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작가는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해 왔다.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미술의 관습과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세상과 삶과 미술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40년간 미술가로 살아오는 동안 나의 질문들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 질문들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고, 어떻게 던져졌으며, 어떤 대답을 얻었는가? 그것들은 그 시기에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질문들이었을까?
--- 뒤표지에서
나는 왜 실패와 부조리에 이처럼 집착하는가. 부조리한 사물로 부조리한 시대를 비웃고, 실패를 자초하는 퍼포먼스로 우리 사회의 실패를 비판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들이 실제 현실 속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굳건한 믿음의 벽에 균열을 낼 만큼 강력한가? 무해한 수준의 투정으로, 체제의 유연한 포용력을 입증하는 허용된 농담에 그칠 뿐인가? 어떻게 이 상황을 넘어설 것인가?
--- p.13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은 거칠고 혹독한 환경에서 온다. 타인의 불운과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망각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 상실과 슬픔이 공동체를 만든다. 존재의 불안과 불확실성 때문에 공동체가 생긴다. 공유할 슬픔도, 기쁨도, 불안도 없는 사람에게는 이웃도 공동체도 존재할 수 없다.
--- p.54
구멍이 숭숭 뚫린 에멘탈 치즈 같은 세상, 정작 보아야 할 것은 사각지대에 있고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이 시야를 점령해 버린 안개와 미로의 시대이다. 이런 풍경 속에서 지평선 너머, 무지개 너머를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까. 소실점 너머의 유토피아를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그 말을 믿을까.
--- p.99
나는 내 글과 그림이 한가한 잡담이 아니기를, 차라리 어색한 침묵이기를 바란다. 어쩔 줄 모르는 순간을 대면하는 불편한 경험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 나의 작업은 그럴 만큼 강력한가. 말문을 막을 만한 침묵인가.
--- p.105
이 글들이 그리는 지도는 숲의 지도, 나뭇가지와 뿌리의 지도, 가다가 끊기는 길들로 가득한 미로의 지도가 될 것이다. 체계가 없다는 것, 목적지가 없는 방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무위의 자세로 이 일을 해보자. 그것이 공회전이었는지, 아무 결말 없는 잡담이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되는지는 나와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 p.116
과거의 질문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새로운 질문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중요한 질문들을 놓침으로써 완전한 목록을 만들려는 계획은 미완성으로 남고,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남으로써 이 계획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 아니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질문에서 질문으로 이어지는 삶은 질문하지 않는 삶보다 나은가.
--- p.118
사다리는 위로 올라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이다. 돌계단이 아니라 나무 막대 몇 가닥에 의지해서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사람의 모습은 날아오르는 새의 몸짓에 비할 바 없이 초라하다. 저 위에 도달하면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한 채 추락의 위험에 몸을 맡기는 무모한 도전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면 인간의 삶이 대체 무엇인가.
--- p.158
내가 하는 일은 미술이 아닐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미술가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미술에 관해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지만, 내 작업이 미술인지, 미술에 대한 메타비평인지 미술의 외양을 빌려 쓴 생각의 방법인지 분명치 않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미술을 해왔는지, 아니면 남들의 미술에 대한 논평과 비판, 때로는 조롱에 시간을 낭비해 왔는지. 남들의 미술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나의 미술을 해야 할 텐데, 아직 시작도 못 한 느낌이 든다.
--- p.196
나에게 아직 불가능한 꿈이 있을까.
--- p.199
미술이라는 이름의 영토는 이로써 계속 팽창할 수밖에 없다. 미술사의 거장들과 동시대 원로 중진들이 주요 거점을 각자 차지하고 있으므로 신인들은 그들이 점유한 번화가를 피해 뒷골목, 지하실 따위의 틈새를 찾아서 파고들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아직 빈 땅이 남아 있는 교외로, 신도시로 빠져나가서 그곳에서 자신들의 정착지를 찾는다. 그 정착지가 미술이라는 도시에 편입될지 아니면 경계 밖의 이름 모를 외딴섬이 될지 모르는 채 미술가들은 밖을 향해 뿔뿔이 흩어진다.
--- p.223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나 역시 40년 동안 농담을 하고 있다. 망치니 구둣솔이니 삽이니 하는 세상의 엑스트라들을 주연으로 등장시켜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대사를 지껄이게 만드는 농담, 아무것도 아닌 것과 모든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농담, 농담인지 진담인지 잡담인지 알 수 없는, 어디쯤에서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내뱉는 헛소리, 세상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농담이다. 그것은 할 얘기가 없어서 심심풀이로 늘어놓는 흰소리가 아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농담 같은 세상에서 흘리지 않은 눈물이다.
--- p.253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자의적인 필터를 통해 볼 수밖에 없고, 주어진 세계를 넘어서는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잃어버렸다. 새로운 출발은 이 절망적인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지평선은 없다. 우리는 지평선을 다시 만들 것이다.
--- p.264
무엇을 하기에 나는 예술가인가? 무엇을 하기에 나는 인간인가? 추악한 전쟁, 보편적 가치의 붕괴, 수치심 없는 정치와 절망적인 생태 위기 앞에서 초연하게 나만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으로 내가 예술가라고, 내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 p.284
나는 여전히 예술이 시대와 현실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이런 역할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미술가들을 동시대인으로서나 미술가로서나 인정하기 어렵다. 시대와 현실은 내가 미술을 하는 기반이고, 미술을 하는 이유이다.
--- p.285
기록하고 암기하고 상자에 담고 못 박고 쇠사슬로 묶고 땅에 묻고 돌에 새기고 기념비를 세우고 책을 쓴다. 그 대부분은 얼마 안 가서 사라진다.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남지 않고, 남기고 싶어 한 욕망만이 남아서 주인 없는 묘비로, 녹슨 문장(紋章)으로, 나를 모르고 나도 알 수 없는 낯선 이들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떠돈다. 누군가 그 잔해 속에서 내가 남긴 빛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는 기쁠 테지만, 그때는 이미 기쁨도 나도 없다.
---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