 크게 잡으면 이 노릇은 그만둔다고 했지 잉…… 했니 안했니?”
--- p.253
똥례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영철을 노려보고 악을 쓴다.
“죽여, 죽여…….”
“야, 내가 지금 구땡을 잡아놓구 돈이 모자라서 온 거여…… 너 구땡이 뭔지 아니?”
“모른단 말유.”
영철은 조급하게 ‘섰다’를 설명한다. 그러나 조급해서 그런지 졸가리가 닿게 말이 안 나온다. 사실 ‘섰다’를 설명할 경황이 없다. 그러나 그는 되는대로 씨부린다. 삥, 땡, 가보, 따라지, 망통…… 입에 거품을 물고 한참 지껄이다 저는 구땡을 잡았다고 한다. 구땡을 잡으면 돈은 그냥 긁어들이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그래도 모르겠니?’ 조급하게 다그친다.
“모른단 말유.”
“이 똥이 모가지까지 꽉찬 년아…….”
영철은 답답하다는 듯 벽력같이 고함치며 죽을 힘을 다해서 똥례를 치기 시작한다. 똥례는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며 ‘죽이라’고 악을 쓴다. 영철은 완전히 미쳐버렸다. 젖혀지면 배를 발로 짓이기고 엎어지면 등을 그렇게 한다. 갈비뼈, 대갈통, 젖통, 닿는 대로……
--- p.303
똥례가 서방질하다 시댁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석서방이 새말 조서방네를 다녀와서였다. 입을 다물어버렸다면 그만이었지만 석서방댁은 딸이 서방질한 것은 과부들과 나무 다니던 그때에 벌써 물이 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년들아, 뭣 때미 우리 딸을 버려놨니. 똥례가 이 지경이 된 건 모두가 네년들 탓여’ 하면서 동네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과부들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년이 처녀 때두 껄렁껄렁하지 안했남. 어떤 놈이 데려갈런지 그놈 속 썩을 줄 내가 알었다니께…….”
---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