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말했다. “엄마, 책장을 보고 있으면 책에 덮여 숨이 막힐 것 같아.”
결혼 전 아이를 좋아한 나는 최소 셋은 키우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습관처럼 말했다. 하지만 첫째를 출산 후, 철없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친정,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주말부부였던 나는 이른바 ‘독박육아’를 했다. 모유 수유가 좋다고 해서 첫째와 둘째 각 1년씩을 모유 수유했다. 이유식은 유기농만 먹이겠다고 무항생제 소고기 안심이 오는 매주 수요일을 기다려 아침에 첫째를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고 둘째를 안고 줄을 서서 유기농마트에서 식재료를 샀다. 놀이가 좋다는 말을 듣고 온 집안을 놀잇감으로 채웠고, 결혼 전 ‘전집은 절대 사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은 온데간데없이 사들였다. 아이 또래 엄마들과 만나서 육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그렇게 ‘엄마’라는 이름값을 하며 살았다.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다가올 때쯤, 10평대에서 20평대로 이사를 했다.
--- p.40
그런 아들을 보니, 문득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아쓰야가 보낸 백지 편지에 잡화점 주인 할아버지가 보냈던 답장이 떠올랐다. ‘인생이 지도라면 당신은 목적지가 없는 백지상태 지도인데, 백지는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으니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는 답장을 통해 앞으로 아쓰야가 그려갈 삶을 응원했듯 나도 엷은 미소의 여유를 보이는 아들이 그려갈 지도가 어떤 지도가 될지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다음 치맥 자리에서는 오늘처럼 후회하지 않게 백지 지도에 자신을 그려가는 아들에게 “잘 자라 주어서 고마워!”라고 먼저 말해줘야지.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좀 더 따뜻한 엄마가 될 수 있도록.
--- p.80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시간과 하얀 종이 위의 공간. 조용한 아버지만의 세계에서 아버지는 마음껏 당신의 세계로 만들고 계셨나 봅니다. 아버지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1950년대에 어렵지 않은 가정이 얼마나 될까요. 아버지도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셨지요. 위로 고모님 세 분 모두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돈 벌러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었던 아버지만 집안에서 대학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위 세 누님께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니 해보고 싶던 것도 특별히 없었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해볼 수 없는 가정 형편이라 삶이 즐겁지만은 않았겠죠. 아버지는 헌책방에서 굴러 나온 시집 한두 권 얻어 보면서, 들로 산으로 다니며 고달픔과 외로움을 달래는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가장 돈 안 드는 최고의 놀이가 책 읽는 것이었겠습니다. 집안의 경제적 현실을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는 사범대를 나와 교사가 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해 아이들 낳고 키우며 훌쩍 시간이 지난 게 아버지도 마흔쯤이 아니었을까.
미주알고주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생각과 상황은 아버지 서재의 많은 책 사이에 손수 적어 놓은 글귀, 발간한 문집에 썼던 글들, 아버지가 쓴 시들을 통해 저 나름의 짜깁기로 완성해 놓은 것입니다.
--- p.120
나라의 일원으로서 진짜 애국자가 되기로 했다. 지금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애국자가 되기로 한 나는 현재 자기계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연스레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 자신 또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꾸준히 조금씩. 칼날을 벼리듯 나 자신도 다듬어 가고 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아픈 몸을 보살피고 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하루 만보 걷기도 벅찼던 체력은 10㎞ 달리기에 도전할 수 있는 체력으로 변해가고 있다. 흐물거리는 뱃살은 여전하지만 요실금과 불면증을 유발했던 허리 통증은 사라졌다. 몸이 좋아지는 것이 서서히 느껴진다. 집안을 열정적으로 정리한다. 내 성정이 정리와 영 거리가 멀어서 아직도 정리해야 하지만 이것도 언젠가 잘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방바닥을 닦는다. 아이들 영어를 가르친다면서 정작 나는 일본어를 배우고 있지만 이 또한 방법을 찾을 것이라 기대한다. 체력을 키우고 자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하루하루가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즐거움을 기본으로 성장한다.
체력을 키우니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방법을 찾게 되었다. 지금 당장 해결법을 찾지 못해도 결국엔 방법을 찾게 된다. 인생에서 기본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애국자가 되어가는 나는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 p.159
두려운 마음 모두 망상이란 걸 깨달았다. 남편은 내게 항상 말했다. “왜 숨기고 말을 안 하냐고….” 단번에 OK를 하지 않았지만 그런 걸로 두려움의 망상까지 가질 필요는 없었다. 진실한 대화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두려움을 없애고 마음을 조금씩 털어놓는다. 미움받을 용기를 내고 자유롭게 말하려고 한다. 소통하지 않고 내 멋대로 생각하는 습관을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남편에게도 나의 어릴 적 힘듦을 조금씩 말하고 표현한다. 약간 충돌이 발생하지만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중이다. 이제 남편이 나를 많이 이해해 준다. 힘이 났다. 나는 거부당하던 내면 아이와 살고 있었다. 거기서 나름대로 애쓰며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애쓰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변화시켰다. 내면 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가 이제는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평화롭다.
책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나온 보리 한 톨 이야기다. 실험실에서 30센티 나무통에 보리 한 톨을 심었고 겨우 보리 몇 알이 열렸다. 형편없는 수확이었다. 나무통을 깨고 뿌리 길이를 쟀다. 그 거리는 11,200킬로미터였고, 서울과 부산을 왕복 열네 번이나 오가는 거리였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존재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런데 그 보리를 보고 ‘야, 너는 왜 이렇게 형편없냐?’라는 소리를 할 수 있냐는 이야기다.
아픔은 필연이다. 나를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게 하는 보물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나에겐 두려움의 아팠던 경험이 그런 것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진한 위로와 공감을 해 줄 힘이 생긴 것이다.
--- p.200
박정희
저는 독서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외롭고 괴롭고 방향을 찾지 못할 때마다 제 곁에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 얘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당장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이 점차 변하게 될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마법의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지금의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키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응원하겠습니다. 힘!
유승훈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마무리합니다. 함께한 아홉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각을 말하는 건 쉬워도,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글을 쓰며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펼칩니다. 일에 매몰된 경주마의 삶에서 시간과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40대 직장인의 이야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 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