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로서 나는 때때로, 나와 화학의 관계가 엄마와 못생긴 아기의 관계랑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못생긴 아기도 엄마 눈에는 한없이 예뻐 보이는 것처럼, 까탈스럽다고 소문난 화학이라는 아기가 내 눈에는 매력적으로만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화학 하면 고약하거나 독하거나 인공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학교 교과과정 중 선택 과목에서 제일 먼저 탈락하는 미움받는 과목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의 아기를 예쁘게 소개하는 일은 엄청난 미션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이라할 만하다.
나의 미션을 위한 최상의 조건은 상대가 화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화학 아기를 소개하면 대개는 눈을 크게 뜨고 당혹스러워하는 얼굴로 묻는다. “화학으로 뭘 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상대방의 어깨를 움켜쥐고 마구 흔들며 열정적으로 외치고 싶어진다.
“뭐든 다!! 모든 게 화학이야!!”
--- p.7, '프롤로그' 중에서
띠디디딧, 띠디디딧, 띠디디딧!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하마터면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벌렁거렸다.
“마티아아아스!!”
분노의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나의 음성 시스템이 아직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했다. 비몽사몽과 육박전 태세가 기묘하게 섞인 자세로 남편 쪽으로 몸을 던져 핸드폰을 낚아채 극악무도한 알람을 서둘러 껐다. 젠장, 6시다. 아침 6시. 남편 마티아스에게는 아주 끔찍한 습관이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이틀은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조깅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 때문에 내가 늘 그보다 조금 일찍 잠을 깨야 한다는 데 있다. 나의 하루를 스트레스 호르몬과 함께 시작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마티아스의 멜라토닌 수치를 낮추기 위해 나는 커튼을 열어젖혔다.
“흐으음.” 여전히 잠이 덜 깬 상태로 남편이 웅얼거린다. 나 참, 기가 막혀서.
멜라토닌 분자는 뇌 중앙에 자리한 솔방울샘이라는 작은 내분비샘에서 생산되며, ‘수면 호르몬’이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런 별명이 붙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멜라토닌은 우리의 활동 일주기(circa dies) 리듬, 그러니까 수면-활동 생체리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 수치가 높을수록 우리는 더 피곤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편리하게도 빛이 멜라토닌의 집결을 막아준다.
빛의 효력이 서서히 마티아스에게도 미치는 것 같다.
--- p.14, '화학자가 아침을 시작하는 법' 중에서
치약이나 가글액 광고에서는 자기네 상품이 치태를 막아줄 거라고 자랑한다. 훼방꾼처럼 굴고 싶진 않지만, 화학자로서 나는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치태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 하지만 치태의 내부 조건을 바꿔, 그곳에 자리 잡은 박테리아가 살기 어렵게 만들 수는 있다.
우리가 설탕, 즉 탄수화물을 먹으면, 박테리아들이 신나게 그것을 씹어 먹고 그 보답으로 시큼한 방귀를 뀐다(비록 최고의 비유는 아니지만, 친구의 다섯 살짜리 딸에게 이렇게 설명하자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 후로 아이는 이를 아주 열심히 닦는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이 비유를 다시 써먹지 않으리요). 설탕을 먹은 박테리아들은 이제 복잡한 화학 과정을 거쳐 그것을 소화한다. 박테리아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신진대사를 통해 당 분자를 산 분자로 바꾼다. 그 신진대사가 우리 치아 표면에서 이뤄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치아의 법랑질은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라는 광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까 말한 요나스의 치약에 이 성분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는가? 그 물질이 치아에도 있다. 치아 물질로 치아를 닦는다? 정말 기이한 상상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기이할 뿐만이 아니라 충치 예방에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충치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고 나면 더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 p.59, '모든 욕실은 화학 실험실이다' 중에서
나는 두 정거장이나 일찍 내렸다. 악취 때문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땀 냄새가 옆에 선 잘생긴 매력남한테서 난다는 걸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릴 때 악취의 근원지를 명확히 확인하고야 말았다. 그 남자에게서는 트랜스-3-메틸-2-헥센산, 줄여서 TMHA 냄새가 났다. 이것은 지방산의 일종인 카프로산의 친척이다. 염소를 뜻하는 라틴어 카프라(capra)를 따서 카프로산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염소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나기 때문이다. 카프로산은 이른바 포화지방산으로, 탄소 사슬에 단일결합만 있고 이중결합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카프로산에 이중결합을 추가하면 불포화지방산이 되고, 이 이중결합에 다시 메틸기(메틸 그룹)를 추가하면 TMHA 분자가 탄생한다. 특유의 염소 냄새를 풍기는, 그야말로 숨 막히게 하는 땀 냄새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분자다.
어쩌면 ‘우엑’ 소리가 절로 나서 땀 냄새보다는 차라리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에 대해 더 듣고 싶을 테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저녁을 먹으면서 하기로 하자.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악취 분자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나 역시 악취는 끔찍하게 싫지만, 그럼에도 악취 분자들은 매력적이다.
냄새는 휘발성 분자에서 비롯된다. 휘발성이란 쉽게 증발한다는 뜻이다. 뭔가 안 좋은 냄새를 맡았다면, 안 좋은 냄새를 풍기는 분자들이 콧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 옆에 섰던 남자의 땀 냄새도 마찬가지다. 땀의 일부가 그의 겨드랑이에서 내 코로 날아든 것이다.
--- p.196, '악취는 끔찍하지만, 악취 분자는 매력적이다' 중에서
나는 이제 음료 코너를 거쳐 과자 코너로 향한다. 달콤한 건 역시 맛있으니까. 나조차도 달콤한 맛을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콜라보다는 초콜릿을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먹고, 양심의 가책도 덜 느낀다. 설탕 음료는 아주 음흉한데, ‘공허한 칼로리’이기 때문이다. 다른 영양소 없이, 포만감도 없이 그냥 칼로리만 섭취하는 것이다.
[?]스무디가 특히 건강한 음료로 여겨지는 이유는 ‘100퍼센트 생과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은 생과일과 똑같지 않다. 부드럽게 마실 수 있도록 종종 껍질을 벗겨서 갈고, 여기에 과일즙을 첨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유질이 풍부한 보통 과일과 비교할 때 설탕 밀도가 더 높다. 가공 스무디로는 다량의 설탕을 문제없이 섭취하게 되지만, 과일로는 같은 양을 섭취할 수 없다. 그 전에 배가 부를 테니까.
특히 흥미로운 한 가지가 있다. 집에서 과일을 통째로 갈아 마셔도, 그냥 먹는 것보다 맛이 덜하다. 또 음식의 딱딱한 정도가 포만감에 영향을 주는데, 마시는 음식은 씹어 먹는 음식보다 포만감을 덜 준다. 그러므로 나는 양심의 가책 없이 딱딱한 초콜릿 3개를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간다.
--- p.228, '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