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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언제 깃털을 터나

새들은 언제 깃털을 터나

현대시 기획선-10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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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36*216*20mm
ISBN13 9788961043625
ISBN10 8961043625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둠 속에서 마주친 칠성무당벌레
응고된 선혈처럼 검붉었다

벌레는 발을 헛디뎌 다른 집을 찾아들기도 했다
밤바람은 온몸을 난도질했고 그럴수록
어둠 속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밤에 피는 꽃들은 화살촉 향기를 뿜었다
저물녘이 화살에 맞아 휘청일 때 노을을 떠올렸다
줄기를 따라가면 터널 같은 어둠이 엉켜 있었다

사람들은 긴 강물 같은 고랑을 따라 각각 다른 별 모자를 쓰고
안간힘을 다하여 밤길을 걸어야 했다

늦은 시간까지 몸을 뒤척이는 벌레
죽음은 자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력에서 비롯되었다

드러낼 수 없는 모종의 혐의가 암막에서 벗어나 폐허를 건너
꽁무니에 움푹 팬 빈집을 매달았다

사람의 모습이 되는 순간
어느 시점에서 하늘을 흔들다가
처음으로 본 햇살에 놀라 다리를 웅크린다

구름을 뚫어 어둠을 지우려 했지만 불가능할 것이다
벌레는 거주했던 시간들을 어둡게 보고 있다
---「벌레의 반전」중에서

노인은 바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쿨럭거리며 부서지면서 주저앉기도 한다

숨이 멎어버린 바다는 어딘가에서 떠내려온
부유물을 안고 사라진다

늦은 밤, 파도에 걸려 넘어지는
자그락거리는 자갈 소리

배들이 선착장에 모여들면
밤벌레들,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수리 갈매기들 날아들고
우럭 조개와 가리비들이 거품 물고
선착장에 뒹굴며
저들만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밤마다 꿈을 꾸는 바다는 노인의 얼굴을 만든다
파도 무늬가 얼굴에 새겨지고
얼굴마다 주름 골이 팬다

거칠었던 파도를 껴안고
짠맛을 뱉어낸다

노인들은 부드러운 미소를 가졌다
---「밤바다 랩소디」중에서

새들이 구름 아래 모여 있다
하얀 구름은 꽃처럼 부풀어 올랐고
새는 바람을 일으키는 높이를 가졌다

지구는 온갖 이유로 발광했고
37초 만에 날아오른 101빌딩이 구름처럼 떠 있다
슬픔과 기쁨의 온도는 보이는 간격에 따라 다른 걸까?

90초 만에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 속도는
시간의 간극도 삼킬 수 있다

홀로 남은 새들이 바람을 세게 움켜쥔다
허공은 막히는 것 없지만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는 높이 오를수록 바람을 밀어낸다
공중에 다리를 걸어놓은 새
다중성 점멸등처럼 반짝인다

소원을 싣고 먼 우주로 달려가는 길목에
내장을 드러낸 나무가 줄줄이 서 있다

햇빛을 받은 잎들은 종일 후줄근했고
숨을 쉬지 못했던 나무는 빛의 속도로
새잎을 달기 시작했다

난간의 끝에서 함께 놀던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와 내일을 날고 있는 새들은
캡슐로 버티는 미래를 읽어 버렸다

새는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지지 않는다
---「새들은 언제 깃털을 터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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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우의 시는 고정된 영역이나 경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보여준다. 이는 탈영토화를 시도하는 초월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추구하는 현실에의 탈주는 자연, 물질적 상상력으로 드러난다. 그의 시에서 바다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으로 우리의 시선을 초월하며, 언제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한계를 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창조하는 바다는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의 철학’을 실천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같다.
- 김지윤 (문학평론가, 상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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