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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동물원

한밤의 동물원

꿈꾸는 돌-10이동
리뷰 총점8.5 리뷰 2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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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88g | 140*210*15mm
ISBN13 9788971996119
ISBN10 897199611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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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목소리 좀 낮추라니까!”
라마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살펴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형제는 깜짝 놀라 이 동물을 보았다가 다시 저 동물을 보았다. 심장이 물수제비를 뜨는 돌처럼 통통 뛰었다. 안드레이는 마린 삼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동물은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어. 비밀을 간직할 줄도 알고.’ 동물이 말을 한다는 사실은 저희끼리만 알면서 사람에게는 비밀로 간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틀림없었다. 호들갑을 떠는 게 실례겠지만 안드레이는 어쩔 수 없었다.
“말을 하잖아!”
“그래서 뭐? 우린 말하면 안 돼? 우리한텐 얘깃거리가 없을 거라 생각해?”
샤무아가 말했다.
“사람들은 늘 떠들지.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해. 샌드위치 더 없어? 만지지 마, 세균투성이니까 하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시키는 거야 하고. 우리라고 말하지 말란 법 있어?”
라마도 말했다.
--- p. 53~54

알리체가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동물들도 나이를 먹어 갔다. 세월은 알리체에게 새롭고 놀라운 것을 가져다주었으나, 동물들에게는 그런 선물이 아닌 따분함을 가져다주었다. 동물의 세계에선 어떠한 도전이나 모험도 펼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재규어, 긴팔원숭이, 들고양이, 사슴. 이 모든 동물은 알리체와 같이 아침에 깨어났다가 밤이면 똑같이 잠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동물은 나이를 먹었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렀다. 알리체가 걸음마를 떼던 무렵 좋아했던 오소리는 열 살 생일 때 털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죽었다. 공작은 어느 날 저녁에 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깃털 사이에 묻혀 쓰러져 있었다. 평생을 동물원에서 살던 재규어가 죽었을 때 알리체는 열네 살이었다. 재규어는 추운 날씨를 싫어했고 관람객을 무서워했다. 털이 까맣다 못해 푸르스름했다. 알리체는 제 모습이 재규어의 구릿빛 눈동자에 비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재규어의 눈빛은 언제나 알리체 너머 정글을 찾고 있었다. 눈 내리는 들에 서서 재규어 무덤을 파는 아빠를 도우며 알리체는 죽음이 재규어를 자유롭게 해 주어 이젠 덩굴진 포도나무를 올라가고 따뜻한 강물을 핥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길 바라며 울었다.
--- p. 71

알리체는 여전히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쾌활했지만, 그 뒤 몇 년 사이에 친구와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며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문이 닫힌 동물원에 찾아가 동물들을 쓰다듬고 말을 걸면서 홀로 동물들과 마주했다. 동물이 태어난 땅이나 살았을지 모를 삶에 대해 읽어 주었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들어 가며 동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으스름한 달빛 아래에서 동물들은 해안, 산, 돌풍, 빙하, 피, 굴, 새끼 같은 단어를 들었다. 알리체는 두 손을 창살 사이에 넣고 샤무아의 털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빽빽한 털에 다섯 손가락이 지나간 자국이 생겼다. 알리체는 제 말을 들으며 누워 있는 동물들에게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너희를 풀어 주고 싶어.”
알리체는 동물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다른 것, 아버지에게 수백, 수천 번도 더 들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동물원에 살던 동물은 원래 서식지로 돌려보내 주어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떤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갇혀 살아서 다른 세상은 알지도 못한다. 어떤 동물은 갓 태어난 새끼 때 야생에서 사는 법을 미처 배우기도 전에 잡혀 왔다. 어떤 동물은 다친 채 발견되어 동물원이란 보호구에 들어왔지만 그때 입은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
--- p. 73

물범은 쌕쌕대며 숨을 쉬고는 다시 오락가락 빠르게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갈 곳도 없는데 끊임없이 헤엄치는 모습이 지켜보기에 애처로웠다. 살아 있는 생명이 저렇게 숨 막힐 듯 아무 뜻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물범이 바다를 기억할까?”
바다를 잊어버렸다면 마음이 덜 아플 텐데. 하지만 곰의 대답은 달랐다.
“당연히 기억하지. 물범의 마음에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넘실거리고 있거든. 바다는 물범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물범을 소리쳐 부르지. 물범의 조상이 거기서 헤엄쳤고, 오늘도 친척이 거기서 헤엄친다고. 물범은 피와 뼈가 바다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바다를 기억하는 거야. 저 바깥 어딘가, 바다와 바다 사이에는 빈자리가 있어. 물범이 거기에 없기 때문에 비어 있는 거지.”
--- p. 101~102

