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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수도자의 삶의 책
제2권 순례의 책 제3권 가난과 죽음의 책 옮긴이의 해설 릴케 연보 |
저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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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눈의 빛을 끄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의 두 귀를 꽉 막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발이 없어도 나는 당신에게로 갈 수 있습니다. 입이 없어도 나는 당신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리소서, 나는 마치 손을 가지고 하듯이 나의 가슴으로 그대를 품어 안을 것입니다. 나의 심장을 움켜쥐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의 뇌 안으로 불길을 던지면, 나는 당신을 나의 피에 실어 나를 것입니다. 『기도시집』의 제1권에서는 자기 만족적인 심미적 예배 ─ ‘신의 더 큰 영광을 위해’ ─ 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신과 시적 주체의 위상의 명백한 구도를 통해서 드러난다. 왜냐면 자아의 구성을 통해서 신 역시 끊임없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주체의 시적 언어작업 없이는 이러한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신은 주체가 주체일 수 있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구성 요소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차이의 체험들이 비로소 엄밀하게 자기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이다. 타자의 계속적인 새로운 기획은 자신의 지속적인 기획과 연계된다. 그 배경에는 예컨대 “내가 없이는 신은 살아 있지 않네/나는 내가 없이는 신이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안다네”라고 노래한 안겔루스 실레지우스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에서 이미 전개되었던 것과 같은 일종의 신비주의적 사상이 있다. 실제로 『기도시집』의 비유나 상징언어는 특별히 성서와 신비주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나를 잃으면 당신은 당신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신은 시적 창작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의 자식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전도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신비주의의 전통을 알아차리게 된다. (......) 1905년 릴케도 처음으로 독일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텍스트에 열중했을 때, 그 자신이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이 벌써 수년 전부터 이미 마이스터의 제자이자 포고자였음”에 대해서 놀라움을 나타냈다. “우리가 신을 떠나서 있을 수 없듯이 신도 우리들 현세의 인간을 몹시 필요로 할 것임이 틀림없다”고 믿는, 횔덜린이 읊는 것처럼 “천상적인 것들/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면,/영웅들과 인간들/그리고 기타의 필멸의 존재들이다. 왜냐면/ 가장 복된 자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시 「라인강」)라고 믿는 신비주의 전통에 릴케는 서 있었던 것이다. 화가─수도자가 행하는 소박하게 연출된 친밀성도 그러한 신비주의의 현대성의 표현임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작은 신호라도 보내 주십시오. 나는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시적 자아는 그의 신에게 이렇게 격식을 차려서 자청하고 나선다. 반세기 넘게 지나 첼란(Paul Celan)은 그의 널리 알려진 시 「테네브레」(Tenebrae)에서 똑같이 읊는다. “기도하소서, 주여,/우리에게 기도하소서/우리는 가까이 있습니다.”(시집 『언어의 창살』, 1959) ---「옮긴이 해설」중에서 |
『기도시집』이 발행되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신의 탐색자”로서의 릴케, “우리 시대 한 시인이 시도했던 가장 순수한 종교적인 고무”라는 상찬의 서평을 썼다. 그러나 서정시인이자 비평가였던 프라스캄프(Christoph Flaskamp)는 테스트의 넒은 범위에 걸친 “작의적인 기교”, “그의 신과의 연관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터무니없는 상황”이라고 혹평했다.
