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商界에서뿐만 아니라 사상계思想界에서마저도 우리들의 시대는 명실공히 재고품정리 대방출 세일을 벌이고 있는 시대라고 하겠다. 무엇이든지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사려는 사람마저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어쩌면 당구장에서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듯이, 근대철학이 발전해온 자취를 마치 의미심장한 것이라도 되는 듯이 꼬박꼬박 더듬고 있는 사색적인 과외교사Privatdozent나 보습교사Repetent 혹은 학생, 다시 말해 현재 철학에 종사하고 있는 자나 이미 은퇴한 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야단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당신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느니 혹은 설익었다느니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 p.7
아브라함이 한 일은 윤리적으로 표현한다면 이삭을 죽이려고 한 것이고, 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이삭을 바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모순 속에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불안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안이 없으면 아브라함은 저 아브라함이 아닐 것이다. 혹은 또 아브라함은 거기에 언급되어 있는 그런 일을 하나도 한 적이 없고, 이 이야기가 당시의 정세로 미루어 보아서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일 따위는 잊어버리기로 하자. 왜냐하면 현재의 것이 될 수 없는 그런 과거의 일 따위를 회상해 보았자 아무런 보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설교자는 아마 어떤 윤리적인 망각이라고나 할 수 있는 것, 즉 이삭이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p.55
영웅의 경우라면 나는 그의 처지가 되어 생각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나는 그의 처지가 되어 생각할 수가 없다. 정상에 도달한 순간 나는 굴러떨어진다. 거기에서 내가 부딪치는 것은 역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는 믿음이 하찮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믿음은 최고의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철학이 믿음 대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앉히고 믿음을 깔본다는 것은 철학의 성실하지 못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믿음을 주지도 못하고, 또 주어서도 안 된다. 철학은 자기의 분수를 깨달아야만 하고,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인간으로부터 그 무엇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 특히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인 듯이 속여서 인간으로부터 그 무엇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내가 인생의 고난이나 위험을 몰라서가 아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맞선다. 나도 무서운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 pp.62~63
나의 의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 깃들어 있는 변증법적인 것을 몇 개의 문제로 나누는 형식으로 끄집어내어서,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역설인가를 알고자 하는 데 있다. 즉, 살인마저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신성한 행위로 만들 수 있다는 역설,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역설, 이 역설을 사유思惟는 파악할 수 없다. 믿음이란 사유가 끝나는 곳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p.107
그렇다고 하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개별자로서 보편적인 것보다 높게 되었다. 이것은 매개를 용납하지 않는 역설이다. 그가 어떻게 이 역설 속에 들어갔는가는, 어떻게 그가 이 역설 속에 언제까지나 머물렀는가 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런 상황 속에 있지 않다면 그는 비극적 영웅조차 될 수 없는 단순한 살인자일 뿐이다. 그를 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단지 어구語句에만 마음을 쓰는 사람들을 향하여 언제까지나 아브라함을 그렇게 부르려고 한다는 것은 지각없는 짓이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비극적 영웅이 될 수가 있다. 그렇지만 믿음의 기사는 될 수 없다. 하나의 인간이 어떤 의미에서 어려운 비극적 영웅의 길을 걸어 나갈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충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충고를 할 수 없고, 또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믿음은 기적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믿음에서 배제되어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생활을 하나로 묶어 놓는 것은 정열이고, 그리고 믿음은 곧 정열이기 때문이다.
--- pp. 135~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