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여,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주체임을 천명하고, 국가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금지함은 물론 이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이를 실현할 의무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란 기본권적 법익을 기본권 주체인 사인(私人)에 의한 위법한 침해 또는 침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여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말하며, 주로 사인인 제3자에 의한 개인의 생명이나 신체의 훼손에서 문제되는 것이므로, 제3자에 의한 개인의 생명이나 신체의 훼손이 문제되는 사안이 아닌 경우에는 이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 제2문에서 선언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는 국가가 국민과의 관계에서 국민의 기본권보호를 위해 노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국가가 사인 상호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사법(私法)질서를 형성하는 경우에도 헌법상 기본권이 존중되고 보호되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헌법적 근거를 제10조 제2문에서 찾고 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이행은 입법자의 입법을 통하여 비로소 구체화되는 것이고, 국가가 그 보호의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행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입법재량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입법자가 기본권보호의무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러한 이상적 기준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이 될 수는 없으며, 헌법재판소는 권력분립의 관점에서 소위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즉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를 기준으로 심사하게 된다. 따라서 입법부작위나 불완전한 입법에 의한 기본권의 침해는 입법자의 보호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여기에서 기본권보호의무에 관한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즉, ① 기본권‘보호’의무의 용어의 문제, ② 기본권보호의무의 헌법적 근거, ③ 보호대상인 기본권적 법익의 범위, ④ 기본권보호의무의 발생요건과 법적 효과, ⑤ 방어권 등 다른 개념과의 비교, ⑥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에 대한 심사의 강도, 그리고 ⑦ 기본권보호청구권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지면관계상 기본권보호의무의 핵심쟁점인 위 ①, ②, ③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기존의 판례와 학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머지 쟁점에 대하여는 후속연구에서 논하기로 한다.
--- 「Ⅰ. 들어가는 글」 중에서
1. 헌법의 규정
헌법 제10조 제2문은 기본권 “보호”가 아니라 “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헌법은 여러 곳에서 ‘보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 국가의 국민(기본권)의 보호와 관련된 규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즉, 헌법은 제2조 제2항에서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8조 제3항에서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2조 제2항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32조 제4항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5항은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34조 제5항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헌법은 ‘보장’과 ‘보호’를 달리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근거로 ‘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헌법 제10조 제2문을 들었다면, 위와 같이 헌법문언상 다른 표현인 ‘보장’과 ‘보호’가 각각 고유한 특별한 내용을 담아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단지 표현상 혹은 수사(修辭)상 차이에 불과한 것’ 내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논증했어야 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하여 어떠한 설명도 없다.
2. 기본권‘보장’의무와 기본권‘보호’의무
이와 같은 우리 헌법의 사용례와 달리 우리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라는 용어를 쓴 것은,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가 사용하고 있는 “Grundrechtliche Schutzpflicht des Staates”라는 용어를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본권“보장”의무는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해야 할’ 국가의 포괄적 의무를 가리키는 것(廣義)이고, 기본권“보호”의무는 협의(狹義)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즉, 기본권의 침해는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외세(外勢)나 자연재해 또는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외세나 자연재해에 의해서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될 경우에도 국가는 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며(헌법 제2조 제2항, 제5조 제2항, 제34조 제6항), 개인에 의해서 기본권적 법익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위험이 있을 경우에도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것을 협의의 기본권보호의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헌법 제10조 제2문의 기본권보장의무의 개념은 이러한 여러 가지 기본권의 보호의무를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권보호의무는 헌법 제10조의 기본권보장의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헌법 제10조 제2문이 규정하는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는 ① 기본적 인권에 대한 국가의 소극적 침해금지 의무, ②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실정법화(實定法化)할 의무, ③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킬 의무, ④ 사인에 의해서도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보호할 의무를 모두 포함한다는 견해도 있다. 요컨대, 기본권보호의무란 광의로는 누구에 의해서든 그리고 어떤 원인에 의해서든 항상 자유권적 법익이 위협받고 있는 경우에 기본권보호를 위하여 개입할 국가의 의무를 말하지만, 협의로는 기본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인의 법익을 사인인 제3자의 위법적 제약으로부터 보호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말한다고 한다.
--- 「Ⅱ. 기본권보호의무의 용어의 문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