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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한 소녀가 또 사라진다

: 창작동인 울 2집

사유악부 시인선-0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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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28*188*20mm
ISBN13 9791198530769
ISBN10 119853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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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자 얼음탑에 기어올라 누웠다 어깨를 구부리며 등을 기대니 불면의 밤낮에 선 이 얼음 침대는 포근하다 이때 비치는 일광은 노곤한 빛이리라 나는 오랫동안 지쳐 꿈도 잃었다 그러니 곰에서 사람을 꿈꾸는 일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꿈꾸기는커녕 사람을 본다면 잡아 얼음 굴속에 냉동시키리라 쑥과 마늘 대신 얼음으로 꿈꿀 원시의 시원이 그립다 오래 잠드니 햇살이 뜨겁다 빙탑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발목이 젖는다 어슬렁, 마음이 차가워진다 햇빛 뜨겁다 빙하에 뜨거운 봄이 오다니....
--- p.17 「정남식 - 북극의 잠」중에서

다시 아침입니다
황급히 무도회장에서 떠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놓였지만
유리구두를 찾는 왕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눈이 빠지고 넋이 빠질
이때,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잡풀로 덮일 듯이
마침내 귀중한 걸 잃어버린 사람같이
하이힐은 서 있습니다
--- p.53 「서연우 - 침묵」중에서

쉼 없이 쉼표 찍고 쉼 없이 연결한 문장
숨이 찬 끈으로도 산다는 게 고마워서
해안 끝 황홀한 낙조여!
차마 너를 못 들인다
--- p.70 「임성구 - 마침표 증후군」중에서

동생아 저 놈이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보는구나 괜찮다 저런 놈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지 동생아 우리 작전 성공한 거지 뿌듯하구나 내가 내 동생의 부탁을 다 들어주다니 오빠가 미안하다 오빠가 미안하다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 p.90 「김승강 - 동생과 춤을」중에서

나침반 침이 떨면서 사랑의 지극을 찾고 있다
거의 찾아온 것 같은데
불안에 떨고 있다
어쩌면 진짜가 발굴될지도 모를
그러나 발굴되어 봤자
역시 그 유물은 증명할 길이 없을
순수하고 아름답고 진부한
오랜 연금술처럼
여전히 발굴되지 못한 채 꿈속을 나뒹굴며
심지어 거짓인지도 모를 우리의 심장을 점령하며
낯설고 벌겋고 순수한 얼굴을 만들어 쓴
인간의 미로를 따라
--- p.98 「이주언 - 출토를 위한 가설」중에서

달의 방 달빛 출렁이는 방 달을 보는 방
무엇이든 좋습니다
서늘한 골목의 저녁달을 기다리듯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달에는 노숙의 냄새가 배어있어 노란 작업복을 말리며
달의 냄새를 먼 곳까지 타전하던 그때를 생각합니다
손금을 후벼 파며
끊어내지 못한 인연처럼 골목 구석구석 서성이는
겨드랑이 젖은 달을 몰래 방으로 들일 수 없을까요
--- p.108 「김명희 - 달방」중에서

더는 보이지 않는 백구 자리에 눈곱 낀 봄이 오고 밭주인 남자는 괭이처럼 구부러진 구석을 도맡았다. 이따금 여름을 내려온 새끼 고라니가 목줄 없이 묶인 남자의 눈빛을 뒤적여 백구를 불러냈다. 투두둑, 밭 귀퉁이에서는 도라지꽃 잇몸 새로 돋는 소리 떨어지고 믿고 싶지 않다는데도 흰 저녁이 조각조각 긴 슬픔을 따로 물려주었다
--- p.120 「박은형 - 백구, 그후」중에서

멀어진 길만큼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대를 오래 그리워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없습니다
늘어나는 시간만큼 좁아진 길을 마주하면서
들찔레 개망초 번지는 바람 속으로
나는 날마다 그대와 나란히 걷는 일을 생각합니다
빛과 어둠을 넘어 나이와 황금과 무관
세상에서 가장 길고 향기로운 그곳은
내가 멀리 가고 싶어 높이 둔 곳입니다
--- p.143 「최석균 - 사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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