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동무들이여, 우리 생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현실을 직시합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되고, 짧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우리 몸을 건사할 수 있을 만큼의 음식만 얻어먹으며, 일할 수 있는 자는 마지막 남은 힘이 다할 때까지 일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곧바로 끔찍하고 잔인하게 도축 당합니다. 이 영국 땅의 동물들은 한 살이 넘어가자마자 행복이나 여가의 뜻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영국의 동물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동물들의 삶은 끔찍하고 노예처럼 고됩니다. 이게 명백한 사실입니다. … 왜 우리는 이 끔찍한 상황을 이어가고 있는 거죠? 그건 바로 우리 노동의 대가 대부분을 인간들이 훔쳐가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인간, 바로 인간이 문제입니다.
--- pp.10~11
우유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비밀이 곧 풀렸다. 매일 돼지들의 사료에 섞여 들어간 것이다. 이제 사과가 익어가고 과수원 풀밭에는 바람에 떨어진 사과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동물들은 마땅히 이 과일을 동등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돼지들이 사용할 데가 있으니 바람에 떨어진 과일을 모두 주워 마구 보관 방으로 가지고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몇몇 동물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든 돼지들, 심지어 스노우볼과 나폴레옹까지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돼지들은 상황 설명을 위해 스퀼러를 내보냈다.
“동무들! 설마 우리 돼지들이 이기심과 특권 의식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상상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사실 우리는 우유와 사과를 싫어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이것들을 가져가는 유일한 목적은 바로 건강 유지 때문입니다. 우유와 사과는 돼지들의 복지에 굉장히 필수적인 성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건 과학으로 증명된 겁니다, 동무들.) 우리 돼지들은 정신노동자입니다. 이 농장 전체의 관리와 조직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여러분의 행복을 보살핍니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건 다 여러분을 위해서인 겁니다. 돼지들이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존스가 다시 돌아올 겁니다! 네, 존스가 돌아올 거라고요! 분명합니다, 동무들.”
--- pp.40~41
이 무렵 돼지들이 갑자기 농가로 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동물들은 이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초반에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 듯 싶었지만, 어김없이 스퀼러가 나타나 경우가 다르다며 동물들을 설득했다. 스퀼러는 농장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돼지들이 조용히 일할 장소를 차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또한 단순한 돼지우리 대신 집에서 사는 것이 지도자(최근 들어 스퀼러는 나폴레옹을 일컬을 때 ‘지도자’라는 칭호를 붙였다)의 위엄에 더 어울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돼지들이 부엌에서 밥을 먹고 거실을 휴게실로 쓰는 것도 모자라 침실에서 잠까지 잔다는 소식을 듣자, 몇몇 동물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했다. 복서는 평소처럼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아!”라며 넘겼지만, 침대를 반대한다는 규 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클로버는 헛간 끝으로 찾아가 그곳에 적혀 있던 일곱 계명을 다시 확인해 보려 했다. 클로버는 자신이 알파벳밖에 읽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뮤리엘을 데려왔다.
“뮤리엘, 네 번째 계명을 읽어줘 봐. 절대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아 ”
뮤리엘이 더듬더듬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적혀 있어.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시트를 깔고 잠을 자서는 안 된다.’”
클로버는 네 번째 계명에 시트 이야기가 있었는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벽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그게 맞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마침 개 두세 마리를 데리고 그 앞을 지나가고 있던 스퀼러가 이 사태를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었다.
“동무들, 우리 돼지들이 농가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죠? 그러면 안 되나요? 침대에 반대하는 결정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축사에 있는 짚 더미도 어떻게 보면 침대입니다. 규칙은 시트에 반대하는 것이었어요. 시트가 인간의 발명품이니까요. 우리는 농가 침대에 있는 시트를 제거하고 담요를 깔고 덮고 잡니다. 물론 매우 안락한 침대입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해야 하는 정신노동을 생각하면 필요 이상으로 편안한 것도 아닙니다. 설마 우리에게서 휴식을 빼앗으려는 건 아니지요, 동무들? 너무 피곤해서 우리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지요? 그 누구도 존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 pp.73~74
비탈을 내려다보는 클로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만약 클로버가 지금 자신의 생각을 말로 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몇 해 전 인간을 타도하기 위해 애썼던 그때, 그들이 목표로 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라고 말이다. 메이저 영감이 반란을 선동하던 그날 밤, 그들이 기대하던 건 이런 공포와 살육의 현장이 아니었다. 클로버가 혼자 미래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그 사회는 아마 모든 동물이 배고픔과 채찍으로부터 해방된 사회, 모두 평등하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일을 하며,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보호해 주는 사회였을 것이다. 메이저가 연설을 하던 날 밤, 자기의 앞발로 새끼 오리 떼를 보호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대신,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개들이 주위에 깔려 있고, 충격적인 범죄를 자백한 동료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반란이나 불복종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상황이 이렇더라도 존스의 시대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는 것, 무엇보다 인간이 돌아오는 것은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녀는 충실하게 열심히 일할 것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따를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지휘를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와 다른 동물들은 이런 것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희망을 품고 애를 쓴 게 아니라고 느꼈다. 이러려고 풍차를 건설하고 존스의 총알을 마주한 것이 아니었다.
--- pp.9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