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면 탐스럽고 하얀 산목련이 핀다. 비가 후둑후둑 내리는 날은 텀블러에 갓 끓인 뜨거운
물을 담아 들고 비옷을 입고 숲길을 걷는다. 활짝 핀 산목련 한 송이를 조심스레 따서 텀블러에 넣고 우려낸다. 뜨거운 산목련 차를 후후 불어 마시면 나의 몸은 숲이 된다. 비가 된다. 나는 산목련 차를 마시기 위해 태어났다. 일 년에 한 번 한 모금이면 충분하다. 비는 바위에 돋아난 이끼를 흠뻑 적시고, 계곡물을 타고 춤을 춘다. 그때 알았다. 물이 자신의 앞에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이미 알고 있음을. 숲을 지나면 마을이 나오고, 더 큰 마을에서 쓰레기 소각장과 하수처리시설을 만나고, 그 모든 유독물질
과 죽은 물살이 떼들을 품고, 1초에 원자폭탄 여섯 개가 폭발할 때와 맞먹는 만큼의 열을 흡수하고 있다는 바닷물이 될 거라는 걸.
-정혜선 ‘물의 감정 속편’ (23쪽)
나는 기후위기 문제를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자유냐 제재냐는 갈림길에 선 입장이 아니라 질병의 치료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좌우보다 헌신과 사랑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그런 마음으로 2021년 끝내 완성하지 못해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에 담을 수 없었던 단편소설을 얼마 전 마무리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와 사랑의 변덕을 병치한 작품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우울함과 좌절감을 겪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고 사랑으로 돌파하라고. 과거의 좋았던 날씨를 떠올리고 드문드문 찾아오는 현재의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고 내일의 근사한 날씨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지구를 더 사랑해 보자고.
-김기창 ‘날씨를 이야기하기, 운명을 말하기’ (30쪽)
생태슬픔과 불안에는 다른 종들, 예로부터 이어 온 선조들의 유산, 미래세대들, 살아 숨 쉬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걱정과 염려가 담겨 있어요. 상실 후에 겪는 슬픔을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경험으로 이해한다면 생태슬픔도 그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실에 대한 애도가 필요해요. 물론 생태슬픔은 기후위기나 생태파괴와 같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되기에 어디까지를 생태슬픔으로 이해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보통 인간사에서 경험하는 상실과는 결이 다르기도 하고,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상실과 슬픔의 주체로 애도할 만한 대상인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동식물의 멸종과 같은 죽음, 옳다고 믿었던 가치와 신념의 상실, 삶의 터전과 서식지의 파괴, 나아가 인류 전체의 미래 삶에 대한 희망의 상실까지 이미 개인 차원의 상실을 넘어 공동체적이자 지구적 차원의 다양한 상실을 마주하고 있어요.
-이나경 ‘생태슬픔과 전환의 축복’ (64쪽)
‘인류세 변환론’은 인류세의 새로운 현실이 구시대 홀로세의 기본전제, 표준, 제도, 관행을 재편하고 재구축해야 할 필요를 증대시킨다고 진단한다. 변환론에 따르면 인류세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 역사와 지구 역사를 나누던 인식론적 관행이 허물어졌다. 인류세는 단일 원인이나 단일효과로 포착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으므로 인간의 실존적 조건과 미래관을 근본적으로 재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세 논의에는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문학, 철학, 종교학, 교육학 등 다학문적·초학문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인류세-1의 지질학계는 마지막 순간에 인류세 지정을 백지화시켰다. 아마 크뤼천 자신도 인류세 명칭을 지질학적으로 확정하는 일이 이렇게 까다로울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조효제 ‘인간과 세계를 재구성한 인류세 논쟁’ (107-108쪽)
1.5°C 라이프스타일 실천은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에 전기차를 타자는 캠페인이 아니다. 이는 자동차를 사용하는 습관을 버리자는 캠페인에 가깝다. 20세기식 탄소 집약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주거, 출퇴근, 식생활, 의류와 전자제품 구매 및 사용 방식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거지와 식습관, 교통수단, 심지어 근무지까지 새롭게 고려해야 한다. 생태적 한계를 일상생활에서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 거대한 산업이 된 육류 생산보다는 비닐봉지 사용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고소득 국가의 경우 재활용보다는 자동차 안 타기, 육식 안 하기, 비행기 안 타기, 재생에너지 구매하기 등이 훨씬 효과적인 감축 방법이다.
-고이지선 ‘공공은 풍요롭게, 개인은 검소하게’ (142-143쪽)
기후격변을 비인간의 정치로 생각하고자 함은 “예측불허의 상황에 놓인 지구”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모면할 수 없이 현행의 현실로 닥쳐온 위기의 지구에서 우리 인간은 인간 아닌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것인지를 사유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비인간의 생존과 활동을 인간만큼의 주체로서 다루고자 하고 정치와 권력을 사유하는 방법 자체를 바꾸고자 한다. 존재론적 평등성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정치를 사유하고자 한다. 인간도 아닌 것을 정치의 주어로 다룰 수 있는 정치의 개념을 창안하는 것이다.
-최유미 ‘포네의 정치, 조에의 정치’ (167쪽)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등과 위기를 해결해온 과정이다. 우주선 지구호는 이미 정원 초과 상태에다 여기저기서 고장 경보가 울리고 있지만 다른 배로 바꿔 탈 수도 없고 어떤 승객을 임의로 하선시킬 수도 없다. 함께 타고 가면서 배를 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오늘날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는 생태적 각성이나 공동체 의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항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인문학, 승객들 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과학, 배를 수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교육의 역할이다.
-현병호, ‘기후위기 시대, 인문학의 역할’ (214-215쪽)
환괘는 풍수환이라고 읽습니다. 바람이 불어오고 물결이 칩니다. 그 물결 위로 배 하나가 흔들리며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그 배 안에는 왕과 환渙의 마음, 즉 전환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제사 드리며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런 시기에 전환의 길을 성찰하고 그 길을 한마음으로 같이 찾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합니다. (…) 환괘와 짝을 이루는 이야기는 절괘節卦입니다. 수택절, 연못에 가득 찬 물이 상징입니다. 절괘는 절약, 절제, 조절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조금 더 읽으면 생태적 삶의 실천입니다. 환괘의 전환은 지나치게 확대되었던 의식을 조절해서 절약하고 절제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게 됩니다. 삶을
전환하고 생태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고 무엇보다 삶의 달콤함을 즐기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삶의 전환을 고통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의식 진화의 풍요와 이어지게 됩니다.
-김재형 ‘주역으로 풀어본 바람과 물의 의미’ (235-236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