“세상이 다 네 집이란다, 안드레이. 우리 집시는 갓조와 달라. 그 사람들은 집을 짓고, 땅을 갈고, 자기네 거라고 주장하며 울타리를 치거든. 우리 집시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동물에 가깝다. 짐도 없지,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지.”
자유로운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그건 동물이 가진 것 가운데 사람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동물원 동물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먼지가 이 동물들보다 자유로웠다. 물 위에 내려앉은 각다귀가 물속을 헤엄치는 물범보다 더 자유로웠다. 동물이 날 때부터 받은 위대한 선물 하나를 쇠창살이 빼앗아 간 것이다.
--- p.107

안드레이는 조금 전까지 남자아이였던 자신을 생각했다. 세상이 엄격하지만 공평하다고 믿었던 아이. 그 뒤 이 믿음이 뒤집히는 걸 보았고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이 세상에서는 연이, 펄럭거리는 연의 그림자를 밟으며 노는 아이들을 배신할 수 있었다. 군인은 훌륭한 전사가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희생자를 골라내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아기를 훔치고, 남자는 마을을 쓸어 버렸다. 이건 안드레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세상은 단단하고 차가운 껍질에 싸여 피도 눈물도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안드레이는 여전히 믿었다. 슬픔과 환멸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좋은 세상을 믿고 있는 자신이 아주 놀라웠다. 그리고 선한 것을 찾기가 어려워질수록 그것이 꼭 존재하리라는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 p. 174

토마스가 해맑은 아이처럼 팔을 쫙 벌리며 말했다.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겠지! 방법을 알게 될 거야. 모두 스스로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해. 나도 어릴 때 신발 끈을 못 맸어. 하지만 배운 다음엔 잘할 수 있다고!”
“얘들은 달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스스로를 돌보며 살았어. 얘들이 시원찮은 머리로도 살아남은 걸 보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샤무아가 아이들을 깔보며 말했다.
“우린 서로 돌봐 줄 수 있어.”
캥거루가 말해 주어도 라마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난 차라리 여기 남을래. 너무 무서울 것 같아.”
“정말 무섭긴 해, 가끔은.”
토마스가 일단 라마 말을 인정한 다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서운 일을 겪다 보면 용감해질 거야.”
그러자 안드레이가 말했다.
“그냥 우리를 믿기만 하면 돼. 너흰 원래 쇠창살에 갇혀 살지 않잖아.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없어. 언덕에서 굴러떨어지고, 외롭고,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는 거야. 그건 네가 살아 있으니까 일어나는 일이야.”
--- p.184~185

이제 세 아이와 캥거루만 남았다. 토마스는 우리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생물에게 물었다.
“캥거루는 어디에 사니?”
“나도 몰라.”
캥거루가 대답했다. 캥거루는 길을 잃었다. 토마스는 잔디밭 너머 형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 있을까?”
“안 돼. 생각 좀 해 보자.”
안드레이가 말했다. 안드레이는 손톱을 깨물며 마린 삼촌이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려 애썼다. ‘동물의 참된 모습은 모양에 들어 있어. 몸이 참된 모습을 말해 주는 거야.’
“캥거루는 털이 짧은 걸 보니 태양이 빛나는 곳에서 온 것이 틀림없어. 여행하기에 좋게 다리가 긴 걸 보니 넓은 땅에서 온 게 틀림없어. 색깔이 칙칙하니까 그곳엔 바위와 맨땅이 있을 거야.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캥거루야?”
유대목 동물은 마치 이상한 새소리를 듣기라도 한 양 귀를 쫑긋했다.
“내 생각에 거긴 멀어. 바다 건너에 있어.”
“좋아. 우리한텐 뗏목이 있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래서 아이들과 캥거루는 뗏목의 방향을 돌려 어마어마한 바다를 가로질러 마침내 캥거루가 살았던, 해가 밝게 빛나는 넓은 땅에 닿았다. 캥거루는 깡충 뛰어 제비가 하늘을 뚫고 날아가듯 아주 빨리 달려서 듬성한 덤불과 향기로운 나무 사이로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잘 가! 보고 싶을 거야! 돌아오지 마.”
토마스가 달려가며 크게 외쳤다.
--- p.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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