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뭔데요?” 내 질문에 아빠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사람이지. 너희란다.” --- pp.10-11
아지트는 뱀숲으로 넘어가는 경계와 가까웠다. 숲을 따라 한참 걸어가다 보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표지판 건너편에 있는 숲을 우리는 ‘뱀숲’이라고 불렀다. 누군가 표지판 너머로 걸어갔다가 뱀을 봤다고 소문이 난 뒤부터 그곳의 이름은 뱀숲이 되었다. --- p.21
“처음 파란 나라를 만든 취지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왜 이곳을 만들었죠?”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걸 지켜보기 위해서 이 마을을 만들었어요. 우리 마을에 부모 없는 아이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원칙은, 계속 지켜 나가야 합니다.” --- p.34
“다들 진지한 척하는 게 웃겨서 말입니다. 사실 우리 부모 ‘놀이’를 하고 있잖습니까.”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저 사람 제명해야 해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주 아빠는 전혀 기죽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평소의 조용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러분 다 즐기고 있잖아요. 아이들을 입히고 먹이고 잔소리도 해 가면서 부모 놀이를 하고 있잖아요. 아닌가?” --- p.61
“너, 어른들이 술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우주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우주가 입을 열었다. “그날 우리 아빠 봤지?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해. 마음속에 감춰 놓은 진짜 말들. 그리고 슬퍼하기도 해. 슬퍼하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평소보다 날 빤히 봐. 내 얼굴에 무언가를 숨겨 놓은 것처럼. 그때 바로 어른은 취해 있는 거야.” “미안해.” 진심이었다. 우주의 아픈 부분을 꺼내게 한 게 후회스러웠다. 우주가 말했다. “너를 받아 준 건, 네가 이 세계의 일부를 보았기 때문이야. 너를 믿는다는 뜻은 아니야.” --- pp.77-78
도서관에는 파란 나라 밖의 마을에 대한 백과사전이 있었다. 여러 마을에 관한 정보를 지형, 식생, 기후 등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어찌나 재미없는지 그걸 끝까지 읽은 사람은 우주 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어떤 마을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어떤 마을은 산이 마을 면적의 70퍼센트가 넘었다. 인구나 성비도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우리가 다른 마을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알려 주는 책은 없었다.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가족을 이루고,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만나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부족한 부분은 상상으로 메웠다. 산이 많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산을 뛰어서 오를 것이다. 바다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숨을 쉬지 않고 오래 잠수할 수 있을 것이다. --- pp.102-103
엄마가 노래를 부른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엄마가 내 볼을 문지른다. 나는 그 촉감이 좋아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엄마의 몸이 내 몸처럼 느껴져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엄마가 말한다. “사랑해, 아가야. 사랑해.” 나는 자고 싶지 않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참을 수 없이 잠이 온다. 엄마는 잠이 드는 내 귓가에 속삭인다. 지구만큼 사랑해. 태양만큼 사랑해. 우주만큼 사랑해. 그 모든 걸 합친 것보다 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