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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30*210*20mm
ISBN13 9791191906356
ISBN10 1191906353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서투르게 읽고 쓰고
더듬는 발음과 서툰 억양에
말귀가 다소 어두워도 괜찮아요

물설고 낯선 이국땅
인연의 끈 하나로 발 디딘 지 몇 해
초롱초롱 아이들이 곁에 있어도
하늘을 오가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고향땅 부모님 좋은 친구들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이곳에도 청마를 모르는 이 많은데
펄럭이는 깃발과 부동의 바위
그리움이 파도치는 행복을
느리게 읽고 쓰고 외우며
이국 시인 청마의 시극 공연무대를
설렘 속에 손가락을 헤며 갑니다
--- p.21 「다문화 교실」중에서

가족이 하루의 평화를 갈무리하면
청상인 이웃 여인들 서넛이 모여
밤 이슥토록 넋두리에 막걸리를 홀짝이던
어머니의 전용 사교장

술도가의 넉넉한 집 딸로 자라
군인 남편 따라 억척으로 살며 익힌
금언처럼 지혜로운 가르침
충치에는 뜨거운 참기름이요
어디에는 무엇이 좋다던 민간요법 의사

군에 간 아들의 무사를 빌며
정화수 떠 올리던 조왕신의 터전
때로는 눈물로 간을 맞추고
숯덩이로 탄 가슴 열쳐 화롯불을 피우던
우리 어머니의 전유 공간
--- p.40 「어머니의 부엌」중에서

늙은 자전거가 비틀비틀 굴러간다
낡은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육십 년도 넘게 위태로이 굴러간다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남들이 쉴 때도 멈춤 없이 굴러간다
아니 굴러가야만 한다
술도가 배달부 자전거 안장 뒤에
주렁주렁 매달린 술통처럼
자신의 주름진 얼굴만 바라보는 처자들의
까만 눈동자를 보기 두려워 고개 숙인 채
삐걱대는 페달을 힘껏 밟으며
맞바람 부는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지친 아버지의 둥글고 야윈 볼
하얀 바퀴 그림자를 품어 안는다
--- p.78 「아버지의 자전거」중에서

늙은 소를 벗으로 평생을 살아온
산골 노부부의 무딘 이야기
소걸음만큼 투박한 시골의
싱겁고 느릿느릿한 일상이 있을 뿐
눈요기도 자극도
달리 연기력도 없는 영상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더 일찍, 더 빨리
남을 앞질러야만 살아남는
디지털 시대의 긴박감을 잠시 잊고
아날로그적 감성을 끄집어 올린
독립영화 한 편

지그시 눈 감으면 들려오는
댕그랑 워낭소리
엎드려 사르르 잠이 듭니다
--- p.91 「워낭소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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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시인은 아름답고 풍성한 곳간을 가졌다. 그 곳간에는 물려받은 예술 혼과 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예술의 편린들로 가득 차 있다. 하여 가장 익숙하고 정겹고 사소한, 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는 시편들을 조심조심 꺼내 첫 시집에 담아 놓았다. 진솔하면서도 달관적이고 관조적이면서도 고백적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따습고 정답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안이 되고 공감이 간다. 목기나 유기그릇 혹은 뚝배기에 담아 내놓은 고향 친구가 차려준 소박한 밥상이다. 오래도록 묵혀둔 산채 장아찌와 묵은지 어머니의 손맛으로 잘 끓인 된장국은 배탈이 나지 않는다. 다음에는 곳간 어디쯤에서 무엇을 꺼내 독자들의 피와 살이 되고 위무가 되어 자꾸 먹고 싶은 밥상을 차릴지 기다려진다. 뜨거운 혼불을 활활 태워 오래도록 거제문화예술의 구심점에 우뚝 서 있기를 기원하며 축하의 마음을 함께 보낸다.
- 하 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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