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상징과 동·서양 역사로 푼 신데렐라
재투성이(신데렐라라는 말은, 재투성이란 뜻인 프랑스어 상드리옹Cendrillon을 영어로 옮기면서 소리를 빌려 쓴 것임)의 무엇이, 왕의 아들을 그리도 매혹했을까? 얼굴이 예뻤기 때문일까? 아니다. 왕자의 눈길을 끈 건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은, 재투성이가 아니라 의붓 언니들이었다. "그녀[의붓 엄마]가 두 딸을 데려왔는데, 얼굴은 새하얗고 아름다웠다"고 이야기꾼은 말했다. 그런데, 임금의 아들은 그 여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눈길을, 재투성이에게만 붙박아두었다. --- p.91
'재'는 사람을 착잡하게 한다. 그 색깔이 그렇고, 촉감이 그렇다, 잿빛은 맥아리가 없다. 출렁임도 없고 잔잔한 흐름도 없다. 그렇다고 검은 색과 닮지도 않았다. 검은 색은 모든 것을 무화(無化)하여 '없음'을 오히려 세게 내세운다. '없음'을 통해 '있음'을 알리는, 기막힌 역설을 검은색은 알고 있다. 잿빛은 다른 색을 고스란히 빨아들이지도 못한다. 튕긴다는 점에서 잿빛은 있다. 그렇다고 다른 색에 힘 있게 맞서지도 못한다. 없다고 할 수밖에. 있는 듯 없는 듯, 잿빛의 꼴이다. --- p.119
재투성이에게 옷을 내려준 새는 어떤 존재일까? 새하얀 새가, 무덤 위에서, 아름답게 자란 나무로 날아와, 금 옷을 내려주는 그림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서양 사람들의 일반적인 우주관 즉 땅속 세계, 땅 위 세계 그리고 하늘 세계로 이루어진 우주가 떡하니 떠오르기 때문이다. --- p.141
사실, 신화를 포함한 옛이야기에서 신발의 구실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신화학자인 이윤기 님은 그 분의 대표작이자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의 하나인『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네 권을 이끄는 말로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를 내세웠을 것이다. (…) 이윤기 님이 그랬듯이, 서정주 님도 '잃어버린 신발'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신발이 나오는 이야기들 모두 잃어버린 신발을 말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 pp.160-161
온 세상에 스며들어 '비어 있음'을 보여준 관음보살도, 신발 하나는 따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땅을 딛고 산 삶이기에, 땅 위에 새겨진 흔적은 보살도 어찌할 수 없다는 속삭임이었으리라. 마땅하고 두려운 목소리다. 재투성이가 신발을 남긴 것도, 달마 대사나 관음보살과 같은 이치에서였을까? --- pp.183-184
사실, 하늘적인 존재와의 합일 즉 결혼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곰이었던 여신이 '신단수'아래에서 애를 태우며 기도를 한 뒤, 하늘신인 환웅을 제 짝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는 일연 스님의 말씀이 아직도 우리 귀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편적인 것을 가리켜 심리학자인 융Jung은 '원형'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가 고전적인 것은 이것, 즉 독일인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원형을 드러내는 구실을 하는 데 있는 것이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신데렐라를 퍼뜨리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