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 및 파리 제8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러시아 세계 문학 연구소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예세닌과 한국 문학」「미래주의 시어」 등이 있으며, 저서 『러시아 문학 개론』(1966, 공저)과 역서 『그 후의 세월』(1991, 리바꼬프), 『삶이 그대랄 속일지라도』(1999, 뿌쉬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2000, 도스또예프스끼) 등이 있다.
햇볕이 내리쬐자 활기를 되찾은 풀은 통째로 뽑혀 나가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예를 들면 가로수 아래의 풀밭이나 포석 틈새에서 싹을 내밀어 파랗게 자랐으며, 자작나무와 미루나무와 체리 나무는 끈적끈적하고 향기로운 새 잎사귀를 내밀었고, 보리수는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새싹을 터뜨렸다. 갈까마귀와 참새와 비둘기는 봄을 맞아 벌써 즐겁게 둥지를 틀기 시작했으며, 파리는 햇살 가득한 따뜻한 벽 주위에서 윙윙거렸다. 이렇게 초목도, 새도, 곤충도 그리고 아이들까지도 즐거워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특히 어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까지 서로 속이고 괴롭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 봄날의 아침이나 만물의 행복을 위해 신이 창조한 세계의 아름다움, 즉 평화와 조화와 사랑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움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여긴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저마다 머리를 쥐어짜는 일이었다. --- pp.11-12
재판장은 심문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안경을 낀 배석 판사가 성난 얼굴로 무엇인가 속삭이며 그를 제지했다. 재판장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다음 피고 쪽을 돌아보았다. 「류보피라니?」 그가 말했다. 「여기 적힌 이름과 다르잖아?」 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피고의 본명에 대해서 묻고 있어.」 「세례명이 뭐요?」 약이 오른 판사가 물었다. 「전에는 까쩨리나라고 불렸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네흘류도프는 혼자 계속 생각했으나, 의심할 여지없이 바로 그 여자임을 깨달았다. 바로 그 처녀였다. 한때 그가 사랑에 빠져 광적인 정열로 유혹하고 내팽개쳤던, 고모 집의 양녀로 자란 바로 그 하녀가 틀림없었다. --- p.55
정말이지 메니쇼프의 무고한 고통은 너무 끔찍했다.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잔학한 행위를 보면서 그가 경험했을, 선(善)과 하느님에 대한 의혹과 불신이 더욱 끔찍했다. 그리고 증명서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수백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받고 있는 모욕과 고통 또한 끔찍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끔찍하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 자신이나 자식과 다름없는 사람들, 즉 어머니와 아들을, 아버지와 딸을 갈라놓아야 하는 점차 노쇠해 가는 착한 소장의 입장이었다.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 네흘류도프는 교도소를 찾을 때마다 느끼는, 육체적인 것으로 전이되는 정신적인 구역질을 느끼며 이렇게 자문해 보았지만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