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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운전사 이야기
천사와의 싸움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 자전거를 타고 별수 없음 영원한 휴식 옮긴이의 말 |
저카롤린 라마르슈
관심작가 알림신청역용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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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와 함께 아코디언 연주를 배웠다면, 또는 단지, 내 노래가 아버지에게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아버지 곁에서 노래를 부를 수만 있었어도, 어떤 가족 이야기를 꾸며내서 신문사에 투고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나는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그라스마이스 씨와 그의 아들을 종종 생각한다. 나는 결코 내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 없을 테니까.
---「트럭 운전사 이야기」중에서 오늘날, 미온적인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정열적인 사람들의 열정은 히스테리와 유사하다. ---「천사와의 싸움」중에서 나는 그 개를 위해 울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동정심일까 아니면 절망의 이면일까. 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교훈적 감정이다. 언젠가 누군가 나를 버렸다. 사랑, 사랑은 항상 당신들을 버린다. 아무리 짧은 순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아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환희의 순간에도 당신들을 버린다. 그때 이미, 태양은 우물 속에 가라앉고, 검은 물 아래 버려진 개가 있는 것이다.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중에서 “한번 궤도를 벗어나면 영원히 그 모양이라고요. 누군가 당신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을 거라고 믿어봤자 소용없어요. 얼마 안 가서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사람들, 즉 루프 부인 같은 사람에게 걸려들고 말아요. 그리고 당신들도, 당신들도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나 역시 아무도 필요없어요, 아무도!” ---「자전거를 타고」중에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버려진 여자. 지불해야 할 계산서, 갈아야 할 퓨즈, 교육해야 할 아이. 결단을 내려야 할 중대사항 따위와 함께 나를 혼자 남겨두고 간 그에게 분노를 느낀다. 니코의 시선이 내게 머물지 않았던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의 추억에 특히 화가 난다. 나는 우리의 신념이 사라져버렸던, 우리에게 힘이 부족했던 이 기간을, 사후에라도 결정적으로 메워 넣을 힘을 어디선가 찾아야 했다. ---「별수 없음」중에서 이따금, 나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나의 죽음을 상상한다. 그녀 앞에서 식사를 하거나 그녀와 함께 아우디를 타고 있을 때, 나는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나의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엄마조차도. 어쩌면 그녀는 만족할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나의 죽음이 사소한 문제일 테니까. ---「영원한 휴식」중에서 |
김연수 소설가 추천!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네 번째 책!
“개 한 마리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순간 삶의 실상이 문득 드러났다.” _김연수(소설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죽음과 삶 사이의 독백 개 한 마리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순간 삶의 실상이 문득 드러났다. 그것을 본 여섯 사람의 독백은 삶의 진실이란 바로 고통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고통에는 의미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독백하리라. 우리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의미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 _김연수(소설가)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네 번째 책. 카롤린 라마르슈의 데뷔작 『개의 날』은 책이 출간된 1996년 벨기에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빅토르로셀상을 수상하며 문단과 평단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김연수 소설가는 “카롤린 라마르슈가 보여주는 이 유장한 언어의 리듬, 이 구체적인 내면세계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며 이 소설을 추천했다. 지어낸 가족 이야기로 신문 잡지에 사연을 보내는 트럭 운전사(「트럭 운전사 이야기」),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 여신도를 찾아 헤매는 노신부(「천사와의 싸움」), 상처받기 전에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려는 미녀(「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 집에서 쫓겨나 직장과 친구도 잃고 매일 밤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성애자 남성(「자전거를 타고」),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스스로 버려졌다고 여기는 과부(「별수 없음」)와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 아버지를 잃고 폭식증에 걸린 딸(「영원한 휴식」)……. 위험한 고속도로 위 각기 다른 사연의 여섯 인물은 “그 동물의 불가피한 죽음을 생각”하면서 불쑥 튀어나오는 연민의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울거나, 땅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추스르며 달리는 차들을 세우고, 구조 전화를 걸고, 무심코 서로를 붙들거나 끝내 쓰러져 울기도 한다. 소란 속에도 “미친 듯이 계속 달리기만” 하던 개는 이미 모습도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녀석의 질주를 응원한다. 그것만이 “고통스러운 고독과 엄청난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인 듯이. 인물들은 “미친 개, 길 잃은 개, 질주하는 개”에게서 “죽음의 기회를 보”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독백은 오로지 ‘삶’만을 되뇌고 있다. 그 개는 “아직 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미친 듯이 질주하는 모습은 매일” 그들의 머릿속에 살아 있다. 죽음의 예고가 지나간 자리에는 삶의 여지가 선명하게 남는다 우리는 “사냥개 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질주하지만 사냥개 떼는 없다. 미친 듯이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는 개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 ‘옮긴이의 말’에서 “누군가 나를 버렸다”는 가깝고도 아득한 고통의 기억. 인물들은 달리는 개를 보며 쫓기듯이 삶의 ‘안정’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씁쓸한 초상을 발견하게 된다. “우발적 사고”와 같은 상실과 헤어짐에 늘 예비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쫓기는 사냥감”, “버려진 한 마리의 개” 같다. 누구도 쫓지 않지만 미친 듯이 달아나는 도로 위의 질주.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모종의 관계에서 남겨진 혹은 버려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불안한 현재를 벗어나는 절박한 임의의 탈주.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가족을 상상하고, 떠나간 사람이 나타날 만한 곳을 샅샅이 뒤지고,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 찬물에 수영하며 비참한 추위에 시달리고, 나를 배제시키는 사회의 요구로부터 벗어나 “지쳐 죽을 때까지 달리”는 것. 이런 ‘질주’는 단순한 도주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무언가를 철저하게 건설하는 행위다.” 목걸이를 뒤집으면 우리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만 같은 동병상련의 개. “그 개를 위해 차를 멈춘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어떤 활기”. 그것은 “버려진 충격과 공포”로 멈춰버렸던 “일상적 무기력상태를 벗어나”게 한다. 죽음과도 같은 철저한 고립 속에 인물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삶에 대한 여지를 이 차가운 도로 위에 내려놓는다. 극에 달한 고통을 기점으로 뒤집히는 삶과 죽음, 어쩌면 “인생은 그런 부활의 연속일 뿐”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