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과정 전문성과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학교장부터 만들어 내야 한다. 무려 535만의 학생을 바꾸려면 45만 교사를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1만 2천 교장부터 바뀌어야 한다. 교실은 선생님이 하기 나름이고 학교는 교장 선생님이 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교장이 바뀌면 조만간 평교사와 행정직, 공무직의 일하는 자세가 바뀌고 시나브로 학교의 교육과 문화가 바뀐다.
내가 보기에, 혁신학교를 내걸고 학교 혁신을 추동해 온 ‘1차 진보 교육감 시대’가 2022년 지방 선거를 계기로 수명이 다한 가장 큰 이유는 학교장의 위치와 역할을 민주적 리더십으로 바꾸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 진보 교육감이 다수였던 시대에도 내건 정책 및 구호와 무관하게 대다수 교장은 과거의 관행에 안주하며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학교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 지수는 낮았다. 진보 교육감 시대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좌초한 이유다.
--- 「지금 왜 교장직무가이드라인인가?」 중에서
오랫동안 학교교육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에 집중하기보다는 보여 주기 식 전시성 행사,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각종 프로그램 운영, 상부 기관의 지시와 통제에 의한 행정 처리가 우선시되어 왔다. 학교장은 행정 업무 중심의 학교 시스템을 교육과정 운영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과감히 바꾸고, 학교를 학습 조직화해서 모든 교사들이 학습공동체를 통해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서 교육과정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여건 마련과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학교장 스스로도 행정가의 정체성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 내외의 교원학습공동체에 적극 참여하여 교육과정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꾸준히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
--- 「학교장의 직무 원칙 및 실천 과제 - 1. 교육과정 운영 업무」 중에서
교장은 살피고 결정할 일이 많다. 책임의 무게도 크고 무겁다. 그렇다고 해서 책무성의 무게에 짓눌리면 ‘관리’에 치우치기 쉽다. ‘관리’에 무게가 실리면 교육의 본래 기능을 발현하기 어렵다. 교육은 학생을 고유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학생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민주시민교육도 가능하다. 시민의 제1 조건은 생각과 의견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궁리하고 결정하는 경험 속에서 의견이 만들어진다. 규제와 훈화에 의한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실천하고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시민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 이런 교장의 실천적 지향이 학생 자치를 가능하게 한다.
--- 「학교장의 직무 원칙 및 실천 과제 - 3. 학교 구성원 관련 업무」 중에서
학교의 담장을 낮추고 마을을 학교로, 학교를 마을로 흐르게 하고 지역의 교육 자원을 연결하는 것은 교장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고 해내야 하는 일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지역사회에는 학교와 함께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활동가들과 단체와 기관이 정말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많다. 문제는 연결이다. 점과 점을 연결하여 선을 만드는 일, 즉 네트워킹이 교장의 대외 업무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 「학교장의 직무 원칙 및 실천 과제 - 4. 대외 업무」 중에서
앎과 삶이 연계된 교육과정이 실제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일치할 수 있도록 학교를 운영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급식 먹는 순서를 고정하지 않고 학년별로 동일한 일수만큼 순환 배식하고 있다. (……) 급식 순서, 운동장 사용, 교실 배치 등에서 학교는 대체로 고학년을 우선시하는 관행이 있다. 효율성 측면과 함께 어차피 기다리면 순서가 오니 결국 평등한 거 아니냐는 논리가 작동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논리와 과정 자체에 이미 많은 메시지가 녹아 있다. 수업 시간에 하는 ‘약자를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말과 현실에서 만나는 모습이 정반대라면 그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학생들이 실제로 배우는 곳은 교과서 활자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생활 모습이다.
--- 「학교의 모든 것은 교육과정이다」 중에서
교장은 교육자인가 행정가인가 하고 교장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곤 한다. 교장이 되는 순간 아무래도 행정가의 정체성에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교장이 교육자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 교사들의 인식과 괴리된, 성과와 실적 위주의 학교 운영에 매몰되기 쉽다. 교장이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교실 수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학급당 한 시간씩 교실 수업을 실천하였다. 수업은 학년군별로 친구, 환경, 꿈 등의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그림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직접 찾아 교재로 활용하였다. 교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과 정서적 상황, 물리적 교실 환경 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직접 체감함으로써, 간접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현장 밀착형 교육활동 지원이 용이해졌다.
--- 「교육활동이 중심이 되는 학교 업무 재구조화」 중에서
‘하고 싶은 게 뭔가? 그것을 왜 하고 싶은가?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가 우선이고, 이것이 정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예산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학교에서 예산은 12월에 짜고 조정은 1월에 하며, 신학년 워크숍은 2월에 하고, 교육 계획서는 3월에 나온다. 순서가 뒤바뀐 셈이다. (……) 돈으로 학교와 교사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교실에서도 돈을 주고 책을 읽으라 하는 방식은 책 읽는 자체의 기쁨과 자발적 열의를 앗아 가는 결과를 낳는데 학교도 마찬가지다. 예산이 교사의 열정보다 앞서면 자칫 예산 집행은 소비가 되고 심지어 예산이 부담스러워 미니멀리즘을 고수하는 사태도 나타날 수 있다. 학교와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과 의미다.
