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상명대학교 평생교육원장과 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영어교육과 명예 교수로 있다. 「John Dryden의 Heroic Plays 연구」 외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저서로 『영시의 이해』, 『영문학의 이해』가, 옮긴 책으로는 『작은 구름 외』, 『우연한 만남 외』, 『더블리너스』, 『은총, 죽은 사람들』, 『망명자들』 등이 있다.
그렇고말고. 군인이 소총을 다루듯이, 혹은 음악가가 바이올린을 다루듯이 말이지. 그렇지만 그녀들이 우리들 자신만의 목적이나 자유를 허용할까? 그녀들이 서로서로 우리를 빌려 줄까? 일단 목적에 사용된 후에는, 가장 강한 남자라 해도 과연 그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그녀들은 우리가 위험에 빠지면 몸을 떨고, 우리가 죽으면 울겠지. 그렇지만 그 눈물은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 쇠약해져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거야. 그녀들은 우리 남자들이 단지 쾌락의 수단으로 자신들을 대한다고 비난하지. 그렇지만 남자의 이기적 쾌락 같은 약하고 순간적이고 어리석은 짓이 과연 여성을 예속시킬 수 있을까? 여성에 구현된 대자연의 목적이 남자를 예속시킬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 p.45
기아와 추위와 갈증, 노령과 쇠약, 질병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이 우리를 육체의 노예로 만드는 겁니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소화시켜야 하죠. 한 세기에 세 번씩 새로운 세대가 생겨나야 하고. 신앙과 낭만 그리고 과학의 시대도 결국 모두 「절 건강한 동물로 만들어 주세요」라는 단 한 가지의 기도로 내몰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육체의 이런 압제에서 도망칠 수 있어요. --- p.179
당신 최근에 지상 여기저기를 다녀 본 적 있소? 난 다녀 봤고 인간의 놀라운 발명도 살펴봤소. 그래서 당신에게 해줄 얘기는, 생명의 기술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발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죽음의 기술에서는 대자연을 능가하여 화학과 기계를 통해 역병, 전염병, 기아와 같은 온갖 살육을 자행하고 있다는 거요. 오늘 내가 유혹한 농부는 1만 년 전의 농부들이 먹고 마시던 걸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있더군.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집도, 1천 세기가 지났는데 몇 주에 걸쳐 유행이 바뀌는 부인용 모자만큼도 변치 않았고. 그렇지만 그가 무얼 죽이려고 밖에 나갈 때면 손가락으로 약간 건드리기만 해도 숨어 있던 분자의 에너지 모두를 터뜨려 놓는 기적 같은 기계 장치를 들고 가고, 오래전 조상들의 창과 화살과 바람총은 무시해 버리지요. --- p.184
내가 키우는 개의 두뇌는 개의 목적에만 쓸모가 있을 뿐이지만, 내 두뇌는 지식에만 골몰하여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내 신체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내 노화와 죽음을 재난으로 만들 뿐이오. 만일 내가 나 자신 외에 어떤 목적도 소유하지 못한다면 나는 철학자보다 농부가 되는 편이 나았겠지. 왜냐하면 농부도 철학자만큼 오래 살 뿐만 아니라 더 많이 먹고 더 잘 자며 걱정은 덜 하면서 아내를 품에 안는 기쁨까지 누리니까. 이게 바로 철학자가 생명의 힘에 시달리는 이유요. 이 생명의 힘은 철학자에게 이렇게 말하지. 「나는 지금껏 단순히 살기를 원하고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따르느라고 무의식적으로 수없이 놀라운 일을 해왔소. 이제 나는 자신과 내 목적지를 알고 나의 길을 택하고 싶소. 그래서 농부의 손이 나를 대신해 쟁기를 잡듯이, 나를 대신해 지식을 잡을 수 있는 특별한 두뇌 ─ 철학자의 두뇌를 만들었소. 그대는 죽는 날까지 나를 위해 열심히 이 일을 해야 하오. 그대가 죽을 때 나는 다른 두뇌와 다른 철학자를 만들어서 이 과업을 계속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