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구 flypaper@yes24.com
근 1년여간 좌충우돌하며 키우던 토끼가 죽었다. 까다로운 성정과 어찌해 볼 도리 없는 라이프 스타일로 인해 마지못해 바깥 공간이 있는 집으로 줘 버렸다지만, 녀석에 대한 애정은 실로 대단했다. 꿈속에도 나타났고, 술자리에서 변변한 얘깃거리가 없으면 늘 울거먹던 신통한 안주거리였다. 플라스틱 그릇을 갉아 대고, 하드커버 웹스터 사전을 엉망으로 망쳐 놨지만, 그래도 밉지 않았던, 리차드 기어의 옆모습을 닮아 보였던 토끼다. 시트콤 프렌즈를 보고 있자면 그때마다 유달리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프렌즈의 여섯 주인공 중 가장 장난끼 많은 챈들러의 이름을 달아 주었던 근사한 토끼다.
그 녀석이 죽었다. 사인은 질투와 오기! 제 몸의 반만한 앙고라토끼와 함께 제법 여유 있는 철망에 살다가 날씨가 궂을 때면 견고한 이동용 케이스에 자리를 잡고 살았는데, 전날 미스 앙고라와 싸우고 비를 맞으며 고민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서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고 한다. 죄책감. 동물에 대한 예의와 미덕을 배반한 듯한 끝간데 없이 밀려드는 죄책감으로 한동안 괴로워했던 기억을 짊어지고 산다. 스매싱 펌킨스도 가고 챈들러도 가고 어쩐지 무기력한 공기가 밀려드는 실존의 공간은 계속된다.
"동물에 대해 한 권의 책을 쓰는 데에 해당 사육협회의 자료만으로도 충분하다면 노장 헤크, 벵트 베르크, 파울 아이퍼, 어니스트 시튼 톰프슨, 배샤 크보네신 같은 연구가들은 바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 생애를 동물 연구에 바쳤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무책임하게 쓰여진 동물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특히 동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오류를 가져다 줄 것인지는 가히 짐작하기 쉽지 않다."
비교행동학의 창시자로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동물에 대한 글쓰기를 최상급의 기술을 요하는 장르로 규정한다. 그러니까 '개나 소나 아무나 쓰는 잡문'이 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는 문학적 방법론의 일환으로 '합법적인 변조'를 가하는 동물 에세이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변조는 예술적 표현의 합법적 자유>라고 항변하지 말라. 물론 문인들에게는 다른 대상과 마찬가지로 동물에 대해서도 문학적 방법론의 필요에 따라 <형상화>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 루드야드 키플링의 늑대와 표범, 그리고 둘도 없는 그의 망구스 <릭키틱키타비>는 사람처럼 말을 한다. 게다가 발데마르 본젤의 꿀벌 <마야>도 인간처럼 예의바르고 정중할 줄 안다."
생태학적 요인들에 의한 종의 생존 적응 방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진일보시켰고, 또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의 범주에서 해석해, 인간의 철학적, 사회적 본능과 그 진화과정을 분석해 내, 비교행동학을 창시해 낸 저자는 동물에 대한 주관적인 형상화는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예술가들 또한 형상에 대한 표현을 과학적인 정확성을 기반해 재현할 필요는 없지만, 정확성에 다다르지 못하는 무능을 감추기 위해 핑계조로 형상화를 시도하는 작업을 엄중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겸허하게 자신의 존재기반을 인정한다.
"나는 자연과학자이지 예술가는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와 <형상화>를 결코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독자들에게 동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 주는 데는, 자유는 필요하지 않고 엄격한 자연과학적 작업에서처럼 사실에 충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기체적인 자연의 진실이야말로 사랑스럽고 외경스러운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부적이고 특이한 사항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194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간된 이후로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솔로몬의 반지』는 이미 같은 제목으로 기출판된 책이 있지만, 정식 계약을 거쳐 독점 출판되는 완역본으로서의 모양을 갖췄다. 또한 누락된 부분을 찾아 메우고 오역을 바로 잡았으며, 로렌츠가 직접 내용에 맞추어 그린 펜화를 수록해, 책 읽는 맛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동물들의 행동과 언어를 쉽고 꽉찬 언어로 전달해 주며, 내셔널 지오그라픽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흥미 있는 광경을 소개한다. 몇날 며칠 심지어는 몇년을 기다려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의 결과를 가독성 있는 필체로 서술한 점도 놀랍기만 하다. 에세이 형식을 빌어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동물들의 신비한 세계와 조우할 수 있는 신기하고 재미난 동물의 왕국. 오후만 있을 법한 일요일 한 때, '솔로몬의 반지'를 손에 끼워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