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글
-산만하기만 하던 당신의 영리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법
매일같이 반복되는, 별로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하루 일과를 꾸려가는 일조차도 버거워서 쩔쩔매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큼 부모들을 힘 빠지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다른 집 아이들은 꼬박꼬박 알림장도 잘 적어오고, 숙제할 책도 학교에서 잊지 않고 가져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숙제를 끝낸다는데 왜 우리 딸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딸아이를 끌어다 책상 앞에 앉혀 놓고 지켜보면 어려운 수학 문제도 곧잘 풀고, 담임선생님도 아이가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얘길 하는데 말이다. 유치원 그룹 활동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큰 소란 피우지 않고 10분 정도는 조용히들 앉아 있는데, 어째서 다른 또래들보다 글도 빨리 깨친 우리 아들은 10초도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산만한 걸까?
사실 아이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이 정리 정돈하기나 자제력 기르기,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 등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정도 차이는 있지만 크고 작은 어려움을 드러내곤 한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방 정리를 시키는 일은 어느 가정, 어느 부모에게나 늘 골칫거리다. 지구상 어디에도 매일매일 숙제를 빈틈없이, 그것도 제시간에 완벽하게 끝내는 13살짜리 아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보통의 또래 아이들이 스스로 과제를 해내기 시작하는데도, 또래보다 한참 뒤처져 누군가의 끊임없는 감독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자녀를 둔 부모라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언제쯤이나 아이에게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게 될지, 그리고 언제쯤 아이가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차분히 자기 일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부모이기 때문에 내 아이가 머리도 좋고 성취욕도 강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늘 마음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듯 거슬리는 목소리까지 이들은 하나같이 당신의 아이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한마디씩 거들고 나선다. 당신 역시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았을 터이다. 엄마 아빠 실망시키지 말고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아이에게 빌어도 보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무섭게 소리도 질러보고, 솔깃한 미끼를 던져 살살 달래보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말로 차근차근 가르치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먹혀들지 않으면 급기야 아이를 협박하거나 매를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부모들의 노력마저도 별 효과가 없다.
당신은 정말 아이에게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자, 이제 부모들을 비롯한 많은 어른들이 아이를 가르치는 데 있어, 흔히 저지르는 두 가지 실수를 살펴보자. 하나는 지나친 간섭과 도움으로 당장은 아이가 그 일을 성공하도록 끌어주지만 이후에는 아이 스스로 해내는 기회조차 빼앗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우리 아이는 똑똑하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방치해두다가, 아이가 결국 그 일에 실패하는 동시에 혼자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기르지 못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실수를 피할 방법이 있긴 한 걸까? 지금부터 이 책에 펼쳐질 내용이 바로 그 답이다. ‘아이가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개입!’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아이들의 산만한 행동의 원인은 ‘기술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기술이 없는 아이에게 무턱대고 기술을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스키 코스도 마스터하지 못한 초보자에게 열의만 갖고서 최고 난이도의 스키 코스를 안전하게 내려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른들의 눈에 불안정하게만 보이는 이 아이들에게도 물론 감춰진 욕구가 있고, 부모가 요구한 바를 수행해 낼 잠재된 능력이 있음에도 단지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동 발달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처럼 머리는 좋지만 산만한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이 실행 기능executive skills이라는 특정 기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행 기능이란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두뇌 기반brain-based 기술로 과제 계획을 세우고, 과제를 시작하고, 그 일에 집중함으로써 충동적인 감정을 조절하고, 적응력과 회복력을 키울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이것이야말로 학교와 가정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 관계에서 아이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니겠는가.
5살짜리 아들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실행 기능이 많이 떨어지면 아이는 게임에서 지는 것조차 참아내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리거나, 혹은 함께 놀 친구를 고르지 못해 한참을 미적대다가 결국 어떤 놀이도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또한 9살짜리 딸아이가 자신이 해야 할 과제 ?획을 세우지 못하거나, 계획을 세웠다 해도 그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자기 나이에 해결해야 할 장기 과제를 결코 해내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충동 자제력이 부족한 13살짜리 아들은 엄마 아빠가 집에 없을 땐 여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고 귀에다 대고 말해주지 않으면, 언제고 어린 여동생을 집에 혼자 둔 채 친구들과 자전거를 탄다고 나가버릴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10대 후반의 청소년이 되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차에 친구들을 여럿 태우고 도로를 질주하며 위험천만한 운전을 즐기거나,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공부는커녕 수업을 빼먹고 채팅이나 비디오 게임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물건을 정리하는 데 미숙하거나 조직화 능력 또는 시간 관리 능력이 부족한 아이는 제시간에 중요한 약속 장소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충동적이고 감정 조절력이 부족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무례하게 구는 고객이나 상사를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의존하는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당신의 자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성공적으로 자신의 독립된 삶을 영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부모가 되어 그저 아이의 발달 과정이 조금 늦되려니 하며 안이하게 두고 보기만 한다면, 아이가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중요한 시기를 놓치거나 또래들보다 매우 늦게 경험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부모가 손을 놓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되고, 부모 역시 긴 시간 좌절감과 근심을 안고 지내게 된다. 하지만 당신의 자녀가 발달이 늦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기대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기술(실행 기능)이 부족한 경우라면?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가 또래 아이들을 따라갈 수 있도록 부모가 나서서 도와주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실행 기능은 모든 아이들이 아동기 때 요구되는 일들을 해나가는 데 꼭 필요한 발판이 된다고 한다. 부모에게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던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시기를 맞게 되면, 생물학적으로도 두뇌를 기반으로 하는 실행 기능의 중요성이 더욱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처럼 어린 자녀가 성인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아동기의 실행 기능은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더 늦기 전에 부모가 나서서 자녀의 부족한 실행 기능을 길러주는 데 ‘개입’한다면 아이나 부모에게 더 큰 기회들이 다가올 것이다. 이 책에서 미취학 아동부터 중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자녀의 실행 기능을 길러준다면 자녀가 고등학생이 될 때쯤에는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인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산만하기만 하던 당신의 영리한 자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자제력과 의사 결정력, 문제 해결력을 갖춘 상태일 것이다.
4살에서 14살 사이의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살피고 조정해줌으로써 아이 스스로 나이에 맞는 과제를 해결하는 실행 기능을 갖추는 걸 도와 줄 수 있다. 실행 기능은 출생 전부터 두뇌에서 형성되고 발달하기 때문에 타고난 생물학적 능력에 대해서는 손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실행 기능은 생후에도 점진적으로 발달하며 출생 후 20년에 걸쳐 뚜렷한 진보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말은 유년기부터 시작하여 부모가 자녀의 실행 기능을 길러줄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 나온 전략들을 잘 활용한다면 당신의 자녀도 알아서 제방을 정리하고, 숙제를 제때 끝마치고, 자기 차례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알며, 좌절감을 극복하고, 계획과는 다른 예기치 않은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사회적 상황social situation쪹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잘 헤쳐 나가고, 지시와 규칙을 따르며, 용돈을 모으는 일을 비롯하여 그 밖의 많은 일들을 혼자 해결할 능력을 키우는 데 충분한 기반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전략들을 통해 수천 명의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에서 큰 변화를 보였고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물론 이 전략들로 자녀를 바꾸는 데는 다소 긴 시간이 걸리므로 부모나 아이 서로 간에 인내심과 일관성이 요구되긴 하지만, 배우고 적용하기 힘든 전략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책의 전략들은 우리 부모들의 끝없는 감시나 잔소리, 구워삶기 작전 같은 일시적인 행동 규제들보다 훨씬 더 나은 대안으로써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의 삶 또한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