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와 함께 아코디언 연주를 배웠다면, 또는 단지, 내 노래가 아버지에게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아버지 곁에서 노래를 부를 수만 있었어도, 어떤 가족 이야기를 꾸며내서 신문사에 투고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나는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그라스마이스 씨와 그의 아들을 종종 생각한다. 나는 결코 내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 없을 테니까.
---「트럭 운전사 이야기」중에서
오늘날, 미온적인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정열적인 사람들의 열정은 히스테리와 유사하다.
---「천사와의 싸움」중에서
나는 그 개를 위해 울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동정심일까 아니면 절망의 이면일까. 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교훈적 감정이다. 언젠가 누군가 나를 버렸다. 사랑, 사랑은 항상 당신들을 버린다. 아무리 짧은 순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아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환희의 순간에도 당신들을 버린다. 그때 이미, 태양은 우물 속에 가라앉고, 검은 물 아래 버려진 개가 있는 것이다.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중에서
“한번 궤도를 벗어나면 영원히 그 모양이라고요. 누군가 당신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을 거라고 믿어봤자 소용없어요. 얼마 안 가서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사람들, 즉 루프 부인 같은 사람에게 걸려들고 말아요. 그리고 당신들도, 당신들도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나 역시 아무도 필요없어요, 아무도!”
---「자전거를 타고」중에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버려진 여자. 지불해야 할 계산서, 갈아야 할 퓨즈, 교육해야 할 아이. 결단을 내려야 할 중대사항 따위와 함께 나를 혼자 남겨두고 간 그에게 분노를 느낀다. 니코의 시선이 내게 머물지 않았던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의 추억에 특히 화가 난다. 나는 우리의 신념이 사라져버렸던, 우리에게 힘이 부족했던 이 기간을, 사후에라도 결정적으로 메워 넣을 힘을 어디선가 찾아야 했다.
---「별수 없음」중에서
이따금, 나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나의 죽음을 상상한다. 그녀 앞에서 식사를 하거나 그녀와 함께 아우디를 타고 있을 때, 나는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나의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엄마조차도. 어쩌면 그녀는 만족할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나의 죽음이 사소한 문제일 테니까.
---「영원한 휴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