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의 향기를 내뿜던 우리의 보금자리는 13평의 훌륭한 감옥이 되었다. 굳게 닫힌 대문은 교도소의 철문보다 잔인하고 차가웠다. ‘저 문을 열고 도망칠 수 있다면, 나 혼자 훨훨 사라질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어!’ (중략)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아이를 이불 위에 거칠게 내던지고 돌아섰다. 그리고 베란다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나는 인간도 아니야. 아이를 소파에 던져 죽인 여자와 내가 다를 게 뭐야? 뉴스를 보며 혀를 찼던 내가 가증스러워.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하필 그 순간 그곳이 소파의 딱딱한 모서리였다면 나도 살인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는 거잖아!’
--- p.17
우연히 날아온 책이 운명이 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순간.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도대체 어떻게 살 뻔했나! (중략) 책 읽기가 필요한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일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평가와 판단의 제물이 되는 순간. 대다수의 말들이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을 만들어버리는 순간. 쏟아지는 비판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할 기회를 잃어버린 순간. 내가 나라서 너보다 나를 모르고, 내가 나라서 너보다 나를 생각하지 않는, 그런 순간.
--- p.46
‘적어도 만 세 돌까지는 엄마가 끼고 있어야 한다.’ ‘엄마 품보다 좋은 게 없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는 제정신인가?’ ‘어린아이를 두고 직장에 나가는 엄마는 이기적이다.’ 세상은 쉽게 말하고 비난한다. 그 어떤 선택을 할지라도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고, 양육의 책임자는 언제나 엄마이다. 대한민국 엄마들 대부분이, 아니 거의 전부가 산후 우울증을 앓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게 정상적인 것일까? 아이를 낳으면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신체적 질병일까?
--- p.51
『감정의 자유』에는 자신의 감정 유형을 진단해보는 부분이 있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나는 나를 분석가라고, 언제나 이성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매우 민감하고 미세한 감정을 지닌 ‘감정이입형’이었다. (중략) ‘아,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그렇게 화가 났구나.’ 내가 매일 마주하는 아이의 울음은 단순히 아이의 눈물이 아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아빠와 할머니에게 상처받은 엄마의 눈물이었고, 나를 억울하게 만든 친구들의 눈물,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왔던 상처받은 나의 눈물이었다.
--- p.63~64
참을 수 없는 억울함은 그를 향한 시기와 질투로 터져 나왔다. (중략) “당신은 좋겠다. 그러고 나가면 사람들도 만나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지? 내가 하는 일은 말 한 마디 나눌 사람도 없는 골방에 처박혀서 화장실 한 번 마음대로 못 가는 일이야. 하루 24시간 퇴근도 없고, 끝도 없고, 단 2시간도 편하게 잘 수 없는 일. 내가 했던 모든 일을 포기해야 하는 일. 내가 갖고 있던 전부를 잃어야만 하는 일. 하루아침에 내 모든 게 뒤집혀버리는 일…. 왜 나만 이런 일을 해야 해? 왜 나만 이렇게
달라져야 해?”
--- p.122~123
우리는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있으면서 최소 하루 1시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직장을 원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네 살짜리 아이와 하루 1시간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회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세 식구가 함께 살기 위해 그는 전공과 경력, 연봉 모두를 포기했다.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우리 가족의 최저 생계비를 정하고,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는 편의점을 시작했다.
--- p.110
최연소 맨부커상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엘리너 캐턴은 소설 『리허설』에서 세상의 엄마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칙칙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은 엄마들이 자식을 자기 가슴에 메달처럼 붙이고 다닌다니! 나에게 하는 말인 양 짐짓 당황해 화끈거리는 얼굴로 내 가슴을 내려다본다. 서늘해지는 등줄기를 느끼며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엄마지? 나는 내 삶에서 부족한 것을 아이를 통해 채우려고 하지 않았나?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리화하며 나의 무능함을 희생으로 포장하려고 들지 않았나?’
--- p.157
칼 세이건은 내 머리통을 사뿐히 잡아 육중한 내 몸을 단숨에 지구 밖으로 끌어 올렸다. 드넓은 우주 한복판을 동동 떠다니게 된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일 수 없었다. 내 아이와 시댁 문제, 골치 아픈 회사 문제, 갑갑하기만 한 대한민국 정치판에 고정된 나의 시야는 새까만 우주 위에서 폭발했다. ‘아. 나는 그냥 먼지이고 티끌이구나. 광활한 우주 속의 모래알 하나, 거대한 세상 속의 점 하나일 뿐. 이렇게 작고 하찮은 내가 코스모스의 일부였구나. 우리 모두가 이 경이로운 우주의 질서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구나!’
--- p.170~171
대한민국에서 주저 없이 당당하게 “나는 행복해요”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대체 몇이나 될까? 나는 행복한 엄마는커녕 살고 싶지 않은 엄마였다. 엄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엄마라는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불행이었고, 마지못해 끌려가는 하루하루가 절망이었다. 이런 엄마들이 가득한 사회에 희망은 없다. 나는 나를 위해, 내 아이를 위해, 나와 같은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들을 위해, 그 가정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기 시작했다.
--- p.2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