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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

: 하늘을 나는 불

한국의 과학자 시리즈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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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77쪽 | 148*210*20mm
ISBN13 9791198502834
ISBN10 11985028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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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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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은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장군의 위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오나, 아직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에 죽어서는 아니 되는 목숨입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그 외의 벌은 무엇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이런 무엄한 자를 봤나! 나라의 군사기밀이 모두 숨어있는 곳에 몰래 들어왔으면서 살기를 바라다니 이 무슨 망발이더냐? 무엇을 훔치려고 했는지 말하여라. 첩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날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니라.”
최영은 무릎을 꿇고 있는 사내의 야무진 입매와 살기에 가까운 의지를 빛내는 눈빛을 노려보며 엄중하게 말했다. 무기 창고에 겁도 없이 들어와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저는 첩자도 아니고, 무엇을 훔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허 저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말하느냐. 당장 이실직고하고 죗값을 받아라.”
그를 무릎 꿇렸던 나졸이 노기 띤 음성으로 무선의 말을 가로막았다.
“저는 5년 전 군기감의 무기고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원나라에서 염초와 화약을 수입했다는 이야기를 부친께 들었습니다. 그것을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에 겁도 없이 몰래 들어 왔지만, 결코 훔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나졸이 노기 어린 음성으로 다시 소리쳤다.
“어허, 이놈이 누구 앞에서 감히 거짓말을 하느냐? 훔치려 하지 않았다니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최영은 나졸을 저지하며 무선에게 물었다.
“군기감에서 일한 자가 이런 일을 벌이다니 수치스럽지도 않은가?”
--- pp.14-15

무선은 날마다 대장간에 올 구실을 만들었다. 어떤 날은 하인들이 쓰는 호미와 작두의 날을 갈아야 한다고 덕새에게 성화를 부렸고, 그것도 없으면 어머니에게 부서진 문고리나 경첩은 없는지 물었다.
다음날에도 대장간에는 시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편자가 놓여있었다. 대장장이는 말발굽의 편자를 두들기고 있었다.
“저 편자들은 어디서 오나요?”
무선이 묻자, 늙은 대장장이는 걱정스럽게 한숨부터 쉬었다.
“오랑캐와 왜구들 때문에 나라가 조용할 틈이 없으니, 병영에서도 손이 모자라 여기까지 오게 되는 겁니다.”
“일거리가 많은데, 왜 한숨을 쉽니까?”
무선이 묻자 노인은 손을 멈추고 어둠 한쪽을 응시했다.
“저의 자식놈도 전쟁에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살아있는 거겠지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무선은 슬픈 소식처럼 마음이 먹먹해졌다. 무선은 다음 날에도 두레박 고정쇠가 부서진 것을 들고 다시 대장간으로 찾아갔다.
얼마 전 무선은 옥란을 위해 우물 위에 활차(도르래)를 설치해 주었다. 옥란이 우물을 긷다가 두레박을 가끔 빠트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꺼내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덕새를 부르고, 갈고리를 찾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때 무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가 구해오신 책 중에는 원나라에서 건너온 그림책도 있었다. 여러 가지 편리한 도구들과 그 만드는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었다. 그 내용 중에 활차라는 것이 있는데, 그 끝에 두레박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그 활차만 있으면 두레박을 우물에 빠트리지 않고도 물을 길을 수 있었다. 무선은 덕새의 도움을 받아 활차를 만들어 보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완성했다. 솜씨는 서툴러 모양새는 엉성했으나, 활차에 매달린 두레박은 우물에 빠지지 않았다.
두레박을 둘러싼 쇠 테두리와 두레박을 연결하는 고리는 녹이 슬고, 때로는 닳아 고리에서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무선은 신이 난 듯 대장간을 찾았다.
--- pp.33-34

다음날도 무선은 묵묵히 좌식 책상을 앞에 두고 가져온 흙들의 냄새를 맡고 흙을 채취한 날짜와 장소를 기록했다. 가끔 눈을 꿈쩍이며 먼 데를 쳐다보다가,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금주의 마음은 조금씩 타들어 갔다.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몸을 혹사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서방님, 흙에만 고개를 처박고 계시니 눈이 나빠지실 것 같습니다. 좀 쉬었다가 하시지요.”
무선의 구부정한 어깨와 움푹 들어간 얼굴에 광기가 어릴 만큼 몰두하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났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 그랬다.
“잠시라도 고개를 들면 머릿속이 모두 흐트러지고 말 것이오. 어제 받쳐놓은 것과 오늘 새로 끓이고 걸러 받친 것이 어떻게 다른지 기록 중인데 그것이 잘 못 되면, 어제부터 했던 일이 말짱 헛것이 되오. 아니지, 그동안의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오. 당신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걸 완성해야 하는데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오. 사람들 소문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금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방님 말이 옳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마음 두지 마시고, 건강을 돌보셔야지요.”
무선은 입술을 단단히 다물며 묵묵히 지난 기록을 다시 되짚어 보며 말했다.
“그래, 미쳤다고 하라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함에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소. 내 간절함이 크기에 누구도 내 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오. 그런 것으로 마음 흔들리지 않으니 부인은 걱정하지 마시오.”
무선은 마당을 내다보았다. 덕새는 한 손에 지게 지팡이를 쥔 채 건너 채 마루 끝에서 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지게를 해 와서 광에 쌓아놓고 잠시 쉬는 중이었다. 아마도 덕새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옥란에게 가 있을 것이었다. 남쪽 하늘을 바라보는 것인지 늘 앙상한 감나무의 길게 뻗은 빈 가지에만 눈이 가 있었다.
--- pp.61-62