--- 「예산, 임자 없는 돈 굴리기」 중에서
교실 앞 칠판 위에 태극기 대신 교육공동체 협약을 걸어 놓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참신한 발상. 태극기는 교실 게시물의 기본 옵션으로 의심 없이 늘 그 자리에 있어 왔다. 태극기 대신 공동체 협약? 안 될 일이 무엇이며 오히려 함께 만든 약속이 교실에 더 어울린다. (……) 씁쓸한 기분이 찾아온 건, 그가 교장실을 나가고 나서였다. 젊은 담임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그는 나를 관리자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나는 결정할 수 없으니 교장인 네가 결정하고 책임져라’ 하는 그분의 무의식에 나도 모르게 장단 맞췄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자기 학급 교실에 태극기를 걸지 공동체의 약속을 걸지, 그 선택을 판단하고 허락할 권력을 가진 너그러운 관리자 노릇에 잠시 취했던 것이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선생님, 교실에 태극기를 달지 공동체의 약속을 달지 그것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면 교실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주인으로 살아가는 곳이니까요.”
--- 「학교에는 주인이 없다」 중에서
학교 조직을 하나의 정원이라 보았을 때, 정원에는 적당한 물, 좋은 토양, 적당한 빛이 필요하지만 특히 현재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람이다. 바람이 통하려면 각 주체들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만들고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게 교사들이 자기 성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능숙한 정원사가 교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보호자들의 지나친 학교 참여나 요구, 학교의 지나친 통일화와 행정적 규율 및 업무가 교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거나, ‘모든 반이 같게’라는 학년 통일 문화가 강하면 학교 정원에서는 절대 아름답고 풍성한 꽃을 볼 수 없다.
--- 「학교라는 정원을 가꾸는 교장」 중에서
스승의 날, 모든 교직원에게 각각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선물하셨다는 교장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보며 그 사람과 관련된 무엇인가가 떠올라 시를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관계의 끈이 이어져 있을 때 가능하다. 관계의 끈이 튼튼하면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도움을 청하기도 쉽다. 학교 안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단지 나의 힘듦을 들어 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에게 든든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 나의 힘듦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연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일상에서의 인간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 「따듯한 교육공동체를 만드는 힘」 중에서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학생들이 그저 가르칠 대상이기 이전에 ‘같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의 온도이다. 누구나 비슷한 질량의 선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과 교감하고 나면 화장을 왜 하느냐, 왜 교복 규정을 안 지키느냐 이런 잔소리가 참 무색해진다. 불안하기로 따지면 어른들보다 아이들 편이 훨씬 심각하다. 시를 읽으면서, 때론 타로 상담을 하면서(10년 차 나름 타로 고수다) 학생들을 만나 보면 그들의 불안감과 잘해 보고 싶은 선의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걸 헤아려 학생들의 자리를 세워 주는 것은 어른의 몫일 터이다. 경청과 연민이 없는 정의는 폭력이라지 않는가.
--- 「환대의 마음으로 학생을 만나다」 중에서
이후 여름이는 교실 밖으로 분리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여름이가 안정되니 학급이 안정되었다. 여름이는 다음 해부터는 거의 교장실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누구보다 의젓한 아이로 졸업했다. 담임이 혼자 책임지게 하거나 온갖 사람들이 임시방편으로 아이를 달래는 방식으로는 이런 변화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는 여러 영역의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 그와 함께 일상적으로는 학교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잘 조직해서 학생의 문제를 담임과 함께 의논하고 문제를 풀어 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문제 행동’이 있을 때 상담위원회가 되었든 생활위원회가 되었든 그 학생과 눈 맞추고 관찰했던 어른들이 담임 교사와 함께 모여서 논의하고 해결 방향을 찾는 방식이어야 한다.
--- 「학생을 둘러싼 관계를 맺고 푸는 전지적 참견자로서의 교장」 중에서
학부모의 민원 문제는 학교장이 초기부터 신속하게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첫째, 문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학부모의 민원 대상이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로 전환되어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셋째, 신속한 문제 해결을 통해 교사-학생-학부모 간의 감정 소모와 상처 입는 정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밝혀진 심각한 교권 침해나 교사들이 힘든 상황에 처한 사례들의 경우 대개 학교장이 적극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장은 학교의 대표이자 총괄자이다. 주어진 권위와 책임감으로 교사의 교육권을 보호하고 학생-교사-학부모가 서로 잘 공존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 「학부모, 교육의 실질적 주체로 세우기」 중에서
학부모와의 소통은 학급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도 큰 힘이 된다.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는 ‘내 아이’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아이와의 대화에 한계가 있어 궁금증을 다 해소하지 못해 답답할 때가 있다. 학교 차원의 신입생 학부모 연수는 학교장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시간도 포함하고 있다. 학교의 교육철학부터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비전과 방향, 학생들에 대한 이해 등으로 구성하여 학교장이 직접 설명한다. 학교장이 교장실에만 앉아 있거나 학부모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학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 학부모 곁에, 학생 곁에, 교사 곁에 학교장이 함께하고 있다는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학교와 학부모, 진정한 교육의 동반자가 되다」 중에서
교사들이 마을 안에 살고 있으면 마을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 수업과 마을 자원의 연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교사의 생활권과 학생의 생활권이 같기에 교사의 경험이 수업에 반영되기도 하고, 교사가 하고 싶은 수업을 마을에서 찾을 수도 있다. 또한, 그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였기에 학생과 가정의 생활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 마을과 연계하여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들이 전근 가지 않고, 우리 학교에 남아 있기를 늘 희망했다. 그래서 초빙으로 남기기도 했고, 다른 학교에서 교사를 초빙해 오기도 했다. 남기고 싶어도 교원 정원 문제로 초빙을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교육청에서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면 인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일은 사람이 한다. 마을과 협력할 줄 아는 교사가 장기간 근무해야, 마을 결합 교육과정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축이 가능하고, 마을과의 연계가 지속될 것이다.
--- 「마을 안의 학교와 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