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 관계가 아님을 깊이 새겨야 한다. 학생은 독립된 개인으로 천부의 인권을 누려야 하는 존재이며, 학생 인권은 국제인권조약과 헌법의 가치를 교육 영역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법률적 개념이다. 또한 학습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고,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한 수단적 권한이 교권이다. ‘헌법상 교육받을 권리를 포함한 학생 인권 실현’을 위해 교권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 p.30
이제 누구에게나 교실과 학교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 이것이 교실 안 학생들을 버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교실을 넘나들며 전문성을 갖춰서 더 능력 있는 모습으로 교실 안 제자들을 만나라는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다양한 에듀테크 능력을 보유하고, 전국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멀티잡이 필수인 시대가 도래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교사 자신은 전통적 직업관에 사로잡혀 교실 밖 활동을 주저해서야 되겠는가.
--- p.48~49
‘일어서서 영화 보기’. 대한민국의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맨 앞자리 관객이 일어서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뒷좌석 관객도 줄줄이 일어서서 볼 수밖에 없다. 초등 의대반은 아예 의자 위에 서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교육이 늘어서 학생들 역량이나 국민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신 지나친 선행학습으로 인한 아동?청소년의 내현적, 외재적 문제에 관한 연구는 많다. 아이들은 선행지옥과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낙오자, 들러리로 낙인찍히며 마음의 상처를 입어간다. 자신의 부족함과 무능함을 인정하는 아이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하는 미숙한 존재라는 수치심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보살펴야 할 때다.
--- p.73~74
입시·성적 위주의 사회 분위기도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좋은 성적이 곧 인생의 성적표로 여겨진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시험이 중요하므로 장기적인 안목을 키울 틈이 없다. 학생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엄청난 양을 학습하고, 학습량을 따라가기 위해 게임에서 미션을 수행하듯 숙제를 하나하나 해치운다. 좋은 결과를 빠르게 내는 게 관건이다. 하지만 문해력은 그렇게 키울 수 없다. 문해력을 키우려면 긴 글을 읽고 오랜 시간 사고하고 이를 정리해야 한다. 이것은 당장 성적 향상시키기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천천히 조금씩 내공을 다져나가는 방식이다.
--- p.88
느린 학습자라는 단어 안에는 느리지만 자신의 속도대로 학습이 가능한 아이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빠르고 정확한 것만이 중요하고 경쟁이 최우선 가치인 사회에서는 느린 학습자의 드라마틱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둘러싼 시선과 환경이 변화되고 느린 학습자를 이해하는 인생 선생님을 만나면 이내 행복한 학교생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교사를 보며 모든 학생은 다름을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법을 배워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교실 속 포레스트 검프, 느린 학습자에게 인생 선생님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 p.108~109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전문가뿐 아니라 AI, 공간, 생태환경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협의를 진행하며 미래 사회에서의 필수적인 인간상과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핵심 역량들을 수정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에듀테크 활용이 학교 수업 속으로 깊숙이 스며듦에 따라 변경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인간상으로 설립하였고 이를 위해 자기관리 역량(자기주도성), 지식정보 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협력적 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을 핵심 역량 6가지로 제시하였다.
--- p.114~115
배움중심수업의 정의 속에는 미래 세대들에게 필요한 역량들을 키워나가기 위해서 지식, 학생, 교사, 수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배움중심수업에서의 지식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학생은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가진 주체적 인격체다. 교사는 배움과 성장의 촉진자이자 수업이 교육이 되게 하는 주체다. 수업은 삶과 연계되어 공감과 소통을 이루고 협력적 배움을 이루어야 한다.
--- p.128~129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뛰어드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이 해줄 일이 있다면, 바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들은 입사를 하는 순간부터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꿋꿋하게 만 3년 경력을 쌓아 후학습을 하려는데, 회사에서는 퇴근을 빨리 하고 대학 강의를 듣겠다는 사원에게 눈치를 준다. 아무리 질 좋은 교육을 시행하거나 다양한 지원금을 준다 해도 현실의 벽에 부딪힌 학생들은 외로이 혼자만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교육계의 숙제다.
--- p.159
현행 교육과정 문서를 살펴보면 다문화학생은 포용되어야 하고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존재로 묘사된다. 교사용 지도서는 다문화가족이 “문화적 배경 및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이질감, 언어 사용의 문제로 인한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갖고 있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다문화학생을 “외국인 부모의 언어적 능력 부족으로 인해 언어 습득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양쪽 부모의 가치관이나 생활 습관 차이로 인해 혼란을 겪기도” 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이처럼 다문화학생을 포용하고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다문화’라는 범주가 해당 학생을 일탈적인 존재로 타자화하고, 차이를 위계로 사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 p.172~173
많은 전문가들은 AI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 생각, 도덕성에 따라 미래 사회에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급격한 변화 앞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기준과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즉 인성교육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급변하는 시대에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교육이다.
