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2008년에 시베리아 동굴에서 발견된 사랑니와 새끼손가락 끝을 보고 현생인류 및 네안데르탈인과 공통 조상을 가진 새로운 인간종(학자들은 데니소바인Denisovan이라고 부른다)의 화석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빈약한 화석은 심지어 우리 현생인류가 그 인간종과 짝짓기를 했다는 사실까지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인구 수십억 명(우리도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에게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도 예전 같으면 결코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놀라운 이야기가 엄연한 사실이고, 우리가 한때 절대적 진실로 여기던 가정들이 사실무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뇌가 커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뇌가 크면 머리도 좋아지므로, 진화의 섭리가 더 영리한 동물을 선호한 결과라고 설명해왔다. 이 말은 사실이지만, 뇌가 커지게 된 메커니즘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왜 머리가 커져야만 했을까? 왜 더 큰 뇌가 진화한 것일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답은 아마 굶주림일 것이다. _ 1장 [생존 전쟁] 중에서, p46
인간종은 뚜렷이 다른 두 갈래의 길을 걷고 있었다. 체구가 비교적 작고 호리호리한 이른바 가냘픈 유인원gracile ape과 체격이 크고 다부지며 강력한 턱과 큰 어금니를 가진 건장한 유인원robust ape이었다. 각각의 접근법이 나름의 장점이 있었지만, 종국에 가서는 한쪽만 실험에 성공했다. _ 2장 [유년기의 탄생] 중에서, p51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진화의 섭리는 대단히 영리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가냘픈 유인원의 아기를 세상에 빨리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가냘픈 인간의 최종 버전인 우리야말로 이런 출산의 살아 숨 쉬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고릴라 새끼처럼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세상과 맞붙을 준비가 된 상태로 태어나려면, 태내에서 9개월이 아니라 20개월, 즉 거의 2년은 보내야 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산모에게 견디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고릴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인간은 11개월이나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셈이다.
_ 2장 [유년기의 탄생] 중에서, p61
사기꾼은 사기 칠 대상보다 한발 앞서가고, 사기 당하는 사람은 날고 기는 사기꾼의 기만을 간파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다보니,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깔끔한 속임수 중 하나가 발전했다. 바로 자신의 정신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정신을 가늠해보는 기술이다. _ 4장 [복잡한 거짓말의 망] 중에서, p132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본 능력이 정확히 언제부터 진화했는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능력이 단번의 적응으로 얻어진 결과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생겨난 숱한 적응 형질들이 축적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200만 년 전의 어느 시점에 건장한 인간 계통이 종말을 맞이했다. 건장한 인간종도 상당한 접전을 벌였지만,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결국 가냘픈 인간종이 진화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대체 누가 그것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수시로 만약의 경우를 가정하는 인간조차 그것은 예측하지 못했다. 인간은 뇌가 커지면서 출산이 빨라졌고, 조기 출산으로 유년기가 길어지고 복잡해져서 정신 발달에서 개인적 경험의 비중이 높아진 결과, 정신의 적응력과 창의성이 더욱 강해졌다. 체력보다는 머리가 더 셌던 것이다.
_ 4장 [복잡한 거짓말의 망] 중에서, p139
남녀 425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는 예술가, 시인, 기타 창조적인 ‘부류’가 연구에 참가한 평균적인 영국인에 비해 섹스 파트너가 2~3명 정도 더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창조성은 성적 매력을 지니는 듯 보인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전문 댄서(와 그 부모)가 유능한 사회적 소통가가 될 성향과 연관된 특정 유전자 두 개를 보유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_ 7장 [야수 안의 미녀] 중에서, p246
호모 사피엔스의 한 집단은 이미 우리의 다음 버전을 구상 중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트랜스휴머니스트transhumanist’라고 부르며, 미래의 인류학자들이 현생인류를 ‘시도는 좋았지만 미래의 그 시점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종이었다’고 회고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말 그대로 반은 생물이고 반은 기계인 존재가 출현할 날을 고대한다. 이 점에서 나는 그들이 옳고, 장기적?논리적 추세로 볼 때 다음에 도래할 단계가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_ 에필로그 [다음에 올 인간] 중에서, p315
나는 우리 안의 아이, 즉 빈둥거리며 놀기 좋아하고 가망 없는 일에 도전하며 불가능을 꿈꾸고 그 이유를 캐묻는 우리의 특성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변화 과정에서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비실용적이지만 융통성 있는 부분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방법, 즉 실수를 저지르면서도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현재까지 존속시킨 원동력이다. 그리고 아마 다음에 올 인간에게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_ 에필로그 [다음에 올 인간] 중에서,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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