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발보다 나라를 더 자주 바꾸며 다녔다, 라고 브레히트는 쓴 적이 있다. 브레히트들은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 있다. 전쟁이나 기근, 천재지변이나 가난으로 인하여 제 나라를 버린 난민들은 목숨을 내걸고 국경을 넘고, 숨어 살면서 가장 비천한 노동으로 연명하고, 수용소에 감금되고, 추방당한다.
여기 리나는 바로 그런 하나의 국가를 탈출함으로써 반국가적이 된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리나가 국가만이 아니라 가족을 버리기로 작정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더욱 분명해 보인다. 가족 역시 우리는 선택한 적이 없다. 그것은 국가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또 하나의 덫, 어쩌면 국가보다 훨씬 더 끈질기고 엄혹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국가와 가족을 버리고 나서 그녀가 선택하는 새로운 식구들은 집도 나라도 버린 어린 소년 삐, 그리고 역시 혼자서 세상을 떠도는 늙은 여가수 같은 사람들, 그녀와 마찬가지로 국가 밖으로 떠밀려나온 난민들이다.
『리나』는 국가, 혹은 국경과 인간 사이의 기나긴 싸움의 기록, 아니면 무국가적, 반국경적 삶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시링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는다’는 창녀촌을, 한때는 공단이었으나 폭발 사고가 나서 폐쇄된 이래 산업폐기물이나 버려지는 오염된 땅을 근거지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국가와 국경으로 촘촘히 분열되거나 찢긴 이 세계는 그 어떤 폐허보다 더 참혹한 폐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최인석 (소설가)
끔찍한 동시에 경쾌한 유랑. 특별한 에피소드의 다발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소설.
소영현 (문학평론가)
아시아에 강림한 모더니티의 재귀이자, 모더니티에 대한 지독한 패러디.
이혜령 (문학평론가)
강영숙의 『리나』를 읽다보면 국경을 넘어 대륙을 떠도는 열여섯 소녀 ‘리나’가 세계의 폐허 위에 우뚝 선 숭고한 거인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리나’는 그만한 나이의 철없는 소녀일 뿐이다. 이 막막한 간극을 무심하고 중성적인 블랙유머의 문체로 절묘하게 조율해내면서 강영숙은 수천 킬로미터의 장구한 여로를 꿈인 듯 펼쳐 보인다. 리나의 낯선 여로가 한국소설이 이제껏 가보지 못한 미답의 영토라면, 그것은 이야기를 쌓으면서 이야기를 지우고, 우연의 산포에서 삶의 절실한 형식을 찾아낸 소설 문법의 새로움으로부터 우선 비롯되는 것이리라.
정홍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