이외에도 『기도시집』의 종교성를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다른 해석들은 수많은 시편에서 언급되고 있는 신을 하나의 암호(Chiffre)로 이해했고, 이 암호에는 “모든 현세적인 것의 총화”가 요약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넘나들 수 없는 질적 차이, “창조주는 하늘에 있고 피조물은 땅에 있다”는 종교적 명제는 이 시집의 해석에서 처음부터 의문시된 것이다. 더욱이 20세기 후반에 들어 연구는 이 시집을 무엇보다도 “시 쓰기에 대한 문학”으로 보고 토론을 전개한다. 드 망(Paul de Man)은 심지어 이 시집을 “공공연한 신성모독”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시들의 의미는 오로지 “기술적인 상황의 해결”에 있다고 주장한다. “신”이라는 어휘는 여기서 “화음을 만들어내는 수공업자”의 교환 가능한 언어재료로 왜소화되었다는 것이다. 릴케의 『기도시집』은 종교적-교화적인 의도, 의식화(儀式化)되고 구조화된 일상생활의 질서 그리고 특별한 심미적인 조형이 가장 밀접하게 결합되어야 한다는 연상은 “기도서”라는 표제와 함께 쉽게 떠오른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여기 『기도시집』에도 적용할 수 있다. 릴케는 편지들을 통해서 『기도시집』의 종교적-교화적인 의도를 직접 강조했다. 기도서에 대한 회상을 통한 일련의 찬양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낭만주의 이래 반복해서 제기된 것처럼, 예술, 종교 그리고 삶의 실천의 낡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치에 대한 회상의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넘어서 릴케의 『기도시집』은 현대적 교화서이다. 그의 『기도시집』은 전적으로 성찰적이기 때문이다. 릴케는 『기도시집』의 시의 형식과 쓰기가 더 이상 소박한, 일률적인 종교의식일 수 없으며, 신에 대한 “작업”으로서 “모든 예술의 욕망 자체이며, 따라서 기도와는 다른” 예술작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한 대화록에서 그는 『기도시집』이 시들의 단순한 편집이 아니라, 하나의 연관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의 다른 모든 책들 이상으로 이 시집은 하나의 노래이며, 어떤 시연도 그 자리에서 옮겨질 수 없는 유일무이한 시이다.”(대화록, 파리 1924) 『기도시집』은 무엇보다도 릴케의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첫 서정적 문학작품이다. “고유하고 독특한” 릴케는 『신시집』과 『말테의 수기』와 같은 중기의 작품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도시집』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다. 『기도시집』은 릴케 자신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연작(連作)으로 구도되었다. 릴케가 그렇게 중요한 연작이라는 대규모의 서정적인 형식을 선택한 것은 자신에게나 1900년 무렵의 서정시에도 처음이다. 릴케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술작품의 조화, 완결성 그리고 전체성이라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연작은 시적 자아 자신이 발언을 시도하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건성”과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신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발언을 시도하는 유일한 거대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급진적으로 주관화된 관점에서 릴케의 종교성과 현대 예술은 어울린다. 기도와 시적 작업의 이러한 결합은 멀리 거슬러 올라가 베네딕트 교단의 “기도와 노동”(ora et labora)을 회상케 한다. 『기도시집』의 기도들은 그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인 예술작품이다. 이것이 『기도시집』의 형식, 표현법과 주제설정에 대한 조건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에도 제도적으로나 교조적으로 편향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매개적인 존재도 필요 없는 종교 내지 종교성의 문제는 릴케에게는 예술이 중요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기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일종의 문학적인 삶의 여정을 볼 수 있는 『기도시집』의 3부 구성은 엄밀한 구조원리이다. 그것은 삶의 -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 순환과정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지막 권은 앞선 권들에 대한 답변 또는 앞선 권들의 포기나 “좌초”가 아니라, 그것들의 결산이다. 각 권들의 완결성과 이들 사이의 휴지를 우리는 생성사 - 각 권의 짧은 생성 기간과 이들 사이의 상대적으로 큰 시간적 거리 - 와 결부시킬 수 있다. 『기도시집』을 이루고 있는 3개의 권(卷)은 1899년, 1901년 그리고 1903년 릴케의 집중적인 창작시기에 쓰여졌다. 그리고 1905년 릴케는 이 텍스트를 퇴고했다. 이로써 이 연작시집의 생성기는 그의 초기부터 중기의 창작시기에 이르게 된다. 그 사이 그의 종교적 사유 방식이나 언어 구사 방식이 각 권에서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텍스트의 진행에서 수도자의 역할이 점점 배후로 물러서고, 신과의 직접적인 소통 시도는 마지막 권에서는 죽음과 가난에 대한 성찰에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지만 각 권들 간 모티브 상의 연계는 유지된다. 세 번째 권에 그렇게 중요한 죽음의 모티브는 이미 두 번째 권에 등장한다. 순례의 모티브는 첫 권에도 “그때 나는 순례자의 한사람으로 대성당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가득한 고통 속에서 /나의 이마에서 당신을 느꼈습니다,”로 표현되고, 마지막 권에서 “거기서 나는 순례자들과 한편이 되고 싶습니다”로 수용되고 있다. 또한 두 번째 권의 범신론적인 어법에서는 세 번째 권의 삶과 죽음의 일원론이 이미 암시되고 있다. 제1권: 신에게로의 접근, 신비주의의 현대적 재현 여기서 러시아 수도자가 그리고 있는 신은 성서에서와는 달리 창조자로서 또는 기적을 통해서 어떤 능력도 펼치지 않는다. 