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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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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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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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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8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130*200*20mm
ISBN13 979116909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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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11월의 그날 고든 선생의 진료실에서 차를 몰고 돌아올 때만 해도, 나는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세세하게까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의사로서, 그 병이 끝내 이기리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뜻밖의 결과나 기적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종국에는 질 게 뻔한 싸움이었다. 내 머릿속 유일한 의문은, 패배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인가였다.
--- 「서문: 다들 나더러 수재라고 했지」 중에서

슬프게도, 아버지의 고립을 유발한 악성 사회심리는 심지어 가족에 의해서도 발산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바깥세상에 비하면 우리가 아버지에게 관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의 깜빡거리는 정신은, 아버지를 영원한 현재 속에 가두는 한편 당신의 자식들을 영원한 체념 속에 가둬버렸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질문을 해올 때면 우리는 어차피 대답을 기억하시지도 못하실 텐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아버지를 타박하고는 했다. 정말이지 잊고 싶은 장면들이다.

때로는 아버지에 관한 대화를 마치 아버지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우리끼리만 나누기도 했다. “아버지는 통제가 안 돼.” “아버지는 기억도 못하실걸.” “아버지는 지금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야.” 그런 말들을 우리는 아버지의 면전에서, 때론 심지어 아버지를 향해서 내뱉고는 했다. 그러고 난 뒤에는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도 우린 도무지 자중할 줄을 몰랐다. 물론 우리는 아버지가 그저 손상된 뇌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 「8장: 아버지를 친할머니처럼 요양시설에 가둬두고 싶어?」 중에서

아버지에게 있어 질병을 인식하는 능력의 상실은 사실상 방어기제나 다름없었다. 어찌 보면 그 병이 병든 아버지를 보호하고 있었던 셈이다. 위안이 되는 사실들은 또 있었다. 우리는 결코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아버지의 불안을 다소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나 역시 아버지에게 거짓말하는 데 대한 거부감을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이를테면 라지브 형이 아버지에게 말도 없이 여행을 떠났는데도 전화로 미리 알린 후에 출발했다고 둘러대는 식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예전 같으면 화를 내고도 남았을 일들을 더는 노여워하지 않았다. 말다툼 같은 건 대부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아버지는 어떤 일을 부인하거나 그것에 대해 질책할지언정 그 일을 오랫동안 마음에 두진 않았다. 단기기억이랄 게 거의 없다 보니, 아버지는 인생을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몇 분 내로, 때로는 더 빠르게 아버지의 기분은 격노에서 체념을 지나 기쁨 비슷한 것으로, 혹은 적어도 익살이나 장난기?그것도 내가 자라는 동안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의 장난기?로 바뀔 수 있었다.
--- 「10장: 글쎄다, 외로움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어!」 중에서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답을 알면서도 물었다. “저라면 수액 주사는 절대로 놓지 않을 거예요.” 재스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아버님은, 이런 날이 오면 당신을 그냥 보내달라는 말씀을 자제분들께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우리는 몇 분쯤 말없이 앉아 있었다. 형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나는 고개를 돌려 형의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 늘 그렇게 서로 달랐다. 형은 우유부단함에 대한 인내력이 굉장히 낮았다. 외과의사의 사고방식을 가진 보호자로서 형은 앞으로 취해야 할 조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보아하니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형이 결정해.” “정맥 주사를 제거해주세요.” 형은 기다렸다는 듯 재스민에게 이 말을 남긴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 「14장: 걱정할 것 없다, 다 잘될 거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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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진단 이후 부친과 가족의 삶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진실하고도 세세하게 그려낸다. 엉망이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그것이 한 가족의 삶에 수반한 변화 (…) 이 감동적인 책은 독자에게 공감과 이해, 호기심을 서서히 주입한다.
- 캐서린 쇼어플러 (『월드 리터러처 투데이』)
의사가 쓴 질병 회고록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 (…) 저자의 경험을 통해 보듯, 생의 필연성과 그것의 종말이 지닌 위력은 우리를 계몽시키고, 용기와 겸허함을 갖게 한다.
- 킨슈크 굽타 (『민트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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