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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싸묵싸묵 천천히
그케 되았지라 큰손님 책 마중 느림 스뽄지 차 저승은 멀다 나 먼야 죽지 말게 간병 기술 미운 애기 아이고 편하다! 으째 이케 안 죽어진디야! 노모의 전화 2부 기다린 시간 기다릴 시간 부모 밀랍 인형 노모의 걱정 기도 잿밥 염불 그리움 한글 세대 김현 조금난리의 여름 휴, 배, 부, 르, 다 진도 옥천극장 무화과 기다림 3부 먼지의 도망 먼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람 동물 쥐 잡기 매생이 멍 소와 꽃뱀과 낙지 여름의 그림자 칼치, 갈치 뭐라고? 얼굴 소나기 조도바 4부 눈사람 되어 서 있다 말 한글날 촛불 미련 재미 아우라 미우면 다시 한 번 조문 한용운과 최남선 가슴 아프게 눈사람 겨울을 나며 해설 유연하고 속 깊은 성찰의 세계 -정우영(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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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옛 친구가
아버지 돌아가신 줄 모르고 전화했다. 어머니가 전화 받자 안부 나눈 뒤 친구 바꿔 달라고 했다 산에 있어 전화 못 받지라 언제쯤 돌아온다요? 안 돌아오지라. 인자 산이 집이다요 예? 그람, 죽었단 말이요? 그케 되았지라 ---「그케 되았지라」 전문 막걸리 부어 주며 무사고 기원하시는 어머니 오십 다 되어서야 내 이름 달고 산 차 후반 인생 보드라워야 한다고 스뽄지가 물 빨아들이듯 어려움 닥쳐도 보드라워야 한다고 스포티지 차, 스뽄지 차 부르며 비손하시는 어머니 스뽄지 차를 쓰다듬으시면서는 너헌티 딱 맞는 차다! 그라지람자, 나도 고로코롬 생각허요 ---「스뽄지 차」중에서 사흘 장마 열흘 장마 도랑물 넘쳐 실개천 넘쳐 온 동네 다 잠긴다 조금만 되면 물난리라 조금난리 나중엔 조금리 비 안 온다는 라디오 뉘 집에 있다냐 ---「조금난리의 여름」 전문 지난번 영화에서 죽은 배우 이번 영화에 다시 나오니 죽은 귀신 살아났다고 관객들 소스라치게 놀라 의자 밑으로 숨고 문 찾아 나가고 ---「진도 옥천극장」 전문 조도바야! 니 머리 어디서 했냐? 조도에서 왔다고 조도바라고 불리는 젊은이 쑥스러워 웃는다 그냥 저그 읍내 갔을때… 동숭은 뭔 그런 것을 물어보고 그랴? 미장원에서 했긌지. 요새 이발소를 누가 가기나 하남 이발소고 미장원이고 무신… 조도바 즈그 엄매가 해 줬구만 맞단께. 즈그 엄매가 날 때부터 저러코롬 맨들어 줘서 일도 잘허제! 원래… 머리가… (조도바가 히죽히죽) 곱슬머리로 태어난 게 일 잘하는 거랑 무슨 상관일까 나도 속으로 (히죽히죽) ---「조도바」중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더러 촛불을 밝힌다. (죽어 있는 사람들은 깜깜한 밤중에도 촛불이 필요하지 않다) ---「촛불」중에서 난, 그리워지는 것들은 벽 쪽에 걸어 두고 애써 등 돌려 돌아눕는다 지난겨울에도 그해 겨울에도 그리고 올겨울에도 눈은 오지 않아 어쩌자고 비까지 내리지 않아 해마다 그리워지는 것들은 모두 벽 쪽에 걸린다 ---「겨울을 나며」중에서 |
시인의 말
어릴 때 향리의 노인들은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는 말과 ‘말이 말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커서 보니,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도 진지하게 ‘말이 말한다’고 했더라. 다들 말하는 입과 속내가 다르다는 뜻 아닐까? 그래서 절집의 선가에선 아예 언어와 문자를 내치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창했으리라. 나는 말을 내치지 못하고 시집을 또 엮는다…. 2024년 여름 무산서재(無山書齋)에서 박상률 |
예전의 어른들은 한 단어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말씀하셨다. 인생의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시인의 어머니는 “그케 되았지라” 한 말씀으로 넌지시 이야기를 건넨다. “산에 있어 전화 못 받지라” “인자 산이 집이다요”(「그케 되았지라」)라든가, “집에 큰손님 왔”(「큰손님」)다는 은근한 비유는 이제 더는 듣기 어려운 말이다. 언어나 가재도구나 굴곡진 인생살이나 모두 일상이 곧 예술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비극을 어떻게든 견디며 살아왔던 세대가 사라지며, 그들이 체화한 생활의 지혜가 사라지고 반짝이고 화려한 것만이 진리인 시대. 느림의 미학으로 “후반 인생 보드라워야 한다고/스뽄지가 물 빨아들이듯/어려움 닥쳐도 보드라워야 한다고”(「스뽄지 차」) 스포티지 차를 ‘스뽄지 차’라고 부르는 어머니야말로 인생의 지혜를 언어화한 이 시대의 진정한 시인이다. 시집을 읽다 보면 “물때 맞춰 양동이 이고 바닷가로 가던 할머니, 어머니”(「여름의 그림자」)의 뒷모습과 “식당에서 새 나오던 음식 냄새”(「휴, 배, 부, 르, 다」)를 배부르게 들이마시던 시절의 어린 박상률이 그려진다. 고난과 비극의 시대를 유희적 언어로 형상화해낸 시집을 읽다 문득 눈을 감으면 “죽은 귀신 살아났다고/관객들 소스라치게 놀라/의자 밑으로 숨”(「진도 옥천극장」)던 수십 년 전 어르신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 막걸리 한 사발을 따라 줄 것 같은 밤이다. - 김성규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