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점주로서 나의 직업은 ‘폐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오늘도 편의점에는 유통기한 지나 버려야 하는 상품들이 쏟아진다. 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 햄버거, 우유, 컵라면…. 어릴 적 할머니는 “먹는 거 버리면 벌 받는다.” 말씀하셨는데, 나는 가게에 나가자마자 오늘 버릴 상품을 솎아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가운데 먹을 만한 녀석들을 골라 집에 가져가는 일로 하루를 마친다. 어떤 날은 하루 세끼를 폐기 음식으로 때우기도 한다. 매일매일 벌 받는 직업인가 보다.
현실이 이렇긴 하지만, 막상 말하고 보니 좀 슬프군요.
--- p.11 「나는 삼각김밥이로소이다」 중에서
삼각김밥에 방부제가 들었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적잖은데, 아니올시다. 삼각김밥에 방부제가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하루뿐일 리 없지 않나요. 다른 생명체처럼 저도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답니다. 그렇지만 방부제의 힘까지 빌리고 싶진 않습니다. 삼각감밥은 묵은쌀, 혹은 수입 쌀을 사용한다는 오해도 있는데, 그것 역시 아니올시다. 우리나라에 좋은 햅쌀이 넘치도록 풍족한데 굳이 묵은쌀이나 외국에서 가져온 쌀을 쓸 이유는 없잖아요. 게다가 여러 편의점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답니다. 각자 차별화된 삼각김밥을 보여줘야 하는데, 김밥의 자랑거리가 뭐가 있겠어요. “좋은 쌀을 사용했어요!” 이것이 단연 경쟁력입니다.
--- p.38~39 「가장 좋은 쌀로 만들었습니다」 중에서
한때 누군가에게 열정적으로 사랑받기도 했지만, 다만 폭넓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열대에서 사라진 삼각김밥이 많다. 제조사가 속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해 사라지거나 시즌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사라지는 녀석들도 있다. 대게딱지장 삼각김밥이 홀연 사라진 배경에도 그런 이유가 숨어 있었단 말이지. 속 재료가 다양한 만큼 사라지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 우리가 사랑했던 모양만큼 이별의 이유도 다 다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 p.45 「대게딱지장, 되게 좋았는데」 중에서
서민이자 단독자. 이것이 전주비빔 삼각김밥의 양대 특징이다. 한국의 비빔밥도 그런 유래와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비빔밥이 서민 음식의 상징인 것처럼, 비빔 삼각김밥은 가장 서민적인 삼각김밥의 대표주자다. 아니지, 그냥 비빔이 아니라 꼭 ‘전주비빔’이라고 불러야 옳다! 완벽하다. 비빔이면서 특별하다. 전주비빔은 완벽하고 특별한 심각김밥이다. 기존 법칙을 넘어 새로운 법칙을 만든, 독보적인 비빔이다. 전주비빔은 이토록 장점과 특기가 많다. 작은 몸집 안에 익숙함과 특별함, 단독과 조화, 특수성과 일반성을 한데 버무린 균질하면서 다양한 김밥이다. 과연 완벽해!
--- p.78 「꼭 ‘전주’비빔이어야 하는 이유」 중에서
‘삼각김밥+컵라면+반숙란+볶음김치+콜라’ 이런 독수리 오형제 조합으로 만찬을 즐기고 나면 봉달호 씨도 트림을 몇 번씩 하면서 튀어나온 배를 탕탕 두드리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삼각김밥은 역시 가성비의 끝판왕. 충분한 한 끼 식사가 되고, 최고의 다이어트 간편식이 된다. 그러니 삼각김밥 함부로 무시하지 마시라. 당신은 삼각김밥만큼 가성비 높게 살아본 적 있는가. 역사상 이렇게 삼각삼각한 식품을 본 적 있는가.
--- p.113 「너 오늘 삼각삼각해」 중에서
삼각김밥으로서 인간 세상을 감상하고 나름대로 내린 소박한 결론은 ‘사람 살아가는 풍경은 어디든 비슷하다’는 것. 대기업 사장님, 법복 입은 판사님, 샐러리맨 용준 씨, 재수생 희선 씨, 여섯 살 희준이…. 직업과 처지는 달라도 누구나 ‘밥심’으로 산다. 120g짜리, 210g짜리, 혹은 320g 고봉밥을 먹더라도 어쨌든 다 ‘밥’의 힘으로 사는 것이지 황금이나 이슬을 먹고 살지는 않는다. 부자라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다를 게 있겠나. 사람은 법 앞에선 평등하지 않을지 몰라도 밥 앞에선 누구나 평등해진다. 나는 그렇게 밥의 평등에 기여하는 작은 삼각형이다.
--- p.169~170 「가끔 세모가 당신을 속일지라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