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0년 1월, 삭풍이 몰아치는 포틀랜드 만의 삭막한 해변에 버려진 소년.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로부터 버림받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소년은 눈보라 속에서 목적도 없이 걸음을 옮긴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인 듯한 그 얼어붙은 세상에서, 소년은 죽은 어미의 품에 안겨 죽어 가는 젖먹이 아이를 발견한다. 알 수 없는 본능에 이끌려 어린것을 품에 안은 소년은 구원의 손길을 찾아 나서지만 간신히 발견한 마을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은 날씨만큼이나 차갑기만 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가엾은 두 영혼에게 온정을 베푼 이는 인간 혐오자를 자처하며 늑대를 벗 삼아 살아가는 우르수스뿐이다. 그로부터 15년 후, 인간이라는 이름을 지닌 늑대와 스스로를 곰이라 부르는 남자,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언제나 기괴하게 웃음밖에 짓지 못하는 소년, 그리고 시력은 잃었으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난 아이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최근 국내에서도 성황리에 공연을 갖은 바 있는 「파리의 노트르담」, 「레미제라블」을 비롯한 위고의 많은 작품들이 탄탄한 스토리와 장중한 장면 묘사, 개성 있는 인물들이 보여 주는 매력으로 인해 영화나 뮤지컬, 만화 등으로 끊임없이 번안되어 왔다. 『웃는 남자』 역시 1909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영화화된 이래로 2006년의 뮤지컬 「웃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을 매혹시켜 왔다.
현재까지 영화화된 「웃는 남자」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독일 감독 파울 레니가 할리우드의 유니버설사와 손잡고 제작한 1928년 작이다. 주인공의 불행한 과거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강조한 이 작품은 종종 호러 영화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원작의 스펙타클한 전개를 충실히 살려 내었다는 평을 들으며, 이후 제작된 다른 영화와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005에는 뉴욕의 한 극장에서 이 작품을 다시 연극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주인공이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평생 웃는 표정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독특한 설정은 만화를 비롯한 여러 장르 문학의 작가들을 매혹시켰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만화「배트맨」의 악당 조커이다. 타이틀 자체를 위고의 작품에서 따온 에피소드 〈웃는 남자〉를 비롯하여 여러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영화에도)에 등장하는 조커는 원작 소설과는 달리 악당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이 시리즈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배트맨의 TV용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는 조커가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레인의 이름을 딴 그윈플레인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한다. 국내에도 상당한 팬을 가지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 기동대」에서 작품의 세계관을 암시하는 중요한 에피소드 중 하나인 스마일맨 사건에 등장하는 〈웃는 남자〉 역시 위고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크리스토퍼 램버트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더욱 잘 알려진 TV 시리즈 「하이랜더」에는 그윈플레인의 스승인 우르수스의 이름을 딴 우르사라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