--- p.192
디지털 교육의 전문성 신장은 바로 이러한 지점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감수성 말이다. 교사의 민감한 감수성을 건드려 삐뚤어지게 하면 원하는 교육의 방향이 실현되지 않는다. 반대로 감수성을 충분히 만족시켜주면 교실에서는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고, 유의미한 교육활동들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힘든 디지털 활용 수업에 쉽게 다가가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잘 알고 있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거나 기대감을 갖는다.
--- p.202~203
우리는 과연 챗GPT 없이 가르칠 수 있을까? 또는 언젠가 챗GPT가 교사를 대체하는 날이 오게 될까? 미래 사회에서는 교사의 계획 안에서 AI가 가르치고, 교사는 학생들이 더 깊은 수준의 배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조력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교실 수업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일대일 개별화 교육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챗GPT 같은 대화형 AI 서비스가 AI 튜터로 등장하며 변화가 예고되었다. 학생들은 챗GPT와 같은 대화형 AI를 통해 소크라테스식 대화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챗GPT에 답을 바로 요청하기보다 AI와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예를 들어 시험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하여 챗GPT와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통해 토론해볼 수 있다.
--- p.226
AI 시대의 영어 교육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개별 피드백이다. 학습자의 쓰기와 말하기를 보고 자주 반복하는 실수나 어려워하는 부분을 분석하여 유사한 연습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가령 음식 주문하는 법을 배웠다면 교과서에 나온 배경 외에도 다양한 식당을 배경으로 말하기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맥락을 제공한다. 또한 음성인식을 하는 AI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주어진 대답뿐 아니라 학습자가 원하는 자유발화까지 할 수 있어 원어민, 한국인 교사의 조력 없이도 실제 같은 말하기 연습을 할 수 있다. 발음 체크부터 개별 피드백까지 가능하니 사실상 개별 원어민 보조교사와 한국인 교사가 지도하는 것과 같은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다. 학습자들은 수준별 수업을 AI 기반 콘텐츠를 바탕으로 받을 수 있고 각자의 수준에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며, 교사는 아이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항해사 역할을 하게 된다.
--- p.246-247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차이는 AI를 활용하기 위해 시의적절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힘, 질문의 뿌리가 되는 지식의 습득, 효과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여부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AI 시대 최고의 학습 방법, 메타인지 학습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 p.264
아이들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를 자동화하고 대체할 수 있는 생성형 AI가 있는 시대에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직업체험을 진로교육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래에 아이들이 실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안내와 그 직업을 얻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아이들이 체험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창의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인간적인 감성과 상호작용 등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진로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 p.288
대한민국의 학령인구는 정말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이에 따르면 공립 초중등학교의 학생 수는 2023년 대비 2027년까지 13%인 58만여 명이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2038년에는 초등학생 수는 88만여 명(34%)이, 중학생 수는 86만여 명(46%)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쉽사리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변화다.
--- p.297
8시에서 9시 사이에 등원하는 유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모든 유아의 등원 시각을 8시로 맞출 필요는 없다. 교육과정 시간은 학부모의 출근이 아니라 유아의 발달과 복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돌봄이 필요한 영역을 고려해야 한다. 돌봄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꼭 필요한 경우 이루어져야 한다, 돌봄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제한 없이 확대한다면 남용하는 경우도 분명히 생긴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받게 될 것이다.
--- p.305
‘미래를 상상하고, 디자인해나갈 수 있는 힘’은 결국 자기 안에서 시작된다. 호기심을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는 힘, 예상치 못했던 어려운 일들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 열정을 가진 일에 끝까지 파고드는 끈기와 집념,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자기 조절력 등은 미래의 교실에서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비인지적 요소들이다.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들의 성장을 돕고, 미래의 교육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핵심 주체는 교육부도, 교육청도, 에듀테크도 아니다. 그들은 미래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결코 가슴으로 말할 수 없다. 당위성이나 첨단기술만을 앞세운 미래 교육은 단 한 번도 교육 현장에 파고들지 못했다. 척박한 교육 환경에서도 온몸으로 교육의 변화를 갈망해왔던, 교사들이 시작하는 ‘진짜 미래 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 p.331-332
대학은 ‘착한’ 학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성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실천을 원한다. 자신이 혼자가 아닌 공동체(학교, 학급, 동아리, 모둠 등)의 구성원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규칙을 준수하고, 소통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나눔에서 오는 보람을 알고, 주인의식을 갖고 때로는 실천적인 리더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인재를 원한다.
--- p.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