그리스도 역시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노래하는 시들에서의 신은 오히려 “어두운” 그리고 “말 없는” 존재이다. 그 때문에 수도자는 더없이 큰 주의력으로 자신의 수줍어하는 신을 찾아야만 한다. 신비주의와 범신론에 기대여 그는 신의 “말 없는 힘”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물에서, 모든 생성과 소멸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수도자의 삶에 관한 제1권은 성상화 화가의 허구를 구상한다. “나는 그것을 황금빛 바탕 위에 크게 그립니다.” 성상화 화가는 자신의 신에 대한 규정 시도에서 자기규정을 동시에 체험한다. 신은 어떤 초월적인 힘을 가진 아버지-상(像)이 결코 아니다. 『기도시집』의 자아 탐색과 신 탐색에서 미술과 문학은 다 같이 중요하다. 바로 시적 ‘작업’에서 ‘수신자’로서 신에 가까운 존재는 필요하다. 『기도시집』의 수도자는 “말의 근원적인 뜻에서 신학자”인한, 신에 대해서 말하는 한 사람이다. “당신을 위해서 시인들은 틀어박혀서/표상들을, 쏴쏴 소리를 내는, 풍요로운 표상들을 모읍니다.” 이러한 신인지 시학(cognitio Dei poetica)의 “이미지”는 때로는 거의 집요하게 그리고 사물화로서 작용할 수 있는 하나의 독특한 구체성을 달성한다. 예술가-주체는 신과의 지치지 않는 논쟁 가운데 그 주위를 맴돌기 위해서 신이라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 릴케는 『기도시집』을 통해서 세계 내의 한 현존으로서 인간적 실존을 해석하라는 요구에 응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가 ‘나’를 말할 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우리가 ‘당신’을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나’를 말할 수 있다. 자아는 그 때문에 “내가 당신과 매우, 수천 가지로 친화 관계라는 것을” 안다. 지치지 않는 주관성은 거대한 신의 구성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그렇게 진지하고 그렇게 도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러시아적인 신과 러시아적인 종교성으로의 연관을 통해서도 확실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시적 과제는 시적으로 생산적이다. 이 시적 과제가 시적 발화를 새롭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시집』의 이러한 신의 개념과 추구에서 『두이노의 비가』의 천사들에게 이르기까지 하나의 연장선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기도시집』에서는 자기 만족적인 심미적 예배 - ‘신의 더 큰 영광을 위해’ - 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신과 시적 주체의 위상의 명백한 구도를 통해서 드러난다. 왜냐면 자아의 구성을 통해서 신 역시 끊임없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기도시집』에는 신에의 접근과 예술적 성공, 형이상학과 메타포에지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신의 파악 불가능성은 자아의식이 강한 예술가에게는 도전으로 대두된다. 신의 예술적인 완성은 예술가의 자기완성을 위한 전제이다. 여기에 『기도시집』의 제1권을 특징짓는 “긍지와 겸손”의 독특한 변증법이 인상적으로 나타난다. 기도는 신을 찬미한다. 그러나 최소한 그만큼 찬미하는 자 자신을 또한 찬미한다. 신을 찾는 수도자의 구도는 신을 찾는 예술가의 구도이다. 제2권. 현세로의 관점의 이동 『기도시집』의 두 번째 권, 「순례의 책」은 인간의 삶도 이론의 여지없는 순례라고 하는 기독교적 전통에서 유래하는 사상을 이어받고 있다. 여기에서도 릴케는 교화적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출발의 모티브가 중요하다. 「수도자의 삶의 책」이 근본적으로 신과 시적 자아의 정체성 탐색을 유일한 동인으로 삼았다면, 이제 시점은 순례로서의 지상에서의 현존이라는 오래된 사상으로 옮겨진다. 『기도시집』의 폭풍, 건축물, 성장, 나무와 같은 첫 모티브들이 여기서 모두 되돌아오고, 길의 은유와 결합된다. 제1권의 과잉된 언어 표현은 2년 후 쓴 제2권 「순례의 책」에서는 겸손과 냉정에 길을 비켜준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위기의 경험들을 노래한다. 이때 러시아 수도자의 역할모델이 여전히 소환된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선언은 오히려 제2권의 발언자가 결코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이다. 신에 대한 그의 관계는 급진적으로 변했다. 신에 대한 이웃과 같은 근접성과 친화력은 과거의 일이다. “엄청나게 먼 당신을 향한 길“, 그리고 이 거리감에서 신에 대한 관점 역시 변한다. 제1권에서 신의 발견은 자신의 발견과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이제 자기 소외와 신으로부터의 소외가 서로 상관관계에 놓인다. 제2권의 특징은 하나의 관점의 변화이다. 시적 자아 시점은 더 이상 신을 향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세속적 주변을 향한다. 제1권이 예술 종교적인 종을 울렸다면, 이제는 선언적으로 현세 중심의 종을 울린다. 이를 통해서 릴케의 중기 작품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시는 거리 두기로 특징되는 자아와 신과의 관계에 연결된다. 그리고 세속적인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는 『기도시집』 제2권에서 어떤 실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 릴케가 이 시연 -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이 시연은 그녀에게 바친 것이었다 - 을 이 시집에 넣었다는 사실은 『기도시집』이 감각적이면 현세적인 것을 향해서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를 명백하게 말해 준다. 