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인들은 외부 자극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내향인들은 그걸 자잘하게 쪼개서 분석하고, 곱씹으며, 숨은 의미까지 추측해서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머릿속에서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외부 자극뿐이랴. 외부 자극들로 인해 이미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끌고 들어온 외부 자극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과 걱정들, 즉 내부 자극들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이 쌓일 뿐이다. 결국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쉰 것 같지 않고, 몸은 축축 처지고 기분도 가라앉는다. 외부 자극뿐 아니라 내부 자극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을 겪기 쉽다.
--- p.21
내향적인 성격은 어딘가 문제가 있고, 있어야 할 것이 결핍된 뭔가가 부족하고 이상한 성격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과연 그러할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반대편에 있는 외향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을 쉽게 떠올린다. 그들을 보고 그들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이고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성격 특성이 외향성과 내향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향성에 대한 정의는 지금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많고 학자들마다 정의하는 내용도 다르다. 그러니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모습을 보고 내향적이라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도 많고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 p.61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낸 자신을 위해 일과를 마치기 전에 긴장을 풀고 평정심을 찾을 수 있도록 오롯이 나를 돌아보고 내 자신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추천한다. 우선 짧은 시간을 들여 시작해 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들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무엇이든 나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연민의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저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 급한 불 끄듯이 해보자는 조급한 심정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 쫓기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보자. 그 따뜻한 시선만으로도 일단 내 몸과 마음이 이완될 수가 있다.
--- p.68
내향성과 외향성을 구별할 수 있는 간단한 기준은 사회활동이 끝난 뒤에 얼마나 피로감을 느끼느냐, 사회활동으로 소모된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충전하느냐이다. 실제 사회활동을 많이 하느냐 안 하느냐,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가지고는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내향인이라 하더라도 상황이나 역할에 따라 외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경우가 많고, 외향인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집콕해야 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내향인에 대한 이해가 이러하듯, 외향인 역시 하나의 얼굴이 아닌 다양한 모습을 지녔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내향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큰 데 비해 외향인에 대해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외향인 중에도 밝고 명랑하고 사회성이 높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 때와 상황에 맞지 않게 또는 타인의 입장이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에 심취해 있거나 아무 필터링 없이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 pp.86-87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일지라도 적절한 환경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얼마든지 외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물론 타고난 성향 자체가 180도 바뀐다는 말은 아니다. 분석심리학 이론을 창시한 융에 따르면 누구나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지는 않으며 두 가지 태도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겉보기에는 외향적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내향적일 수 있고, 반대로 의식에서는 내향적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외향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섣불리 내향적이다, 외향적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 p.92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세상에 잘 자리매김하여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살아가고자 애쓴다. 그래서 이러한 세상을 살아내려면, 마치 이러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할 것만 같다. 그러한 원칙들을 생산해내고 선전하는 사람들이 외향인들인 경우가 많다 보니, ‘성공하려면 외향인들처럼’이라는 공식을 따라하기 바쁜 세상이 되었다. 그러려면 나서야 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나를 드러내야 하고, 동시에 많은 일을 빠르게 척척 해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공식이 있다니, 말이 되는가. 대부분의 내성적인 사람들도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주장하지 않을 뿐,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세상의 절반이 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 말자.
--- pp.108-109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임을 상대에게 알려주는 것이 나를 지킬 수도 있고, 관계를 지속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외부에서 그 기준을 찾으려 하지 말고, 우선 내 느낌과 감정,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 허용치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거절을 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거절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관계가 서먹해지는 건 아닐까 여러 걱정이 앞선다면, 당연히 거절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거절을 잘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찾는다면 곤란하다. 세상에 완벽한 방법은 없다. 아무리 잘 거절했다 해도, 상대의 마음이라는 변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거절을 한다는 것은 나를 지키고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긍정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조금만 용기를 내보자. 거절하지 못해 겪는 고통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적어도 상대가 무례하게 느끼지 않도록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자.
--- pp.136-137
인영 씨는 처음 상담실에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확실히 말이 많아졌고, 더욱 반가운 것은 말의 반응 속도도 빨라졌다. 어떻게 말을 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둘러가면서 이야기하던 습관이 많이 줄었다는 증거다. 스스로 내성적이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이며 어렵게 한마디씩 이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그녀가 최근 들어 많이 달라졌다.
남들이 칭찬을 하면 “이 정도는 누구나 해”라고 별거 아닌 것처럼 자신의 재능을 깎아내리기 일쑤였고, “쟤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저렇게 과장해서 표현하는 걸까? 분명히 실망할 거야”라면서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너는 이런 쪽에 재능이 있으니까 이제 그만 배우고, 네 재능을 드러내서 써보는 게 어때?”라고 자신을 아끼는 친구가 제안을 해도 덜컥 겁부터 내고 달아나기 바빴던 그녀였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지, 잘하는 게 아니야’라면서 절대 나서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이젠 “엄청 잘할 만큼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해보려고요”라면서 작은 그림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겨우 그 정도면서 전시를 해?’라고 혹시 누군가 뒤에서 쑥덕거릴까 봐 두려워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제 한 명이라도 좋아하면 되지 않을까 싶단다. 내 재능이고 내 장점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 pp.192-193
웬만하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피하고 있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살펴보자. 나의 두려움을 인정해주고 스스로를 도와 조금만 앞으로 나올 것을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자. 안 해봐서 모르는 것일 뿐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 별일 없이 순조롭게 처리될 수도 있고, 오히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고 한 뼘 더 진실해질 수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러니 두려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두려움 너머에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바라보자. 어느새 좁은 울타리 밖으로 나와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나를 느끼게 될 것이다.
---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