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으로 대학 안에 존재하는 모든 분과가 지난 400년 동안 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경제학이나 수학 또는 물리학 전공 교수가 가진 박사학위를 ‘Ph.D.’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Doctor of Philosophy’의 줄임말로서 원래 ‘철학박사’라는 뜻이다. 그들의 학문이 독립된 연구 분야로 확립되기까지는 철학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 분야의 최종 학위가 아직도 ‘철학박사’로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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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철학자들은 자연 세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의 습득을 추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원리를 찾아내어 그것으로 자연 세계 전체를 통찰하려고 애썼다. 이런 작업이 철학적 작업이고, 그것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아닌 지혜의 획득을 위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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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아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묻듯이 질문하고 학생들은 점점 더 흥에 겨워 주의를 기울인다. 이렇게 아이들처럼 계속 물으며 조금씩 더 근본적인 질문에 접근하는 작업이 바로 철학이다. 어린이들은 꼬마 철학자고, 한때 어린이였던 우리는 모두 인생에 한 번은 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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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행복을 목표로 한다고 통찰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결국 행복을 향해 있으니까 그의 말이 이치에 맞아 보인다. 행복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어서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달성할 더 상위의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궁극’의 목표다. 그래서 ‘왜 행복해지려 하나?’라는 물음에는 답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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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용의 길을 걸으며 바른 습관을 통해 올바른 성향을 길러 덕을 갖추고, 그 덕을 발휘함으로써 잠재력을 효율적으로 실현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서구적 사고방식이고, 나름 전 세계적으로 많이 받아들여진 도덕 이론이다. 그렇지만 나는 동양의 불교는 이러한 도덕철학조차도 ‘행복에의 집착’을 초래해 우리에게 고뇌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살짝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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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종종 지적하듯이, 현대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대체로 감정을 전적으로 억누르는 스토아학파의 엄격한 금욕주의적 도덕관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조언한다.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우리가 감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의 순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더 건강하고, 또 현명한 방법이라고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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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도덕적으로 칭송받을 수 있다는 칸트의 주장은 이치에 맞아 보인다. 그런데 그의 견해가 우리의 상식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태어나기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또 낯선 이들에게 친절한 사람이 있다. 어려운 이들을 돕길 좋아해 기부와 자원봉사를 기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별다른 노력이나 의무감 없이 그저 타고난 성정이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이로움을 베푸는데, 칸트에 의하면 이들은 도덕적으로는 훌륭할 것이 없다.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칭송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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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톰은 젊고 건강이 넘치는 청년이다. 그는 100퍼센트 행복하다. 그런데 제니, 헌터, 니콜라스, 베스, 그리고 셸리는 각기 다른 장기 하나에 암이 생겨 곧 장기를 이식받지 못하면 모두 사망하게 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톰을 희생해서 그의 장기 하나하나를 이 다섯 명에게 이식시키면 전체의 행복량은 500퍼센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100퍼센트에 머문다. 자, 이제 우리는 톰을 수술대에 올리고 장기를 꺼내기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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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3=5’라는 셈이 옳다고 알지만 ‘2+3=6’은 알 수 없다. 우리가 참이 아닌 것을 (잘못) 믿을 수는 있지만 (올바로)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앎, 우리의 지식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로 그 믿음의 내용이 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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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있는 별을 보기 위해서는 아주 큰 망원경이 필요하다. 가까이 있는 별은 상대적으로 작은 망원경으로도 관측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큰 망원경으로만 보인다고 그 멀리 있는 별이 반드시 큰 것은 아니고, 작은 망원경으로는 작은 별만 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마찬가지로 무상한 육신의 오감으로 확인한다고 해서 그 대상마저 반드시 무상한 것은 아니고, 영원불변한 영혼으로 파악한다고 해서 그 대상마저 똑같이 영원불변하고 순수한 존재라는 보장은 없다.
--- p.80
여러분의 급우 니콜라스는 지금 여기 앉아서 한국어 억양을 가진 교수의 서양철학개론 강의를 듣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어젯밤 니콜라스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지구를 지나가던 짓궂은 외계인 과학자들이 니콜라스의 침실에 들어가 그의 뇌를 살짝 꺼내 왔다. 그러고는 영양소가 그득한 액체를 담은 커다란 병에 그 뇌를 넣어 뇌가 생존하며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또 이 뇌에 여러 전극을 꽂아 그들의 슈퍼컴퓨터에 연결시켜 놓았는데, 슈퍼컴퓨터는 니콜라스의 뇌가 마치 그가 지금 이 강의실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도록 느끼는 방식으로 신호를 조작하며 뇌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자,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한다. 니콜라스의 뇌는 자신이 이 강의실에 앉아 있지 않고 실제로는 큰 병 속에 전극을 꽂은 채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 p.95~96
여기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짙붉은 장미 한 송이가 있다. 그런데 여러분의 애완견은 이 장미를 주어도 그 색깔에 매혹되지 않는다. 개는 색맹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와는 달리 적외선 아래에서도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부엉이와 인간보다 월등히 좋은 시력을 가진 독수리에게 이 장미는 무척 달리 보일 것이다. 초음파로 물체를 감지하는 박쥐나 영화에 나오는 대로 물체의 표면 온도 차이로 사물을 구별하는 외계인에게는 이 장미가 또 다르게 보일 것이다. 천여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잠자리의 눈으로 보는 장미는 또 어떻게 생겼을까? 자, 이제 질문하겠다. 이 여러 종 가운데 누구의 감각이 이 장미의 모습을 더 잘 보여 주는가?
--- p.107~108
여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가 있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작업해 오던 연구자가 〈모나리자〉를 과학적으로 철저히 분석해 그 아름다움의 비밀을 완전히 밝히겠다고 나선다. 그는 이 그림을 현미경으로 구석구석 조사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는 〈모나리자〉를 구성하는 물감의 화학적 특성, 그림을 좌표로 나누었을 때 각각 다른 색 물감의 위치, 그림의 무게 등 〈모나리자〉가 가진 모든 물리적·화학적 특성 분석을 마친다. 이제 그는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이해하는가?
--- p.122
네팔에서 온 여러분의 학우 수자타는 미소를 잘 짓는다. 수자타의 얼굴은 물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 얼굴은 실체다. 그러면 수자타의 미소도 실체일까? 그 미소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을까?
--- p.131
데카르트는 마음과 물체가 그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확연히 구분될 뿐 아니라 그 둘이 정반대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음은 생각하는 실체이지만 공간 속에 연장되어 있지 않고, 물체는 공간 속에 연장되어 있지만 결코 생각하지 않는 실체라고 한다. 그래서 그에 의하면 공간 속에 있는 물체인 우리의 뇌는 생각할 수 없고, 오직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 마음(영혼)만이 생각한다.
--- p.137
버클리에게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실재하는 사물은 오직 마음에 의해 지각되기 때문에 실재한다. 일견 상식과 어긋나 보이는 주장이지만 차분히 따져 보면 이론적으로 반박하기 어렵다.
--- p.146
대다수 철학자들은 심리 현상은 물리 현상에 관한 법칙, 즉 물리 법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독자가 현재 욱신욱신한 두통으로 고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독자는 현미경 같은 어떤 기계를 통해 독자의 뇌세포를 관찰한 후 간접적으로 그 두통을 확인하지 않는다. 독자는 어떤 매개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 통증을 경험한다. 이런 통증의 존재는 너무도 자명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간혹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당신의 통증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착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특정 병인은 없이 통증만 존재할 뿐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아프다고 느끼면 아픈 것이지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