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
평범한 소년이었던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는 현 구자라트 주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카람찬드 간디는 상처를 거듭해 네 번 결혼했는데, 그 네 번째 아내인 푸틀리바이와의 사이에 얻은 3남 1녀 중 간디는 막내였다. 간디의 가문은 인도의 카스트에서 상인 계급인 바이샤에 속해 있었다. ‘간디’라는 말은 힌디어로 식료품상을 의미한다.
간디는 중산계급의 대두라는 역사적 물결과 종교적 개혁이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고 있을 무렵 조부로부터는 고결한 성품을, 부친으로부터는 무욕의 실천인 무소유 정신을, 모친으로부터는 경건한 신앙심을, 비슈누파로부터는 아힘사(ahims?, 비폭력) 정신을 이어받고 태어났다.
소년 시절의 간디는 몹시 수줍음 많고 외모나 재능도 특출한 데가 없었다. 그러나 양친에 대한 효성과 의무에 대한 헌신,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씨와 타인의 결점을 꼬집기 싫어하는 성품 등은 학생 시절부터 나타났다. 이러한 성품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내용과 범위가 확충되어 갔다.
간디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1888년 9월 4일 열아홉 살에 영국 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는 비슈누파의 신앙 속에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모친에게 육식과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고 유학의 길에 올랐다. 간디는 영국 런던의 이너 템플 법학원에서 공부하는 3년 동안 이 세 가지 맹세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이 계명을 준수했다.
3년간의 영국 유학 생활을 통해 간디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미래의 간디를 형성하는 기초적인 부분을 여기서 얻었다. 그는 영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새로운 종교와의 접촉을 통해 신지론자, 기독교인, 무신론자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인도적인 요소, 유럽적인 요소, 인류적인 요소를 터득하게 되었다.
스물두 살의 간디는 변호사의 자격을 얻고 1891년 7월에 인도로 돌아왔다. 그는 봄베이로 나와 변호사 개업을 했으나 타고난 수줍음과 정직한 성격 때문에 변호 사업이 시원치 못했다. 그러던 차에 형의 지인이며 남아프리카에서 크게 사업을 하고 있던 포르반다르 출신의 회교도 상사로부터 고문 변호사로 초청을 받고, 1893년 5월에 운명의 땅 남아프리카 나탈의 더반 항에 상륙했다.
거기서 그는 약 7만 명의 인도 노동자들이 백인의 착취와 압제 밑에서 학대받고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간디가 나탈에 이르자마자 위촉받은 소송사건 때문에 더반에서 프리토리아로 가던 중, 백인 차장이 그를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피터마리츠버그 역의 1등 찻간에서 그를 차 밖으로 쫓아냈다. 이 뼈저린 체험은 간디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그가 해야 할 의무를 생각했다. 그가 받은 모욕을 인종 편견이라는 뿌리박힌 질환의 한 징후로 생각하고 자신이 겪은 개인적 모욕을 전 인도인, 아니 전 인류의 모욕으로 전환했다. 그는 이 질병을 근절하기 위해 투쟁하기로 결심했다.
간디는 1893년 5월부터 1914년 7월까지 21년 동안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 동포를 위해서 헌신적인 투쟁을 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과 인도의 민족적 자존을 위해서 투쟁의 생애로 들어갔다. 이것이 그의 사상인 사티아그라하 운동이다.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통해서 간디의 사상은 발전하고 그의 정신은 성장하고 그의 인격은 고매해졌다. 그는 개인이나 사회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진리와 비폭력이라는 윤리적 원리를 사회의 일상 문제에 적용했다. 이 운동은 종교와 철학과 윤리가 하나가 된, 그의 일생에 걸친 활동이었다. 간디는 20년 이상이나 남아프리카에서 그의 운동을 수행해 1914년에 인두세 반대 투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7월 남아프리카를 떠나 런던을 거쳐 1915년 1월에 귀국했다. 그리고 민족의 지도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19년까지는 인도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주로 사회적인 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헌신했다. 그러나 1920년 틸라크가 예기치 않은 죽음을 당함으로써 그는 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1947년 인도가 해방되기까지 정치에 참여했다.
김선근은 1946년 경북 금릉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공부해 문학사와 문학석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도덕 및 종교교육 교육학석사, 2003년 인도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철학과와 인도철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인도 네루 대학교 한국학 담당 교환교수였고, 2005년 8월에는 일본 류코쿠대학에서 교환 강의를 했다. 1991년 외무고등고시위원(국민윤리),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도철학회 고문과 한국불교학회 명예회장 겸 법인이사, 선진통일연합 공동대표다. 저서로는 ≪인도 정통철학과 대승불교≫(동국대학교 출판부, 2005), ≪모든 이웃을 부처님처럼≫(민족사, 1999),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hatma Gandhi≫(New Delhi: Vikas Publishing House, 1996), ≪마하뜨마 간디 철학연구≫(불광출판부, 1990), ≪베단따 철학≫(불광출판부, 1990), ≪여의주≫(삼화출판사, 1981) 등이 있으며, 지식이 삶에서 실천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