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치는 좋은 삶이란 전통적인 노동을 넘어서는 ‘느림’을 필요로 한다고 확신했다. 이는 좌파의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 집착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의미한다. ... 대체로 ‘정의로운 전환’은 유해하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산업과 공정을 친환경적인 것으로 전환하도록 하면서,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희생이나 지역사회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 훈련과 재정적 지원을 보장한다는 원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일련의 정책 프로그램을 말한다. ... 이제 노동 관련 환경 이슈는 녹색 일자리 창출과 산업 환경의 변화 과정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 정의로운 전환의 짧은 역사」중에서
나중에 ‘루카스 플랜’이라 불리는 협동 계획(Corporate Planning)은 회사가 경영합리화 계획을 내기 1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활동가들의 핵심 질문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상품 중에서 우리의 설비와 능력으로 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 ‘사회적으로 유용한’이라는 말에 대해 노동조합은 이렇게 정의했다.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유용해야 하며 일부 상류층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 내에 존재하는 기술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하며 그것을 전 종업원과 지역사회에 이득이 되도록 개발해야 한다. 종업원 혹은 일반 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고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를 최소화해야 하고 환경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루카스 플랜은 무엇이었나」중에서
꿈의 자동차 EV1이 갑자기 GM에 의해 전량 리콜되고, 일본 업체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용자들은 연행을 불사하며 리콜에 저항했지만, 이 차량은 사막 한가운데서 조용히 폐차되어 사라졌다. 페인의 주장은 전기 자동차가 편리하고 친환경적임에도 그것의 폭발적 영향력을 두려워한 세력들에 의해 축출되었다는 것이다. ... 이른바 ‘디트로이트 협정’은 생산과 생산 결정에 대한 기본적 통제를 경영진에게 양보하고 이를 대가로 생산성 증가분에 대해 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자동차산업에 특징적인 교섭 패턴이 자리 잡았고, 생산 차종의 결정은 물론 생산 속도 증대나 인원 배치 같은 작업장 내 노동과정에 관한 사항도 노동조합의 권한 바깥이 되었다. 고임금과 고용 안정을 생산 통제와 맞바꾼 얼마 동안의 평화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몰아닥친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기 속에서 이러한 산업 평화는 유지될 수 없었다.
---「그린카와 노동조합」중에서」중에서
이들의 주장은 분명하다. 주민의 생명권과 생존권, 재산권 등을 송두리째 빼앗고 주민을 전력난의 주범으로 내모는 한국전력공사의 송전탑 공사에 협력할 수 없으며, 밀양 주민들과 연대해 공사가 강행되지 않도록 함께 투쟁할 것이라는 말이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하던 송전탑에 밀양 주민들이 방문하고, 거꾸로 평택과 울산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밀양의 송전탑을 방문하여 교류를 확보한 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들이 서로 만나고 연대를 축적할 때 무엇이 진정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고 생산인지, 자본의 흐름을 극복할 연대의 흐름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시드니, 용산, 그리고 밀양」중에서
핵 발전이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위험성, 사회적 비용, 폐기물 처리 등의 중대한 문제를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논의는 두 가지 다른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우선 에너지 수요의 증대가 필연적이지 않으며, 재생에너지의 잠재력은 핵에너지를 대체할 만큼 크고 점진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 탈핵은 과정과 결과도 정의롭고 공평해야 한다. 핵 발전 중단이 정책적으로 결정된다 하더라도 당장 핵 발전소 운영과 관리가 불필요해지거나 관련 기술과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발전과 제조업 등 에너지 집약형 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과정과 결과의 결정, 그리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정보의 공개와 참여는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고 발생하는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같이 짊어져야만 한다.
---「핵 발전의 두 가지 대안, 에너지 전환과 새로운 적록연대」중에서
진보운동 내에서 환경 이슈의 대응 수준이나 운동 노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적도 없고 목숨을 걸고 들러붙어 본 적도 없다. 환경운동 진영 역시 진보정당 운동과 노동운동의 낮은 생태적 감수성이나 미온적인 입장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가한 경우가 드물다. ... 90년대 이래 환경 이슈와 생태적 논의들이 사회의 ‘주류’가 된 듯이 보이면서도 사회 전체에서 그리고 좌파운동 진영 내에서도 실은 액세서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력 장악과 소유 구조 변경에 환경적 고려를 덧붙이기만 하면 우리의 변혁 프로그램은 충족되는 것일까? 앨 고어가 온실가스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를 요청했듯, 우리는 좌파운동과 자연 그리고 자본 사이의 외면이나 결탁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생태사회주의와 노동해방」중에서
노동조합이 선하고 정의로운 이들로만 똘똘 뭉친 조직도 아니고 환경운동이나 사회운동도 세상의 모든 고통과 모순을 다 헤아려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약한 이들 편에 서 온, 그리고 가장 큰 적인 자본과 권력에 대항해 싸워 온 이들이 잠재적으로 ‘한편’일 수 있다고 믿고 또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 녹색의 노동계급과 적색의 소비자 집단으로서 우리는 작업장과 지역사회의 경계를 넘어 자연스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중심으로 수많은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을 구상할 수 있다.
---「적색과 녹색의 다리놓기를 위한 말 걸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