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읽을 때 행복한 책은 번역하면서도 행복하다.
이 신인 작가의 소설이 그랬다. 다섯 편의 중단편은 독특한 소재의 연애소설이다. 아니, 연애소설이라고 쓰고 미스터리물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매 편마다 촘촘히 깔린 복선과 반전의 묘미에 곳곳에서 ‘헉’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스토리의 소재와 구성이 아주 신선하고 기발하다. (……) 미스터리 장치가 되어 있어 내용에 대해 더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인연이 엮어지는 과정과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을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그린 문체가 싱그럽다. 그리고 평범한 주인공들에 이어 지명과 상호, 상품명을 실제 그대로 사용하여 독자들이 이야기의 무대를 쉽게 그릴 수 있게 한 것도 이 소설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 --- 옮긴이의 글 중에서
피로연에 참가했을 때 결혼이라는 것이 약간 무서워졌다. 친척과 친구를 잔뜩 모아놓고 많은 돈을 들여 성대하게 축하를 받고 나면, 만약 헤어지고 싶어도 결심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피로연에서 축복해준 사람들에게 미안하니 이혼은 좀 생각해봐야겠어, 하고 단념하지 않을까? 혹시 그걸 목적으로 피로연이라는 걸 여는 게 아닐까?
거창한 의식을 거쳐 부부가 된 두 사람 중, 이를테면 부인 쪽과 내가 사귄다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분명 부도덕한 짓이다. 그러나 사귄다고 해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용서받고, 어디부터 용서받지 못하는 범위일까?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 죄일까? 손을 잡고 피부가 접촉하는 것은 어떤가? 함께 저녁을 먹으면 안 되는 걸까? 메일을 주고받는 것은? 문장 속에 ‘사랑’이라고 쓰면 그건 이미 신에게 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일까? --- p.74, 「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 중에서
여기에 하나의 삼각형이 있다. 공기의 저항을 받아 가장 아름답게 흔들리는 모양, 삼각형이다. 세 개의 점에는 각자의 고민이 있고 성격이 있고 인생이 있고 배려가 있다. 두 변의 길이의 합이 남은 한 변의 길이보다 크면 삼각형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서로의 시야에 있으면서 이어지고, 말을 걸고, 서로 웃을 수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삼각형을 유지할지 그건 아직 모른다. 그러나 설령 삼각형이 허물어진다 해도 나와 쓰토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삼각부등식에 적합하지 않을 때 또 다른 형태와 거리를 우리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그 확신이 강해졌을 때, 나는 오사나이에게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한 척하지 않는 말, 본심에서 우러난 가식 없는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248, 「삼각형은 허물지 않고 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