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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 씩씩한 포크와 계획적인 나이프

띵 시리즈-026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5건 | 판매지수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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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186g | 115*180*12mm
ISBN13 9791194087540
ISBN10 11940875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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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씩씩한 포크’와 ‘계획적인 나이프’. (대충 환상의 짝꿍이라는 뜻이다.) 정기적인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작업 비용이 들어오는 날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말하자면 우리만의 ‘비정기적 월급날’인 셈이다. 다사다난해서 마음고생이 많았던 프로젝트도 입금 문자를 받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그간의 고생이 싹 잊히는 것 같다. ‘진짜 끝났구나!’ 그리고 필연적으로 반드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진다.
--- p.25 「안서영 ‘나만의 꿈의 궁전으로’」 중에서

그리고 다음 날. 역시나 새벽에 돈가스는 무리였다. 밤새 더부룩한 느낌이 들어 잠을 설쳤다. 게다가 그 여파로 늦잠까지 자게 되어 아침 챙겨 먹을 새도 없이 부랴부랴 출근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지각하는 날엔 유독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일이 첩첩산중 쌓이고, 휴대폰은 앰뷸런스 사이렌처럼 끊임없이 울려댄다. 출근하는 길인데 벌써 집에 가고 싶다. 문득 머릿속에 한 줄기의 깨달음이 섬광처럼 스쳐지나갔다.
‘아. 지난밤 내 뇌가 원한 야식은 퇴근한 위장에게 갑자기 걸려온 업무 연락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 용건이 돈가스였다면 분명 가혹한 철야 작업이었겠지….’
--- p.46 「안서영 ‘야근수당은 있나요?’」 중에서

덕분에 우리는 대부분 두 종류의 돈가스를 모두 시켜 먹는 편인데, 어떤 가게는 로스가스가 맛있고, 어떤 가게는 히레가스가 맛있어서 가게마다 골고루 먹어보는 재미가 있다. 아마도 조리에 쓰이는 화력이나 시간, 혹은 튀김 온도 등의 레시피 차이일 것 같은데, 분명히 가게마다 주력 메뉴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둘 다 선호 메뉴를 그대로 고르는 점도 재미있다. 마치 에스파와 뉴진스처럼 둘 모두 자신의 메뉴에 대한 확고함이 있다.
--- p.54 「이영하 ‘알약파와 쩝쩝박사’」 중에서

하지만 SNS에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자랑할 정도로 특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 돈가스를 배부르게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풍경, 어딘가 기묘하게 생긴 동네의 구석, 손글씨로 삐뚤삐뚤 써놓은 재미있는 경고문, 오가다 만난 귀엽고 꾀죄죄한 털친구들 사진도 찍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그를 검색해보니 아직 그 가게 돈가스 사진을 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곳은 인스타그램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게인 것이다.
--- pp.63-64 「안서영 ‘’좋아요‘는 안 눌렀어’」 중에서

하지만 그런 그녀도 먹을 것에 관련된 일에는 ‘몽상가 잔 다르크’가 아닌 ‘냉철한 독재자’가 된다. 가격과 감성을 모두 만족하는 실리적인 메뉴 선정과 완벽한 시간 계산은 물론이고, 주문할 때도 요구 사항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단호하게 외치고는 한다. “사장님, 여기 히레가스 정식 하나와 로스가스 정식 하나요. 로스가스 정식은 카레 말고 우동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여기 손 씻는 곳이 어디 있을까요?” 완벽한 식사를 위한 위대한 독재자다.
--- p.105 「이영하 ‘잔 다르크와 독재자’」 중에서

돈가스 반찬은 모두에게 인기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나 한입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다가 정작 자신은 한입도 먹지 못하게 되어 울상을 짓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가끔 친하지도 않은 녀석이 냄새를 맡고 와서 젓가락을 난폭하게 들이밀면, 반찬을 밥 아래에 잘 묻어 숨기고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내가 좋아한 친구들은 맛있는 반찬을 맛보고 싶을 때 무척 정중히, 한 개만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는 아이들이었다. 돈가스를 싸 온 친구가 나도 몇 개 먹지 못했다며 거절하면 깨끗이 포기하기. 어린이 도시락 세계의 매너였다.
--- p.113 「안서영 ‘오리지널 세포깡’」 중에서

그 돈가스 가게는 노래를 듣고 가사를 맞히면 음식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나온 가수와 연관된 가게로 소개되었다.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트로트의 신이 어떤 청년인지 궁금한 마음에 시청하고 있었다. 마침 퀴즈의 보상이 돈가스여서 포천의 돈가스 가게가 소개되었다. 지금은 트로트의 신이 되어버린 청년이 아직 인간계에 남아 있던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으로, 돈가스 메이트와 나는 나중에 부모님이 오시면 함께 가보자고 시시한 농담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인쇄소와 돈가스, 그리고 트로트 신. 뭔가 운명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것 같았다.
--- pp.179-180 「이영하 ‘영웅의 가호까지 받았지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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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돈디돈디 에세이’다. 돈가스를 먹는다, 디자인을 한다, 입금된 작업비로 돈가스를 사 먹는다, 또 디자인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디자인 에세이’이다. 다양한 신에서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두 디자이너의 창작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미식 에세이’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돈가스 사랑이라면, 두 사람 디자인의 뿌리는 돈가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계는 돈가스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들이 돈가스를 더 사 먹을 수 있도록 괜찮은 일을 많이 제안하자. 그리고 제발 수정은 조금만 하자.
- 김보희 (터틀넥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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