혼자 남은 무선은 화약 방의 재료와 기록들을 베보자기에 싸서 모두 땅에 묻었다. 화약 방 문을 걸어 잠그며,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화약이 아무리 급하기로서니 나라가 풍전등화이니 힘을 보태야 했다.
무선은 대포 만드는 일에 참여하며 최영과 이성계의 군대에 무기 보급하는 일을 맡았다. 그 몇 달 동안 홍건적은 개경에 머물면서 고려 백성들을 처참하게 살육했다. 살인과 방화와 강간은 비일비재했다. 임산부의 가슴을 잘라 구워 먹기도 하는 등의 온갖 잔인한 악행으로 고려인의 피눈물을 쏟게 했다. 최영과 이성계는 개경 탈환을 위해 20만 명의 군대를 조직하고, 최전선에게 서로 힘을 합해 홍건적과 싸워나갔다.
다음 해, 눈보라와 비바람과 싸우며, 어렵사리 최영의 군대가 개경을 탈환했다. 개경은 초토화 되어 있었다. 송악산 주위에는 개경을 둘러싼 외성이 있었다. 황도 개경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조된 것인데, 궁궐의 내성곽과 외성곽이 모두 무너진 데다, 궁궐이 모두 불타 사라졌다. 무선은 허탈한 마음으로 무너진 성터를 보았다. 이 처참한 상황에 뜨거운 피눈물이 흘렀다. 화려하고 웅장했던 회경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만월대 궁궐터만이 불탄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만월대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남대가의 기와집도 모두 불타고 주저앉은 데다, 인적 없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고려인이 죽어 나갔다.
‘화약만 있었어도 오랑캐가 이렇게 쳐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선의 분심은 더 솟구쳤다. 나라 힘이 약하면 어찌 되는지 두 눈으로 다시 똑똑히 보고 확인했다. 백성이 나라의 뿌리인데, 그 뿌리가 힘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그런 지경에도 간신들은 제 배를 불리기에 급급했다. 탐욕은 권력이 많을수록 심했다. 그들은 정의나 신념, 인간 됨과 예의를 버렸다. 백성들의 하늘이 무너졌을 때, 그 가녀린 허리를 비틀어 혈세를 착복하고, 노예로 삼으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감정인 연민마저 버리고, 피를 빠는 흡혈귀처럼 변했다. 개경의 백성들이 죽어서 주인 없는 땅들이 생기자, 권문세족들이 주인 없는 땅들을 자기 소유로 만들며 배를 불렸다.
--- pp.114-116

주부와 왕실 병력을 데리고 인월곶으로 갔다. 수평선은 잔잔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그것을 감상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비밀스럽게 이곳으로 온 것은 화전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여몽 연합군이 쓰던 화포를 입수하여, 그동안 그것을 모방하여 개발한 것이었다.
왕이 명령하자, 앞으로 나간 병사는 화살 끝에 헝겊으로 감싼 화약 뭉치를 매달았다. 축포용으로 수입한 화약을 아껴 놓은 것이었다. 화살에 불을 붙이자 불은 순식간에 타들어 갔고, 대나무 통 속의 화살은 순식간에 날아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공민왕은 화살이 사라진 먼바다를 보며 다음 화살을 기다렸다. 화약은 단 두 번의 실험으로 바닥이 났다.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있나. 화약 무기가 있어도, 화약이 없어 쏘지 못하다니…….”
왕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서를 전달했다.
“왜구들이 고려에 들어와 소란을 일으키며 다닌 지 벌써 20년이 넘어갑니다. 그동안 고려의 연해에 있는 군대의 요새에서 병사들을 총동원하여 방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왜구를 추격하기에는 왜구의 세력이 너무 커서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수동적으로 왜구의 침입에 대해 막는 것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추격하고 섬멸하여, 백성의 근심을 덜고, 다시는 고려의 연해에 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수군도 배도 부족하여 왜구를 무찌를 배를 더 만들어야 하고, 그 배에서 사용할 무기들도 필요합니다. 무기를 만들 수는 있으되, 화약과 유황, 염초 등은 고려에서 구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황제께 아뢰니 이것들을 하사해 주시어, 더 이상 이 땅에서 왜구들이 횡포 부리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사신은 얼른 돌아오지 않았다. 노심초사 기다리던 공민왕에게 한겨울이 되어서야 서신이 도착했다. 서둘러 펼쳐본 왕은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거절은 뼈아픈 것이었다.
--- pp.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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