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수호대』를 읽는 동안 책의 ‘처음’을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생각했다. 책은 나무로부터 시작된 것, 그렇다면 숲을 도서관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현실이 힘겨워 책 속으로 도망치는 일은 어쩌면 나무에 깃드는 일. 나무는 정령이고, 도깨비고, 수호신이고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야기 속 아이들처럼.
‘너희’라는 구분은 ‘다문화’ 아이들을 한데 뭉뚱그린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성실하게 ‘관계의 언어’를 발명하니까. 각자 다른 언어로 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느티나무의 품 안에서, 아이들은 어른이 ‘앗아 갈까 두려운 행복’을 경험한다. 가장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슬아슬한 기쁨이 아이들을 ‘수호대’로 묶는다. “권리와 행복을 지키려면 알아야 할 게 많아”서 『느티나무 수호대』는 바쁘다.
나는 ‘대안’을 요구하는 사람을 의심한다. 그것이 자주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발언되기 때문이다. 대안은 누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김중미가 만든 세계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본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그 세계의 주인이다. 나는 “어른도 어린이의 친구가 될 수 있지.”라는 말을 믿는다.
- 장일호 ([시사IN] 기자)
‘우리’와 ‘너희’를 나누는 세계에서 ‘너희’에 속한 아이들이 스스로를 남루하다 여기는 순간, “느티 샘”은 어김없이 찾아와 손을 내민다. 외로움을 혼자 버티고 살던 아이들에게 “고맙고 대견하다. 견뎌 줘서.”라고 인사하는 그의 다정한 마음은 이어달리기를 하듯 다음 주자에게로, 그리고 다시 다음 주자에게로 연결된다. 아이들은 느티 샘을 통해 경험한 환대를 자신만의 즐거움으로 독점하지 않는다. 그들은 타자로 규정되어 배척되고 배제되는 존재들을 향해 망설이지 말고 이리 오라고 말한다.
『느티나무 수호대』의 ‘타자’는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이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이들을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개인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김중미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배려해야 할 불쌍한 존재가 아닌,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삶의 주인공으로 생생히 피어나며 ‘우리’와 ‘너희’ 사이에 그어진 선을 지운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단 믿음이 공기처럼 존재하는 시대에 연대와 우정을 강조하는 일은 종종 순진하다 치부된다. 하지만 느티 샘을 비롯한 “느티나무 수호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이 ‘함께’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은 오직 연대와 우정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 확신은 당분간 이 ‘순진한 마음'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될 것이다.
- 김영희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 물꼬방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