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야? 날 안다면, 내가 아주 예쁜 친구와 늘 함께 다닌다는 것도 물론 알 테지? 그런데도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내가 눈에 밟힌다니, 솔직히 믿기지 않아.] (중략)
책을 차라락 넘기자 어느 부분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거기에 편지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너만의 좋은 점이 있어. 적어도 난 그걸 알아. 무슨 일 있었어?]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가슴이 꽉 붙잡힌 것처럼 아팠다. 고작 세 줄의 편지에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눈에 익숙한 편지지를 세게 움켜쥐자, 종이가 약간 구겨졌다. 짧은 문장 속에 사토의 따뜻함이 듬뿍 묻어나는 것 같았다.
사토는 나도 모르는 내 좋은 점을 알아봐 준다. 왜 지금까지 답장을 쓰지 않았는지 묻지도 않고 ‘무슨 일 있었어?’ 하고 걱정해 준다. 보드랍게 감싸주는 그 다정함에 닫혀 있던 내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했다.
왠지 사토라면 내가 바라는 말을 해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사토의 말이 날 위로해 주었다. 가슴이 서서히 따스해지고, 이유도 없이 울고 싶어진다. 이런 감정은 이상하다. 어제처럼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궁금하다. 사토는 대체 누구일까. 나의 좋은 점을 알아주는 이 사람은―.
--- pp.60~62
어제 편지를 받고 몇 반인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토가 더욱 궁금해져서,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에 “내가 사토를 찾아봐도 괜찮을까?”라고 물어보았다. 분명 안 된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편지지를 들여다보았다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찾아봐도 상관없지만, 못 찾을 거야.]
--- p.70
[학교 도서실 책을 이용하면 정말 다른 사람이 읽을 수도 있겠네. 그런데 미안해. 나, 스마트폰이 없거든.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게 걱정된다면, 그만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 p.84
“사토, 나 이제 한계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기어드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겨우 내디딘 발이 어느덧 나를 도서실로 이끌었다. 이제 사토가 도서실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관없다 싶었다. (중략) 이제 『마음』을 펼쳐도 편지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책을 꺼냈다. 하지만 역시 편지는 없었고, 『마음』은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문고본으로 되돌아갔다.
“……윽.”
괴로웠다. 나는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애써 의식 밖으로 몰아내고, 창가 자리에 앉아 메모장과 펜을 꺼냈다.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건 잘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쓰라린 속내를 어딘가에 토해내지 않으면 마음이 짓뭉개져 죽을 것 같았고, 설령 답장이 오지 않더라도 사토가 언제 어디선가 또 내 편지를 읽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단짝한테 심한 말을 했어. 이제 원래 사이로 못 돌아갈지도 몰라. 이런 내가 싫어서 사라지고 싶을 지경이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사토, 도와줘.]
--- p.197
아침부터 방과 후인 지금까지 『마음』을 꺼내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편지가 끼워져 있을 리 없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스기우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야.”
서가 앞에 있던 스기우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 표정을 보자 한 줄기 빛이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스기우라의 손에는 편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편지, 왔는데?”
“……그럴 리가. 진짜야……?”
아무도, 도서실에 온 사람은 아무도 『마음』을 건드리지 않았는데. 편지가 왔다니 말도 안 된다. 이상하다.
--- p.227
설령 이 선택으로 울거나 괴로워할 일이 생겨도 상관없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지언정, 절대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사토를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 p.263
손에서 체온이 전해져서 사토가 지금 분명히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고백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사토의 대답. 그것이 사토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임을 깨달았다. 무책임하게 같은 마음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도, 헤어질 날을 생각해 밀어내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그다웠다.
내 마음을 받아줘서 고마워.
나는 이제 괜찮아. 사토에게 받은 편지도, 말도, 웃음도, 전부 잊지 않을 테니까.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듯, 이 순간을 몇 번이고 가슴속에 새겼다.
---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