제3권: 죽음과 가난을 통한 대도시 비판 연작 『기도시집』의 가장 짧은 제3권의 자서적인 바탕은 릴케의 1902년 가을부터 1903년 봄까지 이어진 파리 체류이다. 등장인물 러시아 수도자는 더 이상 명백하게 호명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기도시집』의 소통 상황은 시적 자아가 “거대 도시들의 불안”에 대한 보고자로서 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유지된다. 이와 함께 제3권은 그 표제에서 제기된 실존적인 주제들, 릴케가 그의 중기 및 후기 작품에서 눈길을 뗀 적이 없는 죽음과 가난을 통한 그의 대도시 비판에 집중한다. 회상록에서 릴케는 이 제3권을 “기도시집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칭한 바 있다. 시적 자아는 대도시의 인간들이 죽음을 병동으로 옮겨 맞는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이로써 죽음을 포함하는, 사실 개별적인 죽음의 과정을 삶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보는 삶의 개념은 폐기된다. 릴케의 애독서의 하나였던 덴마크의 작가 야콥센(Jens Peter Jacobsen)의 소설 『마리 그럽베 부인』을 회고하는 가운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간 각자의 “고유한 죽음”을 시적 자아는 간청한다. 오 주여, 저마다에게 그의 고유한 죽음을 주소서. 그가 사랑을 지녔고, 의미와 고난을 지녔던 삶에서 나오는 그의 죽음을 주소서. 우리는 다만 껍질과 잎사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위대한 죽음은 모든 것의 중심을 담고 있는 열매입니다. 이 “고유한 죽음” 역시 얼마나 고통스럽고 폭력적인지는 후일 소설 『말테의 수기』에서 시종 장 브리게를 통해서 노골적으로 상술된다. 동시에 화자는 우리가 인간으로부터 “그의” 죽음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왜냐면 이것은 죽음을 낯설게 하고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그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 아니”여서 이다. 시적 자아는 신에게 도움을 간청한다. 강력한 보증자이신 당신이여, 신을 낳은 여인의 그 꿈을 이루어 주지 마시고 중대한 자를, 죽음을 낳은 이를 향하소서,(1, 239) 신을 낳은 마리아 대신에 “죽음을 낳은 이”라는 신화적인 자웅동체의 형상체가 제시된다. “죽음을 낳은 이”가 종교적 상징적인 힘의 도움을 통해서 죽음을 사회적인 중심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릴케에 호의적인 연구에서조차, 늦게까지도 “『기도시집』의 이 모델의 문제 해결 가능성의 요구가 벅차게 되리라는” 사실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지배적이다. 제3권의 두 번째 부분에서 찬미 되는 가난도 많은 독자들, 그 가운데 브레히트나 벤과 같은 작가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만일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마침내 다시 가난하게” 해 달라는 신을 향한 요구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사회적 정치적인 선언으로 해석한다면, 릴케의 텍스트를 그 비판자들로부터 방어하기 어렵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때에는 가난을 “내면으로부터의 위대한 광채”라고 노래한 구절도 통속적인 언술로밖에 평가할 수 없게 된다. 이와는 달리 가난을 “소유의 의미”를 전적으로 의문시하는 정신적 태도 - 법정(法頂) 스님의 ‘무소유’(無所有)처럼 - 로 읽게 되면, 신뢰성에서 후광을 얻게 된다. 가난은 그럴 때 근대적인 소외 경향을 방지하고, “자연적인 삶으로의 복귀”를 가능케 하는 반시민적, 반순응주의적인 자유의 편이 된다. 이것은 명백하게 이제 가난한 이들에 연관된, 다시 긍정적 의미로 전환된 어두움과 깊이라는 주도 동기를 보여준다. 가난이 제약으로 생각되는 소유에 대한 반대 개념이라면, 릴케에게 가난은 전 생애에 걸쳐 하나의 심미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실제 릴케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예술가였다. 가난은 예술가로서 항상 새롭게 처하게 되는 인식과 필연의 개방성을 구체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한 여자 친구를 위한 진혼곡」에서 여류화가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에게 “참된 가난”에 처해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1907년 아내에게 “우리는 뼈마디마다 가난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쓴다. 가인, 즉 시인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서 이미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도록 소명된 자로 나타난다. 성 프란치스코의 죽음의 비유를 통해서 그의 노래와 그의 육신이 대지의 사물들로 넘어 들어가는 것처럼, 사물들은 신화처럼 시인의 노래를 통해서 생성된다. 릴케는 “노래는 현존재이다”(Gesang ist Dasein)라고 『오르페우스에 바치는 소네트』의 제1부, 제3소네트에서 읊었다. 가난의 모티브는 시인을 통해서 고유한 실현을 체험한다. 시인의 가난은 이러한 과제를 위한 자유의 풍요로움을 증언한다. 가난은 단순히 부유하지 않음 이상의 그 무엇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