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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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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아내

[ EPUB ]
이상원 | 가하 | 2014년 06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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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6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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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4.9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8.6만자, 약 6만 단어, A4 약 117쪽?
ISBN13 979115682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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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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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상원


2000년 ‘에덴의 초상’으로 데뷔.
백로와 까마귀’, ‘런’, ‘비밀의 아내’, ‘전부 사랑이야’,
극악순정’, ‘사랑은 폭풍처럼’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선보였으며,
현재 ‘단미그린비(http://www.kromans.com)’에서
활동하고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서 오세요.”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가 그를 맞았다. 흘끗 시선을 준 도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백화점과 미장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답게 민채영은 오늘도 완벽한 화장에 최고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결혼 후 자기 관리에 안이해진 아내에게 정이 떨어진 남편이라면 흡족함을 느꼈을 모습이었다. 그러나 드레스룸으로 들어간 도준은 넥타이와 양복저고리를 내팽개치는 것으로 편치 않은 기분을 드러냈다. 그의 행동에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읽었을 텐데 민채영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기계적으로 넥타이와 저고리를 옷장에 집어넣더니 건조하게 물었다.
“식사 안 했죠? 아줌마가 준비하고 있으니 씻고 나오세요.”
꼿꼿이 등을 편 채 드레스룸을 나가는 여자를 경멸 어린 눈으로 응시하던 도준은 두서없이 욕설을 내뱉다 빠르게 뒤를 쫓았다.
팔을 잡아 돌려 세우자 가면을 쓴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일그러짐에 가까운 미소를 흘린 도준은 턱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저녁은 나중에 할 테니 저리 가서 누워.”
단언하는데 민채영에게 욕망을 느껴 내린 명령은 아니었다. 그저 냉랭한 얼굴이 약간이라도 동요하는 것을 보고 싶은 욕심에 충동적으로 내뱉은 대사였다. 그렇건만 빌어먹을 여자는 이번에도 그의 기대를 철저히 무너뜨렸다. 언제나처럼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의외라는 듯 입을 놀리는 것이다.
“아직 8시밖에 안 됐는데요?”
아마도 민채영이라는 여자를 몰랐다면 위협의 제스처로 손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도준은 능글맞게 응수하는 것으로 반응을 대신했다. 육체적 폭력보다 이런 식의 도발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 같은 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지금 하고 싶다는 거야.”
“그럼 샤워라도 하고 오는 게 어때요?”
도준은 벽에 몸을 기댔다. 겉으로는 냉정한 척했지만 언제까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사실 그도 민채영이 중증의 결벽증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쉰두 평 빌라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옷장의 옷들이 완벽하게 정리된 탓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런 것을 알아챌 만큼 집안일에 빠삭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럼에도 여자의 병세를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은 섹스 후 보이는 몇 가지 반응 때문이었다.
우선 섹스 후 샤워를 하고 나오면 시트가 새것으로 갈아 끼워져 있었다. 샤워를 하는 데 그는 십여 분이 고작인데 민채영은 몸 가죽의 세포를 하나하나 세면서 씻기라도 하는지 두 시간은 족히 있다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가 섹스 후에 뒤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자면 민채영은 아예 다른 방으로 가서 잤다.
그런데 샤워도 하지 않고 지금 ‘그걸’ 하겠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반응을 추측하는 대신 민채영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이죽거렸다.
“어차피 하고 나면 씻어야 할 텐데 번거롭게 뭘 또 씻어. 기분도 그런데 까다롭게 굴지 마.”
민채영의 낯빛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행동은 적이 만족스러웠다. 험악하게 등을 돌린 것이나 찢을 것처럼 드레스를 벗어 던진 것은 냉정한 표정과 달리 속은 분노로 까맣게 타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문제는 귀중한 만족감이 기대한 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은 정말 섬광처럼 짧았고, 그 순간이 지나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더러운 기분이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는 삶아 먹든 데쳐 먹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 멋대가리 없이 침대에 누워버린 여자를 분노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일주일에 세 번, 피부 관리실을 드나드는 VIP 회원답게 민채영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고, 몸매 역시 모델 뺨치게 늘씬했지만 이 여자를 안느니 냉장고의 냉동 참치를 안는 게 나을 정도였다. 일단 몸을 겹치면 그는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데 민채영은 해동을 모르는 냉동 참치처럼 그저 누워 있기만 하는 것이다.
민채영과의 섹스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짧은 만족감과 긴 후회’였다. 고로 그가 여자를 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끔, 감정이 이성을 누를 때가 있었다. 민채영이라도 얌전히 있으면 좋겠는데 어리석은 도발로 그를 자극했다.
“전화 올 거 있으니 빨리 끝내줘요.”
멈추라는 비명이 안에서 메아리쳤지만 그는 이미 민채영의 몸을 사납게 뒤집으며 악의에 차 이죽거리고 있었다.
“안됐지만 그 전화 오늘은 받기 힘들 거야.”
타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불나방의 운명처럼 그는 폭주하고 말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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