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게 아니고, 아까 서장이 다녀갔을 때 말이야. 주필상을 ‘주 사장’이라고 부르면서 한다는 말이, 나더러 손 떼라고 하더 라고. 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소리지.”
“주 사장이라고 했다고요? 정말입니까?”
“그래. 민간인 불법 사찰 뉴스 봤지? 언론이 더 난리 치기 전에 언론사에 정정 보도 요청하라고까지 했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여론이 민감할 시기라나 뭐라나. 하아.”
“사실 검경간 수사권 문제 때문에 말이 많긴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 그게 이유겠어? 그놈 건들지 말라는 뜻이 겠지. 거참, 청장님 지시라고는 하는데……. 그 주필상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총장부터 청장까지 이렇게들 난리냐고, 안 그래?”
민 경정이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그건 그래요. 쓰음, 주필상에 대해 더 들으신 건 없으세요?”
“딱히……. 근데 강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던데…… 주필상이라고 들어 본 적 있어?”
“그래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우리가 모를 리 없지 않습 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것도 수상하단 말이지. 왠지 느낌이 싸한데……. 하여간 그것 때문에 과장님이 연락 달라고 하신 거야. 전화해서 압수수색할 수 있게 힘 좀 써 달라고 했어. 안 그러면 긴급체포라도 하겠다고 대판 질렀지, 뭐.”
“또 그러셨어요?”
“또? 하하. 왜, 내가 그것도 못 해? 해 달라고 떼도 못 쓰냐고?
나아 참.”
“과장님은 뭐라고 하세요?”
“뭐라고 하긴, 안 된다고 하지. 이번만 그냥 넘어가자고 하더 라고.”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야, 내가 뭐라고 했겠냐?”
최 경위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크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 만합니다, 알 만해요.”
“무조건 고야. 못 먹어도 고. 이거 뭔가 있다. 우리가 쫓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몰라. 서장 말에 느낌이 확 왔어. 그리고 보통 건이 아닌 것 같다. 과장님도 어쩌지 못하시는 거 봐서는. 살인범 잡으라고 했더니 왜 애먼 사람만 들추고 다니냐 길래 압수수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박박 대들었더니, 안 된다고 오히려 더 화를 내시지 뭐야?”
“그런 상황인데 무작정 고하시게요?”
“아니지. 그랬다가는 피박에 광박까지 쓸 수 있으니 검사님 하고 논의해 봐야지. 점심 식사 후에 검사님이랑 같이 얘기 좀하자. 따로 할 얘기도 있고.”
“아이, 괜히 말 걸었다가 골치 아프게 생겼네. 근데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 아들놈은 미국에 있다고 하던데. 이번 연쇄 살인사건하고는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윗선부터 건드리면 안 된다면서요?”
“그 소리가 여기서 왜 나와? 그래, 살인범은 아닐 수 있어. 그런데…… 사교 파티 사조직과 무슨 연관성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사교 파티요? ‘다크킹덤’과 연관이 있다고 보시는 거예요?”
“야! 조용! 조용히 얘기해.”
민 경정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최 경위에게 조용하라고 주의를 줬다.
---「제12화. 보이지 않는 움직임」중에서
“그래. 주필상이라는 사람은 어때? 그자가 연쇄 살인범일 가능성은 없을까?”
“아닙니다. 주필상 씨는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CCTV에 정확히 찍혔습니다. 세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당일 시간에 현재 거주하는 집 앞에서요. 다른 두 사건은 당일 녹화 영상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을 못 했지만 말이죠.”
“그래? CCTV는 언제 확인했대. 역시 일 처리 하나는 알아줘 야겠어.”
“아닙니다. 주필상 씨 아들이 용의자이기는 하지만, 꺼림칙한 건 확실히 체크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조사해 봤습니다. 그런데 알리바이가 확실해서 별도로 보고드리진 않은 겁니다.”
“그래, 그렇지. 나도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야. 그리고 그 미친놈이 말이야. 갑자기 마음이 바뀌거나 돌발 행동을 하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예상한 날이 아닌, 일찍 범행을 저지를 가능 성은 없냐는 거야.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내일이라도 당장 범행을 저지르면 어쩌나……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단정을 지어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 다. 하지만 예측한 기간 내에서 약간의 변동은 있을지 모르겠 지만, 그 시간을 벗어나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을 겁니다. 하나의 의식처럼 행하는 살인이니까요.”
“그렇지? 사이코패스라도 말이지?”
“미친놈이기는 해도 사이코패스는 아니라 판단하고 있습니 다. 심리적 불안과 여성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는 있지만, 무언 가에서 벗어나려는 행위나 방어하려는 의식을 자기 행위로 인지한 상태에서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고 실행한다고 봐야 합니 다. 또한, 선천적인 사이코패스와 달리 후천적으로 환경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해서 소시오패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소시오패스? 그럼 묻지 마 살인은 아닌 건가? 의식처럼 살인을 행한다고 하니.”
“그렇죠. 묻지 마 살인은 아닙니다. 목적이 있는 살인으로, 그것을 달성하게 되면 살인을 멈출 겁니다. 하지만 그 목적이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누군가의 학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인지는 직접 살인범과 대면해 보지 않는 이상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만약에 목표했던 살인을 다 저지르고도 악령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거나, 목표했던 것을 성취하지 못할 경우, 그때는 묻지 마 살인으로 각성할 위험성이 높다고 봅니다.”
“각성?”
“아! 의식이 명료하게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게임에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끌어올린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 비유가 좀 그런가요?”
“아니야. 각성이라……. 소름 돋는데. 묻지 마 살인으로 각성 이라…….”
“그러니 그 전에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팀장님.”
---「제13화 잠입 수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