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일정을 달력 앱에 저장해 둔다. 운동 약속은 빨간색, 개인 약속은 노란색, 회사 일정은 회색. 달력의 70퍼센트는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다. 주말은 중간중간 노란색이 섞여 있다가도 오후나 저녁에는 꼭 빨간색으로 끝난다. 축구를 시작한 후, 내 주변 사람들은 ‘함께 축구하는 사람’과 ‘축구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당연히 요즘 대부분의 만남은 앞쪽에 몰려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축구를 좋아할 수 있어요?”
좋아하나? 매일 발목에 C 타입 테이프를 둘둘 말아 깁스마냥 테이핑하고, 도수 치료사를 가족보다 더 많이 만나고, 회사에서 잘못할 때마다 “지은 씨, 출판인이야, 축구 선수야?” 소리를 듣고 자괴감에 빠지는데 이 운동을 어떻게 마냥 사랑만 할 수 있을까. 내게는 애증으로 가득한 운동이다.
--- pp.7~8 「프롤로그 축구하며 쌓아 올린 이 황홀한 기억들에 대하여」중에서
무리한 운동 일정으로 골반과 허벅지에 탈이 나 몇 주간 도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올 때마다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환자를 담당하게 된 내 치료사는 울상이 된 얼굴로 “대체 일주일에 몇 번이나 축구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민망함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여덟 번…”이라고 대답하며 끝을 얼버무렸다.
토요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A팀에서 축구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한바탕 샤워한 후 낮잠을 몰아 자다가 일어나 저녁을 입안에 욱여넣고 다시 B팀에서 축구하고, 12시간 뒤인 일요일 아침에 다시 축구를 가는 나날을 반복하던 때였다. 내 말에 그는 “네? 선수들도 하루 시합 나가면 적어도 24시간은 쉬는데요? 게다가 회사 다니시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치료사 선생님 축구 잘해요? 저 좀 가르쳐 주세요.”
--- p.36 「1장 미안해할 시간에 한 발 더 뛸 것」중에서
이제 나는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이다. 점심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공을 차던 고등학생 남자애들처럼, 축구만 할 수 있다면 만사 제쳐 놓고 어디든 달려 나간다. 전에는 길을 가다가 공터를 만나면 ‘여기는 땅이 놀고 있네. 텃밭이라도 하지. 나라면 여기다 상추도 심고…’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기서 연습해도 되겠다. 땅은 좀 울퉁불퉁해도 리프팅할 만한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묻는 ‘저녁에 뭐 해요?’라는 질문에 ‘축구해요.’라고 답변할 때 쾌감을 느낀다. 이제 나도 이 한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나만의 운동장이 있다.’
놓친 줄도 모르고 살아가던 것들을 하나둘 손에 넣는 요즘이다. 이러니 내가 공을 안 찰 수 있겠냐고.
--- p.84 「2장 팀과 사람과 사랑」중에서
왜 수영은 못해도 웃음이 나는데 축구는 못하면 잠도 못 자고 혼자 우울의 땅굴을 파게 되는가. 왜 희라의 승모근은 축구 할 때만 잔뜩 올라가는가.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랑 때문이다.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잘하고 싶어서 상처받는 것이다. 스스로의 플레이가 한심해서 환멸을 느낄 때마다 내 머릿속에 드라마 〈아내의 유혹〉 OST가 재생된다.
“왜 나는 (축구) 너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 내 모든 걸 다 주는데 왜 날 울리니. (…) 용서 못 해.”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너무 좋아하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자꾸만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라는 마음에 좌절하게 된다. 그 좌절이 나아가면? ‘아, 다 때려쳐.’라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수영을 하다가 문득 웃음을 잃고 울상이 된 채로 공을 차던 나의 지난 모습이 떠올랐다. 기대를 내려놓으면 축구하는 시간마저 흥겨워질까. 못해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뛸 수는 없을까. 그러면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될 것만 같은데.
--- pp.120~121 「3장 공과 삶의 균형을 찾아서」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자꾸만 ‘축구하자’고 들이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발견한 그 낯선 세계를 좋아하는 이에게 일부라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상대는 어쩌면 이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할 수도, 아니면 학을 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전자의 마음이기를 바라지만 후자의 마음이 들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경험해 보고 ‘이건 나와 안 맞네.’라고 확인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니까.
우리가 살면서 성별이나 나이, 직업, 학력, 장애 유무 등 수많은 장애물 앞에 부딪혀 시도도 못 해 보고 ‘이건 나와 안 맞을 거야’ 생각하며 지레 포기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경험해 보고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을 좀 더 깊이 알아 가는 방법 중에 하나다. 언젠가 지인은 나와 축구한 하루를 이렇게 적었다.
“나도 오늘만큼은 남자애들처럼 이 문장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나와 비슷한 이가 내가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삶의 확장 가능성은 조금 더 커진다. 월드컵 경기도 안 보던 나를 친구 성애가 축구를 발견하게 도와주었고, 그 덕에 매일 공을 차는 이로 거듭났다.
--- p.176 「4장 그라운드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나」중에서
축구는 내게 실패와 좌절을 어떻게 잘 쌓아 나갈지 알려 주는 시뮬레이션 같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좌절이 일상이었다. 나는 왜 나이가 많아서, 나는 왜 구기 운동을 안 해 봐서, 왜 피지컬이 약해서 이 모양인가. 스스로를 다그치다 보니 자신감은 계속 떨어졌다. 망설이다가 패스할 시기를 놓쳤고, 같은 편이 고립되어 있어도 “여기, 여기로 패스! (공) 밟아!”라고 소리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껏 쪼그라들다 못해 ‘나 이제 이 운동 그만둬야지’ 생각하고 팀에서 나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힘든 인생인데 이런 자잘한 좌절들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인정하고 싶었다. 정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있다고.
그런 나날을 견뎌 낸 지금은 어떨까. 나는 꾸준함의 힘을 믿게 되었다. 리프팅 운동을 처음 하면 발등에 한 번 맞추는 것조차 힘들다. 한 번 맞추고 떨구고, 다시 한 번 맞추고 떨구고. 이 훈련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드디어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섯 번 이상 리프팅할 수 있는 때가 온다. 다섯 번만 넘긴다면 이후에 리프팅 실력은 수직 곡선을 이루며 상승한다.
--- p.207 「에필로그 필드 위에서라면 몇 번을 넘어져도 괜찮으니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