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만드는 일이 막노동과 다를 바 없다는 점도 결정에 크게 작용했다. 참 아이러니하지. 예전엔 그 육체노동이 싫어서 카레 만드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메뉴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던질 수 있는 패는 그것뿐이었다.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괜찮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면야, 하는 마음으로.
--- p.17, 「육체노동의 맛」 중에서
비록 ‘무국적 스파이스 카레’라는 단어 조합은 일본에서 만들었을지언정, 그러한 카레들이 일본만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내가 만들어왔고 또 만들어갈 무궁무진한 카레가 있는 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향신료 카레의 스펙트럼은 계속해서 넓어질 것이다. 굳이 어느 지역의 카레라고 근원과 전통을 주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음미될 향신료의 수많은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 p.41, 「무국적 케미스트리」 중에서
집과 가게의 거리가 꽤 되는 터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지하철과 버스 둘 다 이용한다. 출근할 때는 괜찮지만, 문제는 퇴근할 때다.
“어, 카레 냄새 난다.”
저들끼리 속삭이면서 지나간다. 민망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가게에서 쉬는 시간마다 양파를 볶고 향신료를 넣어 페이스트를 만들기 때문에, 퇴근길에는 어김없이 듣는 소리다.
--- p.49-50, 「어디서 카레 냄새 안 나요?」 중에서
그러나 카레는 일단 한 솥 끓이고 나면 어떻게 해도 남는 법. 웬만해선 식사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리 아빠도 마찬가지로 분량 조절을 하지 못해 지나치게 많은 양의 카레를 만들었다. 처음이야 맛있었지만, 며칠 내내 카레를 먹는 것에 물린 가족들. 이때 아리 엄마가 나선다. 정통 카레에 장국을 넣어 카레 우동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리 아빠는 어떻게 만든 정통 카레인데 장국을 넣을 수 있냐며 화를 내지만, 그 또한 몇 날 며칠 같은 카레를 먹는 것에 질렸던 터라 결국 카레 우동을 맛있게 먹는다.
--- p.80-81, 「엄마 카레 vs 아빠 카레」 중에서
시간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세훈 앞에 선 나는 비비에 대한 수많은 질문만을 뚝심 있게 던졌다. 그동안 만든 비비 카레 사진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연신 귀엽다고 한 그가 물었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나중에 먹어요?” 네…. 너무 맛있게 먹었는데요. 아깝다고 보관할 수도 없잖아요….
--- p.105-106, 「당신을 위한 서비스는 언제나」 중에서
나는 카레를 만들 때 홀 스파이스를 풍부하게 쓰는 편이다. 필요한 홀 스파이스들을 계량 후 종류별로 정갈하게 담아놓으면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들을 보는 느낌이다. 카레를 먹을 때 씹히지 않도록 기름에 홀 스파이스를 넣어두어 미리 향신료 기름을 만들어 쓰거나, 홀 스파이스를 볶은 후 분쇄기로 갈아 쓰는 방법도 있지만, 향신료가 지닌 향을 확실히 발산하기 위해서는 통째로 기름에 넣어 달구는 것을 추천한다. 뜨거운 기름과 홀 스파이스가 만났을 때 나는 독특한 향도 좋다. 카르다몸이 동그랗게 부풀고 겨자씨나 커민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튀기 시작하면 향신료 기름이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 p.129, 「파스맛 카르다몸」 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차이티를 궁금해하는 손님이 나타났다. 두둥. 배운 것을 써먹을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퍽 다정하게 말했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목이 칼칼할 때 드시면 좋아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손님은 결국 차이티를 주문했다. 대체 감기 떨어지는 맛이 무슨 맛이지, 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픽업대에서 음료를 받자마자 한 모금 마신 손님이 내뱉은 말.
“이거… 원래 치과 맛이 나요?”
--- p.140-141, 「이거 원래 치과 맛이 나요?」 중에서
한의사 선생님은 내게 카레 만드는 직업이 천직이라고 했다. 카레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주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매일같이 카레를 먹으라고 하셨을 정도. 특히 버터 치킨 카레 같은 것은 완벽하다나. 사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따로 식사를 차릴 새가 없어 거의 카레로 끼니를 때우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 p.179-180, 「후끈후끈 보양식이 따로 없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