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항구로 떠도는 구름 / 고우영(만화가)
정지용 〈고향〉 연어의 생리는 괜스레 눈물겹지. 수십만 리 먼 바다로부터 나침반도, 레이더도 없이 둥근 지구 표면을 쉬지 않고 헤엄쳐 와서는, 알에서 깨어났던 담수천 자갈 바닥에 몸을 눕히고 맑던 눈망울을 흐리는 이상한 물고기들. 나는 연어의 생리를 내 몸으로 체험해 봐서 알고 있는 사람이다. (…) 알에서 부화한 연어가 수십만 마일을 돌아와 느끼는 그 탄생의 오르가슴 같은 것. 50년의 시공을 잘라내고 맞닿는 생리가 번쩍 눈을 뜨던 그 순간. "……먼 항구로 떠도는 구름."
좋은 시는 힘이 된다 / 김주하(MBC - TV 앵커)
황지우 〈겨울산〉 무신경하게 책장을 넘기던 손끝이 '너도 견디고 있구나'라는 첫 행에서 멈추었던 것으로 내 기억은 시작된다. 손사래를 치며 한참을 변명하던 아이가 속내를 들킨 것처럼 이 시의 첫 구절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 나는 이 시를 읽고 세상으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내가 낙담하고 지쳐 있을 때마다 여전히 내 귓가에서 타박타박 서성이고 있다. 저만치에서 성큼성큼 다가와, '지지 말고 이겨내라. 쉬지 말고 걸어가라.'하며 나를 채근한다.
시인의 딸과 애송시에 얽힌 에피소드 / 마종기(의사, 시인)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그 큰 소리가 무슨 신호나 되었는지 근처의 다른 세관원들까지도 나와 내 가방을 둘러싸면서 보퉁이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퉁이는 얼마나 여러 번 꽁꽁 잘 샀는지 좀처럼 열 수 없었고, 나중에는 칼로 자르고 끊고 하는데 어느 틈에 근처의 다른 세관원은 물론 짐 검사를 받던 승객들의 시선까지 집중되고 있었다. (…) 당신이 초콜릿을 너무 좋아해서 딸이 무례한 부탁을 한 모양이라고 말하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사랑의 열병 / 손학규(경기도지사)
이종성 〈사랑의 노래〉 단둘이 속삭이는 사랑 속에 '싱싱한 조국'이 같이 한다는 나의 열정에 그녀는 감동했고, 이렇게 해서 우리 사랑은 불타올랐다. 투박하기조차 한 듯 꾸밈없이 마음껏 해님 앞에 저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나비, 잠자리와 노는 들꽃 같은 순진무구한 여대생, 이 여인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것인가? (…) 나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 회사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조국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젊은이들, 큰 사랑의 열병에 빠진 사람들이 많기에 아직도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강산을 떠도는 김삿갓의 노래 / 신중현(작곡가, 록 음악인)
김삿갓 〈요강〉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스타에서 한순간에 범법자, 금지곡 가수가 되어버린 현실이 너무나 괴로웠던 시절,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던 김삿갓의 시는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남아 여전히 읊어지고 있다. (…) 올해로 예순여섯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힘을 내 여러 가지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려웠을 때 안식과 위안이 돼주었던 감삿갓의 시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되고자 / 이명박(서울특별시장)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물음은 나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되었고, 살아가면서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다만 내가 한 사람에게라도 "그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아름다운 이 세상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더하는 사람, 유혹에 가만히 고개를 저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새벽을 연다.
마술사, 좋은 사람을 만나다 / 이은결(국제마술대회 연속 입상자)
용혜원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내가 바라는 마술 또한 수줍음과 설렘이 있는 사랑스런 마술이다. 사람만 좋으란 법 있는가? 마술도 함께 있으면 장미꽃 한 다발보다 더 달콤한 선물과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 이 가을, 나에게 다가올 좋은 사람은 누굴까? 다시 한 번 시집을 꺼내 읽으며, 차가운 고독을 따스하게 데워줄 그런 좋은 사람을 기다려본다.
사랑을 담아 보낸 스무 살의 꽃 / 임지훈(가수)
김춘수 〈꽃> 물론 가슴 안에는 알싸한 아픔이 밀려들었지만, 내 수줍은 사랑이 그녀에게 진짜 사랑을 가르쳤다는 마음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꽃>의 마지막 구절처럼 온전한 친구로 돌려보낸 그녀가 한껏 행복에 겨워 나를 부를 때, 나는 그 안에서 넉넉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다운 길 / 정동영(열린우리당 의장)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못한 길〉 훗날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에 서서 망설이던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나더라도 한 점 부끄럼 없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 수 있기를 염원하다. 프로스트의 <가지 못한 길>을 암송하며 가슴 설레던 시절의 나 자신을 만나게 되면, 나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고백할 생각이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달라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처음 그대로다."라고.
가야 할 때를 아는 자의 아름다움 / 황미나(만화가)
이형기 〈낙화〉 가장 적절한 부분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작품을 끝내는 시기를 아는 것'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과는 많이 닮아 있다. (…) 그리하여 다시 한 번 <낙화>를 읊조린다. 비록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알지 못해 뒷모습이 아름답진 못할지라도.